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화마 덮친 영덕- 영덕읍 매정리 현장<br/> 건물 지탱하던 금속 구조물 엿가락처럼 휘고, 하늘엔 검은 재 펄펄<br/> 대다수 주민 70대 이상으로 대피에 어려움, 군내 사망자 가장 많아<br/>“돌아갈 집도 없고 자식한테 연락도 못해” 화마에 전기·통신 다 끊겨
“하늘이 도와 목숨은 건졌지만, 살아도 산 게 아닙니다”
27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에서 만난 한 80대 주민은 이같이 말하며 울먹였다.
지난 22일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은 25일 저녁 영덕을 집어삼켰다. 현재까지 영덕에서는 9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매정리는 이번 산불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마을로, 모두 6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대다수의 주민이 70대 이상으로,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한 노인들이 많았다.
이날 찾아간 매정1리는 마을 곳곳이 불에 타 폐허로 변했다.
집 내부에는 불에 탄 가재도구들이 널려 있었고, 외부에 건물을 지탱하는 금속 구조물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다. 붕괴된 건물의 잔해 사이에서는 짙은 연기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표정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불에 탄 집을 정리하던 80대 마을 주민은 “살아남은 사람들도 몸만 집에서 겨우 빠져 나왔다”면서 “돌아갈 집도 없는데, 앞으로 살아갈 길이 정말 막막하다”며 울었다.
마을 유일의 교회도 붉은색 외벽만 남긴채 새까맣게 불에 탔다. 승용차와 자전거는 앙상한 골조만 남아있었다. 하늘에서는 검은 재가 눈 처럼 내렸다.
매정2리의 상황도 심각하긴 마찬가지였다.
이 마을의 집 90% 이상이 불에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주민은 “집을 잃은 마을사람들이 실내 정자에 모여 있는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만 되면 오들오들 떨고 있다”면서 “전화선도 불에 타버려 통신이 두절되면서 타지에서 걱정하고 있을 자식들에게 전화 한통도 못해줬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매정리 일대는 이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통신망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도로 곳곳에는 통신망 연결 공사가 한창이었다.
매정리 요양원에서 대피하던 중 차량 폭발로 3명이 숨진 현장에는 차가 모두 치워져 있었다.
건물 외벽에는 차 형태만 남고 그을려 있어 사고 당시 불길이 어느 정도거셌는지 짐작케 했다.
/박윤식·이시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