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내가 완벽주의자임을 깨달았다. 스스로 완벽한 상태가 존재하다고 믿으며, 달성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기준을 세워 그것을 실패할 때마다 번번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나는 검사지를 보며 이정도 스트레스는 현대인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수준이 아니냐며 반문했지만 선생님은 그 정도가 다르며, 노력이 실패할 때마다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며 우울감으로 빠져 들기 쉽다며 짚어 주셨다.
사실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적 공허함은 기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실은 내 스스로 만든 완벽한 기준치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에서 온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정말 내가 완벽주의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많은 사람들이 내게 칭찬을 할 때마다 그들이 하는 말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음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칭찬을 하는 이유는 그저 예의상 건네거나 또는 분위기상 듣기 좋은 말을 골라 건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들이 말하는 칭찬의 정도까지 내 스스로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아직 부족한 게 참 많다고 늘 스스로 여겨왔으며 어떠한 성과를 보여도 남들 하는 만큼 했을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서야 점점 깨닫고 있는 건, 완벽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은 받아들이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많은 의사들이 권하는 방법은 바로 완벽주의를 인정부터 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일의 효율을 높이고 좋은 성과를 이끌어 오는 긍정적인 성격도 있기에 건강한 완벽주의의 장점을 바라보고 오히려 이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곤 건강이나 외모, 성공이나 행복에 관한 기준을 적어보고 지금 조금씩 이룰 수 있는 목표만을 놔두고 과감히 지워버려야 한다고 한다. 실현 가능한 목표만 지향하여 성공 확률을 높여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계속해서 심어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어도 되고 실패해도 된다.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선 실수는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므로 새로운 시도 앞에서 실패는 반드시 따른다.
두려움의 뿌리는 과연 내 깊은 곳 어디까지 침범했을까 생각하다보면 아득해진다. 나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완벽을 추구하며 노력했을 뿐인데 친구관계도 사회생활도 늘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늘 실패에 가닿을 때마다 나의 노력과 운이 부족했을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실패의 이유는 나 자신에게서 더는 찾을 수 없다.
요즘 일을 할 때에도 나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었다. 그래서인지 늘 목표를 내 기준치보다 훨씬 더 높게 잡곤 했다. 높게 잡은 목표를 어떻게든 혼자서 잘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애썼으나 일의 경험이 적은 내가 혼자 잘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이 잘 안 풀리는 시점부턴 주위 타인들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럽던지.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자책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듯싶었다.
하지만 이번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내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자각하게 되었고, 실은 내가 지금 당장 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 직시를 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 사실을 알자마자 왜 그토록 일을 할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는지, 왜 해결할 수 없는 일의 굴레에 갇혀 있었던 것만 같은지, 집에 돌아가자마자 온 기력이 빠져서 잠에 들기 바빴는지 이 모든 게 차차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는 완벽할 수 없다. 특히 혼자서는 더욱 완벽해질 수 없다. 스스로 지금 당장 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만을 세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때론 실패할 수 있고 실패에 가까워지더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뻗으면 된다. 좋은 사람이라면 분명 도와줄 것이고 나 또한 그 도움을 받아 일을 잘 해결하면 된다. 서로 간의 도움을 통해 우리 사이의 신뢰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일과 사람이지만 점차 조금씩 나와 타인을 믿으며 나아가다보면 점차 더 나은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완벽한 상태는 존재 하지 않지만 스스로 만족할만한 온전한 상태는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