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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플라스틱에 형성된 해양 생태계… 결국엔 ‘우리 입’으로

단정민기자
등록일 2024-11-24 19:54 게재일 2024-11-25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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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연속 기획-해양쓰레기
지난달 21일 오전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강사리 해변. 높은 파도로 폐어구와 생활폐기물 등 각종 쓰레기가 해변으로 밀려 나와 쌓여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홍합이 해변으로 떠밀려온 플라스틱 부표와 페트병에 붙어 자라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결국 우리가 먹는 홍합도 이런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호미곶에서 해녀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정해숙씨(61)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가장 충격적이었던 경험을 전했다. 정씨는 “바람이 많이 불거나 파도가 높게 치는 날이면, 해변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어마어마하게 밀려온다”며 “이게 다 어디서 왔을까 했는데, 중국 문자로 된 라벨이 붙어있는 페트병들이 해변에 널려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여행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놀랐던 순간도 언급했다. 정씨는 “순창 고추장 통이 일본 해변에 떠다니는 걸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우리가 먹고 버린 것이 이렇게 먼 곳까지 가는구나 싶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바다 위 플라스틱 1억5000만t

중국·일본 등 각국의 플라스틱

파도에 밀려 포항 해변에 ‘수북’

바다거북 등 생태계 피해 심각

그물 걸림·먹이로 착각해 섭취

해양 환경보호 인식 개선 절실

해변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기자가 직접 10L짜리 쓰레기봉투 두 장을 들고 포항시 북구에 있는 해수욕장을 찾아가 봤다. 화진해수욕장에 도착하자마자 인사를 건넨 것은 파도에 떠밀려 해안을 구르는 생수병이었다. 해변을 따라 걸으며 쓰레기를 주워 담다 보니 그 출처는 다양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중국과 일본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페트병들이었다.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봉투는 금세 플라스틱 쓰레기들로 가득 찼다.

다른 해수욕장은 어떨까. 월포 해수욕장에 도착하자마자 그 답은 쉽게 나왔다. 거센 파도에 밀려온 해조류 사이로 숨어있는 페트병들, 찌그러진 막걸릿병, 그리고 쓸모를 잃은 일회용 플라스틱 용품들이 해변의 일부가 된 듯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칠포해수욕장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누군가 먹다 버린 고추장 통,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 액체가 든 페트병, 푸바오가 그려진 플라스틱 모자 등 예상치 못한 다양한 쓰레기들이 발견됐다.

해수욕장 앞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씨(63)는 “파도에 떠밀려오는 쓰레기가 정말 많다. 가끔 해변 청소를 하러 여러 단체에서 오지만 그때뿐이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1 중국에서 건너온 생수병이 해초에 뒤섞여 있다.  /단정민기자
1 중국에서 건너온 생수병이 해초에 뒤섞여 있다.  /단정민기자

국제 해양환경단체 오션 컨서번시(Ocean Conservancy)에 따르면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는 바다에는 1억5000만t 이상의 플라스틱이 떠다니고 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날 때마다 800만t이 추가된다. 이는 1분마다 쓰레기 수거차 한 대 분량의 플라스틱을 바다에 버리는 것과 같다. 바다로 흘러든 플라스틱 쓰레기 가운데 일부는 대양을 순환하는 해류를 따라 이동하며 쓰레기 섬(Garbage Patch)을 형성한다. 그중 가장 큰 것이 북태평양 아열대 환류가 만든 쓰레기 섬 ‘거대 태평양 쓰레기 지대’(Great Pacific Garbage Patch)다. 하와이에서 북동쪽으로 1600㎞ 떨어져 있는 이 쓰레기 섬의 크기는 무려 160만㎢에 이른다. 한국 국토 면적의 16배에 달하는 규모다. 과학자들은 7만9000t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이곳에 몰려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이 플라스틱과 관련한 연구 2600여 개를 종합해 분석한 결과, 해양 생물 297종 중 88종이 플라스틱으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물에 몸이 걸리고, 낚싯바늘에 입이 얽히고, 배에는 먹이 대신 플라스틱 조각이 쌓이는 등 다양한 피해가 발생했다.

기자가 직접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10L짜리 쓰레기봉투가 가득찼다. /단정민기자
기자가 직접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10L짜리 쓰레기봉투가 가득찼다. /단정민기자

실제로 작년 8월 강원도 고성 해안에서 발견된 바다거북 폐사체 부검 결과 뱃속에서 비닐, 플라스틱 조각이 쏟아져 나왔다.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한 것이다. 발견된 폐사체 10마리 중 7마리 뱃속에서는 총 64점의 플라스틱 조각이 나왔다.

