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철 인수 완료 3개월 만에 ‘황금주’ 권한 발동 노조·대선 정치 변수 얽히며 철강업계 불확실성 확대
미국 정부가 일본제철(구 신일철)이 인수한 US스틸의 생산거점 폐쇄 계획을 저지했다. 미 정부가 일본제철의 경영권에 직접 개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관계자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US스틸 데이비드 브리트 최고경영자(CEO)에게 일리노이주 그라니트시티(Granite City) 제철소의 고로(高爐) 폐쇄 계획을 승인할 수 없다고 공식 통보했다. US스틸은 이달 초 해당 공장의 고로를 10월 말부터 중단하겠다고 노동자들에게 알린 바 있다.
△ 황금주 발동···미 정부, 경영 개입 공식화
일본제철은 1년 반 협상 끝에 지난 6월 US스틸 인수를 마무리했다. 인수 과정에서 미국 정부에 ‘황금주(golden share)’를 부여, 주요 경영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황금주 조항에는 기존 생산거점의 폐쇄·중단 시 반드시 미 정부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라니트시티 제철소는 이미 2023년부터 2기 중 1기의 고로가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이번 통보는 사실상 제철소의 완전 폐쇄로 이어질 수 있어, 미 정부가 정식으로 개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 노동조합 반발·정치 변수 겹쳐
US스틸 노동자가 가입하고 있는 전미철강노동조합(USW)은 19일 성명을 통해 “인수 후 불과 3개월 만에 약속을 저버리고 폐쇄를 추진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해당 제철소에는 약 800명의 조합원이 근무 중이다.
이번 사안은 정치적 맥락과도 맞물려 있다. 2023년 12월 일본제철측이 141억달러(약 19조7259억원) 규모의 인수 계획을 발표하자, USW는 즉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모두 노조의 표심을 의식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혀 논란이 확산됐다.
결국 일본제철은 미 정부와 타협 차원에서 황금주 발행을 수용했으며, 이번 개입이 그 첫 사례가 된 셈이다.
△ 일본제철 “투자 약속 이행”···노조 “신뢰 무너져”
일본제철은 인수 완료 이후 2028년까지 110억달러(약15조389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제시한 상태다. 하지만 노조는 “투자 약속을 내세우면서도 현장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일본제철의 인수는 미국 내 정치·노동 변수가 얽히며 단순한 기업 인수를 넘어 국가 안보와 산업정책 문제로 비화했다”며 “향후 추가 구조조정 및 투자 집행 과정에서도 미 정부 개입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포항 철강업계의 한 전문가는 “일본제철의 사례와 더불어, 지난번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건설 현장의 사태 등에 미루어볼때, 미국의 ‘약속’과 ‘생각’이 상대국의 ‘신뢰'와 ‘해석’에 상당한 오차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며, 이어 “우리 스스로 인질을 제공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대미투자나 현지 공장진출에 대해서는 포스트 트럼프시대까지 고려한 중장기적 시야에서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