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비가 그치니 다시 무더운 날씨다. 날씨를 핑계 삼아 쉬고 싶었으나 어린 아들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방문지를 고민하다 연꽃이 만발했단 소리에 살짝 솔깃했으나 그뿐. 뜨거운 날씨로 엄두가 나질 않는다. 마침 경주는 근래에 들어 여기저기서 유명작가들 전시회로 전시 풍년이다. 그 덕에 이름값 좀 한다는 작가들의 작품을 큰 비용 들이지 않고 근거리에서 편하게 만나 볼 수 있다. 그중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으로 고르니 경주문화관1918에서 진행 중인 빈센트 반 고흐전이 당첨됐다. 작가의 유명세도 있지만 미디어아트전이란 점이 점수를 더 얻었다. 10살이란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의 사물들도 함께 움직여줘야 좋아할 나이다.
무료관람이라 입구에서 인원수만 확인하고 들어갔다. 이번 전시의 특별한 점은 전시 공간이 하나라는 점이다. 국내 최초 스토리몰입형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한 전시다. 영상물은 시간 단위로 상영 중이므로 가급적 시간표를 확인 후 맞춰 방문하는 편이 좋다. 공간 안으로 들어서자 온 사방이 고흐의 그림으로 가득 찼다.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흔한 레플리카 전시려니 했던 예상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약간의 당혹감으로 내부를 돌아보니 바닥엔 보드라운 매트가 깔려있고 관람객들은 둥근 방석 위에 앉아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저마다 편안한 자세와 방향을 택해 관람중이었다. 네면 중 편한 쪽을 택하면 된다. 영상은 총 6개의 챕터로 나눠져 있다.
챕터1에서는 나는 빈센트 반 고흐 ‘나의 희망, 나의 열정, 나의 세상’이란 주제로 이야기가 보여진다. 챕터2에서는 노래로도 잘 알려진 별이 빛나는 밤에 작품이 등장한다. 공간은 순식간에 둥근 별빛으로 가득 찬 밤하늘이 되었다. 이렇게 멋진 밤하늘이라니. 감탄이 나왔다. 때때로 정말 아름다운 풍경 작품들을 만나면 상상을 해본다. 실제로 이런 풍경을 현실에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그야말로 꿈 같은 세상일 것이다.
챕터3에선 조금 무거워진다. 화사한 해바라기도 환상적인 밤하늘도 아닌 현실 속 인물들이 나타난다. 희미한 조명 하나에 의지해 사람들은 감자를 먹고 있다. 초상화라면 화려한 의상을 입은 귀부인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그림 속 주인공들은 그것과는 너무도 다른 인물들이다. 도자기 같은 피부에 홍조를 띈 모습이 아닌 거칠고 투박하며 볕에 그을린 노동자의 모습이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던 고흐는 그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남겼다.
다음 챕터에선 폴 고갱과 해바라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고갱을 만나는 기쁨에 해바라기 그림까지 준비한 고흐지만 둘은 너무나 결이 다른 영혼이었다. 그들의 만남은 결국 한쪽 귀를 붕대로 둘둘 감은 고흐의 자화상으로 마무리된다.
챕터 5에서는 동생 테오와 아몬드 나무 이야기가 이어진다. 고흐 평생의 후원자이자 기댐목이었던 동생 테오. 어쩌면 서로의 버팀목이었는지 모른다. 끝으로 챕터 6에서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 ‘영원한 태양을 그리는 화가’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반 고흐 인 경주’ 미디어아트전은 경주문화관 1918에서 진행된다. 전시 기간은 7월 8일에서 9월 18일까지다. 회차당 관람 가능 인원은 3~40명이며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 30분이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박선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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