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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들이 함께 한 의미 있는 수업

등록일 2025-09-04 16:33 게재일 2025-09-0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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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의 어린 눈빛의 고려인들 시낭송·짚풀공예 교육 함께하며 우리 문화 배워 나가
“아픈 역사를 딛고 오랜 시간 멀리 돌아온 그들과 함께 아름다운 길 걸어가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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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낭송과 짚풀공예 수업에 참여한 고려인들.

오전 9시부터 시작인 수업이지만 이르게 도착한 학생들이 과반을 넘었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되자 성은 우리와 같지만 이름은 조금 다른 고려인들이 금세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아직은 한국말이 조금 서투른 탓에 수업 진행을 제외하고 학생 서로 간의 이야기는 러시아어로 이뤄지고 있다. 

 

수업 시간이 평일 오전이다 보니 참가자의 대다수는 나이대가 있는 여성분들이었다. 경주는 관광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해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 외국인 비율이 전국 2위라고 하면 다들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중 고려인들은 2004년 기준 6000여 명으로 전국에서 네 번째로 많다. 대부분 성건동과 외동읍에서 거주 중인데 성건동에는 벌써 맛집으로 소문난 빵집이 있을 정도다. 가격 대비 크기가 크고 재료로 실하게 들어있어 만족도가 높다.

 

이날 수업은 경북문화재단 ‘이웃사촌 지원사업’을 통해 이뤄졌다. 운영을 맡은 한국짚풀공예협회 경북지회에서 준비한 강좌로 시낭송과 짚풀공예 두 가지로 나눠 진행되었다. 수업은 성건동에 위치한 외국인 도움센터 교육장에서 이뤄졌다.

 

배점숙 시낭송 강사를 시작으로 수업이 시작되자 강의실을 가득 채운 열의 어린 눈빛들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본격적인 수업 시작 전 간단한 스트레칭, 복식호흡, 손뼉치기로 긴장을 풀어냈다. 그리고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낭송하는 동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시작 인사를 나눴다. 곧이어 시에 관련된 배경 설명이 이뤄지고 따라 읽기에 들어갔다. 다들 조금은 서툰 발음이지만 또박또박 정성스레 읽어나갔다. 

 

한 가지 시가 끝날 때마다 지명된 학생이 혼자 읽는 시간도 있었는데 학창시절 영어 수업 시간마다 찾아들던 긴장감이 떠올랐다. 선생님과 절대 눈을 마주치지 말 것은 암묵적 불문율이었다. 오늘은 만들기 수업이 빗자루다 보니 관련된 시도 포함되었다. 그러다 빗자루 하면 떠오르는 도깨비 이야기가 등장했다. 도깨비 전설이 나오자 표정들이 밝아졌다. 도깨비는 나이 불문 인기 소재임이 분명하다. 

 

시 낭송 수업이 끝나자 손경희 강사가 준비한 짚풀공예수업이 시작되었다. 하나하나 직접 따서 손질한 귀한 짚풀재료들과 알록달록한 실들이 준비되었다. 여러 개의 매듭이 겹쳐져 하나의 빗자루가 완성된다. 손에 익지 않은 매듭기술로 몇 번이고 반복되는 과정을 거쳤지만 다들 즐거운 모습이다. 투박해 보이던 짚풀에 고운색 실이 여러 차례 감겨 지고 정성이 들어가니 탐나게 예쁜 빗자루가 완성되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알록달록한 색이 어우러져 장식용으로도 실생활용으로도 다 가능할듯하다. 학생들 모두 굉장히 만족스런 표정이다.  

 

돌아온 나라, 돌아온 고향에서 그들이 정착을 하려면 무엇보다 언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문화를 배우면서 언어를 습득하는 수업이 필요하다. 고려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을 방문하면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상품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음에도 언어장벽으로 그들 상품의 장점이 드러나지 못하는 게 무척 아쉬웠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길은 너와 함께 걷는 길”. 수업에 포함되었던 심혜옥 시인의 ‘아름다운 길’에 나오는 구절이다. 아픈 역사를 딛고 오랜 시간 멀리 돌아온 그들과 함께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길 바라본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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