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다. 익숙한 시그널 음악이 흐르고 익숙한 DJ가 ‘굿모닝’ 아침 인사를 한다. 친구 중에 약속 시간에 늘 늦는 친구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시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아 전화로 어디쯤이냐고 물으면 거의 다 왔다고 하고도 일찍 오면 30분, 늦으면 1시간을 넘겨서야 나타난다고. 가을이라는 녀석도 그렇다고. 입추라고 했는데 아직도 열대야가 연속인 여전히 여름 날씨라고 말이다.
8월 7일부터 21일까지는 절기로 입추이다. 하루만 입추가 아니라 15일 동안이 입추 기간이다. 하지만 포항은 여전히 낮 기온 30도를 웃도니 여름 중이다. 맥문동은 광복절 즈음에 만개하니 여름꽃이다. 폭염을 피해 새벽에 길을 나섰다. 영천 우로지 생태공원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의 맥문동을 보기 위해서다.
이른 시간에도 주차장은 이미 거의 만차다. 보라색 맥문동을 찍기 위해 대포 카메라를 들고 고운 원피스 입은 모델과 함께였다. 이른 시간이라 산책하는 사람은 적고, 길게 늘어선 나무 아래 수줍게 웃는 맥문동의 어울림을 앵글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삼각대를 세우고 나뭇잎 사이로 비껴드는 아침햇살의 순간을 잡으려고 모두 렌즈에 눈을 고정했다.
맥문동은 주로 그늘에 많이 심는다. 한국·타이완·일본 등에 분포하며 산지의 나무 그늘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불사초라고도 한다. 높이는 30~50센티미터 정도로서 뿌리줄기가 짧고 굵으며, 수염뿌리는 가늘고 긴데 어떤 것은 굵어져서 덩이뿌리가 된다. 잎은 짙은 녹색으로 난처럼 늘씬하다. 그 위에 꽃줄기가 떠 있는 듯 황홀하게 연한 자주색으로 피는데 마디마다 3~5개씩 모여 달렸다. 맥문동의 덩이뿌리를 말리면 반투명한 담황색이 되는데, 기침과 가래를 멎게 하거나 폐장의 기능을 돕고 기력을 돋우는데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방에서는 이것을 강장·거담·진해·강심제 등에 사용한다. 최근 새집증후군이 자주 언급되면서 맥문동의 공기정화 능력이 알려져 관심을 모았다.
영천 우로지 산책로는 길어서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무 그늘이라 뜨거운 여름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그래서 이른 새벽에 왔더니, 동네분들은 아직이고 외지에서 온 방문객들로 수런거렸다. 보랏빛에 취해 맨발 걷기를 했다.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날아왔다. 맥문동은 향이 거의 없는데 무슨 향일까 살피니, 근처에 꽃댕강 울타리가 보였다. 아침 선선한 공기에 은은하게 자신의 존재를 묻히는 꽃댕강, 맥문동에게 쏠리는 관심을 자신에게도 나눠달라는 손짓이었다.
걷다 보니 작은 알갱이가 깔린 길이 나타났다. 퓨리스텝이라는 이름의 천연소재였다. 이 길을 맨발로 걸으면 부드러운 자극으로 발을 보호하고 혈액순환에도 좋다고 한다. 특히 비가 와도 걷는데 문제가 없어서 위생적으로도 좋을 것 같다. 다른 곳에는 알갱이가 좀 굵어서 발이 아팠는데 이곳은 알갱이가 작아 발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되돌아서 한 번 더 걸으며 발에 감촉을 즐겼다.
영천에는 우로지 말고도 맥문동이 가득한 숲이 또 있다. 자천리 오리장림이다. 그곳엔 왕버드나무 아래 보라색 융단이 깔린 것 같은 오묘한 분위기라 다음 주에 찾아가면 최적기다. 또 가까운 경주 황성공원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맥문동의 콜라보가 아주 그저 그만이다. 노을 질 때 가면 꽃빛이 더 고와서 사진에 담기에 좋다. 여유가 있다면 울산 대왕암 소나무 숲과 포항 송도 솔밭 맥문동도 지금 절정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 소리가 덤으로 들리니 금상첨화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꽃보다 많을 수도 있으니 이른 시간에 방문하길 권한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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