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복수를 꿈꾼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한 번쯤은 복수를 꿈꾸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겪는 모든 것에 미숙했던 시기에 인간은 누군가에 의해 상처받고, 때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기도 하고, 가끔 자신이 가진 일부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돈이나 집 같은 유형의 재산을 잃어버리는 것은 그나마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나은 것이고, 가족이나 친구 같은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인간 사이의 관계를 박탈당하는 것은 더욱 끔찍하다. 하물며 내가 인간임을 유일하게 증명해주는 자존심은 어떤가. 자만심이나 질투에 의해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남아 있는 유일한 존엄을 침해 당하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럴 때 찾아오는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복수라는 원한의 감정뿐이다. 그것마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끝없는 자기혐오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인 우리는 누구나 현재 복수를 꿈꾼다. 비록 실행할 수 없거나,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마음 한켠에는 복수에 대한 환상이나 원한의 감정을 가지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를 복수를 느리고 지루하게 진행하고 있는 와중일지도 모른다.
복수를 꿈꾸는 원한의 감정이 인간에게 너무나 익숙한 감정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복수라는 테마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문학 작품에서 늘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단언컨대, 복수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행위 중에서 가장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스펙터클한 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니 역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의 복수는 당연하게도 여러 번 되풀이되어 읊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으로서 생존과 존엄을 박탈당할 위기에 내몰린 주인공이 결국 모든 준비를 마치고 복수를 행하는 서사의 짜릿함은 독자인 우리를 가장 감정적으로 자극한다.
그런 의미에서,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Alexandre Dumas p<00E8>re, 1802~1870)가 1845년에 쓴 ‘몽테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은 복수라는 주제를 구현했던 문학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현대적인 복수의 서사적 문법을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어린 나이로 커다란 배의 선장이 되고,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을 약속하는 약혼식장에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 협력해 프랑스 황실에 반역했다는 혐의로 잡혀가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하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는 그를 시기하는 이들의 질투와 탐욕에 의해 자신이 갖고 있는 사회적인 명예,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사실 이 에드몽 당테스가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는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1814년에 엘바섬에 유배되었을 때, 그곳에 배를 정박해서 탈출을 도왔다는 명목이었다. 뒤마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등장해서 격변하고 있던 시대적 상황 위에, 인간의 탐욕과 질투로 인한 누군가의 몰락을, 그로 인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복수를 향한 처절한 여정을 그려냈다.
하지만, 복수라는 것은 마음먹기는 쉬울지 몰라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쉬운 일일까. 에드몽 당테스는 감옥에서 파리스 신부를 만나 탈옥을 할 수 있게 되고, 그가 남긴 막대한 재산을 물려 받아 복수의 대명사인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된다. 그리고서도 평생에 걸쳐 집요하고 느린 복수를 결국 완성한다.
인간은 누구나 복수를 꿈꾼다. 우리가 에드몽 당테스의 복수에 짜릿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안고 살 수밖에 없는 낯익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