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금기에 도전한 신념의 영화감독 문신구<br/><4> 포항을 배경으로 한 영화 ‘2퍼센트’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영화계에서 낯선 존재였던 한국 영화의 위상이 놀랄 만큼 높아졌다. 한국 영화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인재들의 도전의 무대가 되었고, 포항에서도 영화산업을 일으켜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포항의 인적, 물적 자산으로 제작된 영화 ‘2퍼센트’의 개봉이 더욱 반가운 이유다. ‘2퍼센트’는 문신구 감독의 새로운 시도이자 고향에 보내는 연서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포항지부를 출범하면서 지역 영화인들과 영화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았습니다. 그중 하나로 지역의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단편 시나리오 공모전을 개최했어요. 수상작 한 편을 내가 각색해 장편영화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정된 예산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이 뭘까 고민했어요. 적은 예산이라고 작은 이야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포항은 문화예술적으로는 좀 건조한 것 같습니다. AI가 지배하는 시대에 아날로그적 사고에 갇혀 있어선 안 되겠죠. 영화 제작자의 눈으로 보면 경상북도만큼 숨겨진 명소가 많은 곳이 없어요. 이제는 콘텐츠의 시대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앞서지는 못하더라도 뒤처져서는 안 됩니다.
배 : 본명 대신에 ‘문신구’라는 이름을 쓰고 계신데.
문 : 문신구는 필명입니다. 내가 1986년에 쓴 희곡 ‘분출구’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지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필명을 썼습니다.
배 : 감독님께서 연극영화계에 입문한 지 50년이 넘었습니다. 열정 하나로 뛰어들어 장르를 불문하고 역할을 가리지 않으며 활동했습니다. 지난 활동을 되돌아본다면 현재는 어느 단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문 : 돌이켜보니 긴 시간이 흘렀군요. 그동안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도전했고 침잠기도 거쳤습니다. 현재는 지금까지 걸어온 예술세계를 정리하는 단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원죄’와 ‘2퍼센트’입니다. ‘원죄’는 외부 자본의 도움 없이 내가 하고 싶고 또 해야 하는 이야기를 밀어붙인 작품이지요. ‘2퍼센트’는 고향 이야기를 하나쯤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배 : ‘원죄’는 감독님께 많은 상을 안긴 작품이고, ‘2퍼센트’는 포항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문 :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포항지부를 출범하면서 지역 영화인들과 영화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았습니다. 그중 하나로 지역의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포항 단편 시나리오 공모전을 개최했어요. 수상작 한 편을 내가 각색해 장편영화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정된 예산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이 뭘까 고민했어요. 적은 예산이라고 작은 이야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배 : ‘2퍼센트’에서는 포항의 명소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지요. 등장인물을 포항의 여러 공간에 담아내는 데 고심이 컸을 것 같습니다.
문 : 시나리오를 포항이라는 공간에 녹여내는 작업이 감독으로서 풀어야 할 과제였습니다. 되도록 골고루 소개하려고 애쓰면서도 배경이 스토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어요. 포항의 아름다운 풍광도 담아내고 의도하는 스토리도 잘 전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심했죠. 배경 중에 월포해수욕장 인근 이가리 닻 전망대는 효과적으로 사용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바다 장면은 동시녹음을 했는데 소음 때문에 촬영지를 두세 번 옮겨야 했어요. 해변 도로를 지나는 차량은 CG로 지우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배 : ‘2퍼센트’는 실패를 거듭하다 생존 확률 2퍼센트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영화감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출연한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니 주인공으로 나오는 고집불통의 감독이 문 감독님과 무척이나 닮았다고 하더군요. 감독님은 촬영 현장에서 어떤 감독입니까.
문 : 상황을 배우들에게 주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미친놈, 무모한 놈이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영화는 촬영하고 필름에 담기는 모든 순간이 최선이어야 합니다. 최선의 장면을 뽑아야 하니 현장에서는 거칠고 날카로워집니다. 충분치 않은 예산에 맞추다 보니 여유가 없기도 하죠. 사비로 제작한 ‘원죄’는 하루 3시간씩 자면서 11회차에 끝냈어요. 비슷한 시기에 백승철 배우가 ‘군함도’를 촬영했는데, 거기서 한두 컷 찍을 동안 우리는 열 컷도 더 찍으니까 “감독님, 이게 영화가 돼요? 이게 되면 감독님 천재예요”라고 했을 정도죠. ‘2퍼센트’ 촬영도 13회차로 끝냈습니다. 고생을 많이 했죠. 해 뜨는 장면을 찍느라 자동차에서 밤새고, 성당 꼭대기에서 촬영한 적도 있어요.
