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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025 APEC 만찬장 변경···정부 준비 과정에 허점 드러내

피현진 기자
등록일 2025-09-21 15:18 게재일 2025-09-2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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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억 원 들인 건물에 조리실·화장실 없고, 전기·소방 안전 확인 안돼

2025년 APEC 정상회의를 40여일 앞두고 정부가 공식 만찬 장소를 국립경주박물관 중정 신축 건축물에서 경주 라한 호텔 대연회장으로 전격 변경했다.

당초 정부는 지난 1월 22일 제5차 준비위원회에서 APEC 정상 만찬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호텔 연회장을 대안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박물관 신축 건축물의 완공 일정이 맞춰졌지만, 만찬장소가 갑작스럽게 호텔로 장소가 변경됐다.

지난 19일 APEC 제9차 준비위원회에서 의결된 이 결정은 겉으로는 “더 많은 인사 초청을 위한 수용력 확대”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만잔창으로 활용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가 지적되면서 부득이하게 장소를 변경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41억여 원을 들여 짓고 있는 건물이 본래 목적으로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앞서 이 건물은 지난 17일 정부 합동 안전점검에서 전기·소방 분야 안전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공연장이나 조리시설도 미설치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따라 음식을 정상회의장에서 조리해서 차량으로 20분 가량 운반을 해야 돼 정상들에게 식은 음식을 대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만찬장 내부에 화장실이 없어 국빈들이 행사 중 50m 가량을 이동해야 하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 밖에도 급경사 계단에다 정상 전용 엘리베이터도 단 한 대 뿐이다.

특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경주 라한 호텔은 지역 내 대형 연회장을 보유한 몇 안 되는 시설이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수억 원대의 행사 운영비와 접대 예산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APEC 정상회의는 각국 정상과 CEO, 고위 관료들이 참석하는 국제적 행사인 만큼 호텔 측은 숙박·연회·보안·식음료 등 전방위 수익을 독점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특정 업체와 사전 조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라한 호텔은 과거에도 여러 국제행사에서 반복적으로 선정됐고, 공정한 입찰 절차 없이 결정된 사례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박물관을 APEC CEO 써밋과 연계한 ‘네트워킹 허브’로 활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정상 만찬이라는 핵심 행사를 박물관에서 배제한 것에 대한 명분 쌓기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퓨처테크 포럼 등 일부 경제행사를 박물관에서 개최하겠다는 계획도, 실질적 행사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만찬과 비교할 수 없다는 평가다.

시민단체들은 “국립박물관은 국민 모두의 자산이며, 세계에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알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며 “이번 결정은 문화적 가치 보다 이권과 편의성을 우선한 행정의 민낯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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