정회헌 해양환경공단 해양폐기물 관리센터 대리는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는 하천·하구, 해양 레저 활동, 어업·양식 활동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바다로 유입된다”며 “플라스틱 쓰레기는 어망 훼손 및 어획물 오염을 일으켜 조업 시간이 지연되고, 해양생물의 서식지를 훼손한다. 해안 경관 훼손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불법 투기를 방지하며 해양 환경 보호를 위한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호주 ‘씨빈’(Seabin).  /Seabin Project 공식 인스타그램
호주 ‘씨빈’(Seabin). /Seabin Project 공식 인스타그램

해외사례

수거∼재활용, 신제품으로

플라스틱 오염 막는 해양청소기술

세계적 혁신기술·시스템으로 주목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는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환경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중 네덜란드의 ‘오션 클린업’(The Ocean Cleanup)과 ‘그레이트 버블 베리어’(Great Bubble Barrier), 호주의 ‘씨빈 프로젝트’(Seabin Project)는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들 단체는 각각 혁신적인 기술과 시스템을 통해 해양 쓰레기를 효율적으로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동시에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네덜란드 ‘오션 클린업’

‘오션 클린업’은 해양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네덜란드의 비영리 단체로, 특히 태평양에 형성된 ‘거대 태평양 쓰레기 지대’(Great Pacific Garbage Patch·GPGP) 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3년에 도입된 ‘시스템 03’은 거대한 U자형 구조로 설계돼 있으며, 길이가 약 2.2km에 달해 한 번에 축구장 크기만큼의 해양 구역을 청소할 수 있다. 시스템 03의 가장 큰 장점은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면서도 플라스틱을 효과적으로 수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중 카메라와 해양 동물 안전장치(MASH)를 통해 쓰레기 수거 과정에서 해양 생물이 그물에 갇히는 것을 방지하고, 필요시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오션 클린업은 수거한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다양한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며, 해양으로 다시 유입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네덜란드 ‘그레이트 버블 배리어’

독일 출신 엔지니어 필립 에르호른이 2015년 호주 유학 중 폐수 여과 기술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한 ‘그레이트 버블 배리어’(The Great Bubble Barrier) 는 해양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적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 시스템은 강이나 바다의 운하 바깥쪽에서 강력한 공기를 내뿜어 거품장벽을 만들고 장벽에 막힌 플라스틱 쓰레기가 다시 운하 입구로 돌아오도록 설계됐다.

테스트 결과, 버블 배리어는 강으로 유입된 플라스틱 쓰레기의 86%를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환경친화적 특성도 갖췄다. 거품으로 만들어진 장벽이기 때문에 어류와 선박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으며 물속 산소 농도를 증가시켜 수질 개선에도 기여한다. 현재 암스테르담의 운하에 설치된 시스템은 연간 약 42t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하며 실효성을 입증하고 있다. 이 혁신적인 기술은 강이나 운하를 통해 바다로 유입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차단해 해양 환경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호주 ‘씨빈’

‘씨빈’(Seabin·바다 쓰레기통) 프로젝트는 호주의 두 서퍼, 앤드류 터튼(Andrew Turton)과 피트 세글린스키(Pete Ceglinski)에 의해 시작됐다.

이 두 서퍼는 항구와 마리나에서 해양 쓰레기를 효과적으로 수거할 수 있는 장치인 씨빈을 개발했다. 씨빈은 간단한 설치와 유지보수로 다양한 해양 환경에서 널리 사용될 수 있는 장치로, 현재 전 세계 860곳 이상의 항구에 설치돼 있다. 씨빈은 전기 구동식으로 하루 24시간 운영되며 물을 끌어당겨 부유 쓰레기, 미세 플라스틱, 기름 찌꺼기 등을 빨아들인다. 이 장치는 하루 약 3t, 지난 6년간 총 약 2000t 이상의 해양 쓰레기를 수거했다.

씨빈 프로젝트의 장점은 간편한 설치와 유지보수, 그리고 해양 쓰레기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수거된 쓰레기는 재활용 시스템을 통해 처리된다. 씨빈 프로젝트는 기술적 솔루션뿐만 아니라, 해양 환경 보호를 위한 교육적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어 지속 가능한 해양 관리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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