배 : 등장인물 중에 가장 짧고 강렬하게 나오는 남명렬 배우는 문 감독을 두고 ‘변신의 귀재’라고 하더군요. 감독님의 정체성을 묻는다면요.
문 : 1980년대 중후반은 나도 주목받는 배우였지요. 신성일 세대 다음에 신영일 세대, 그다음에 안성기 세대가 있었고, 나는 바로 그다음 세대라고 봅니다. 연기를 계속했다면 사람들에게 익숙한 얼굴이 됐을지도 모르죠. 나의 정체성을 말한다면 배우나 연극 연출가라기보다 영화감독이에요. 부러울 정도로 영화 잘 만드는 감독은 정말 많습니다. 그래도 스스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상업영화는 시류를 탑니다만 내 작업은 그렇지 않죠. 지금도 해외 영화제 관계자가 내 작업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배 : ‘2퍼센트’라는 영화 제목이 흥미로운데, 지역 영화산업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문 : ‘2퍼센트’는 불가능이 아니라 도전을 위한 출발점입니다. 포항은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인 ‘인디플러스 포항’이라는 귀중한 자산이 있습니다.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니 안타까워요. 다른 지역에 없는 자산이 포항에는 꽤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배 : 감독님 말씀대로라면 2퍼센트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 시작되는 비율인데요, 지역의 영화산업 여건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문 : 포항은 문화예술적으로는 좀 건조한 것 같습니다. AI가 지배하는 시대에 아날로그적 사고에 갇혀 있어선 안 되겠죠. 영화 제작자의 눈으로 보면 경상북도만큼 숨겨진 명소가 많은 곳이 없어요. 하지만 행정에서는 관심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안타깝게도 경북은 영상위원회가 없는 유일한 지역이죠. 이제는 콘텐츠의 시대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앞서지는 못하더라도 뒤처져서는 안 됩니다.
배 : 콘텐츠의 시대를 포항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문 : 전국 청소년 영화제 심사를 하다 보면 실력이 출중한 친구들이 많아요.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영상교육 시스템을 갖춘 곳이 꽤 있습니다. 포항에서 훌륭한 콘텐츠 작가가 나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제2, 제3의 봉준호가 포항에서 나올 수도 있어요. 지방자치단체나 학교도 인식을 전환해 영화 관련 인재 발굴에 힘써야 해요. 세상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데 지역의 영화산업도 이런 변화를 따라갔으면 합니다. 영화는 대중 예술의 한 영역이 되었고, 앞으로 영상에 대한 소비와 제작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영상산업에 대한 교육도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 제공되어야 합니다.
배 : 감독님께서는 그동안 노동과 정치, 성(性), 종교까지 한국 사회의 굵직한 이슈를 다뤄왔는데, 앞으로는 어떤 주제를 다룰 계획인가요.
문 : 세상이 다원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정치가 중요하죠. 그래서 정치 문제를 다뤄보려고 해요. 구체적으로는 태종 이방원의 장자인 양녕대군 이야기를 다뤄볼 생각입니다. 양녕대군은 왕이 되지 않을 방도를 궁리하며 스스로 비뚤어지는 독특한 인물이죠. 결국 동생인 세종이 세자에 책봉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들 간의 갈등과 투쟁이 정치가 아니겠습니까. 정치 이야기는 곧 복잡다단한 인간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여겨져요. 그리고 ‘안동포 짜기’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사라져가는 옛것에도 관심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배 : 감독님과의 대화를 마무리하며 이 질문을 드리고 싶군요. 감독님에게 영화란 무엇입니까.
문 :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위해 평생을 살아왔고, 남은 인생도 영화를 위해 살 겁니다. 앞으로 몇 작품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말 남기고 싶은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으려 합니다. 영화가 세상을 바꾸지 못해도 적어도 하나의 문제를 제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감독이 되고 싶어요. 자식들에게도 그렇고, 가장 죄스러운 부모님께도 말입니다.
<끝>
/대담·정리 : 배은정(소설가) /사진 : 김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