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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과 열암곡사지

등록일 2023-09-11 18:06 게재일 2023-09-1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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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열암곡 석불좌상.

천년의 신라가 자리 잡았던 경주, 그곳에서도 남산은 영산(靈山)이라 불리며 예나 지금이나 신성하게 여겨진다. 이곳은 신라에 불교가 전파된 이래로 불사가 약 400개에 달하는 불국토이며, 현재에는 불자들이 꼭 둘러봐야 하는 성지이며, 역사학자에게는 신라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자 다양한 설화와 전설이 함께 숨 쉬는 이야기의 보고이다. 또한 산새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원한 바람에 땀 식히며 걷기에도 매우 좋은 곳이다.

남산은 삼국부터 조선시대까지 시대별 불교 유적을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장소이기도 하다. 7세기에는 경주 중심가와 소통이 편하며, 지형이 완만하여 절이나 석탑 등의 건축을 조성하기 쉬운 북쪽 기슭부터 만들어지다가 점점 남쪽과 동쪽으로 확대되었다. 서남산 선방곡 초입이나 북남산과 인접한 구릉 하단에서는 주로 이때의 불적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에 불교가 융성하기 시작하여 통일 신라의 세련되고 사실적인 불교로 넘어간 8세기 불적은 도심 가까이 건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잘 알려진 불국사·감은사·사천왕사·망덕사·감산사 등은 대부분 이 시기에 지어졌다. 애장왕 2년(806년) 새로운 사찰을 수도 내에 건립하는 것이 금지된 이후에는 지방이나 영산인 남산을 중심으로 불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9세기쯤부터는 급경사로 이루어진 백운계를 비롯한 남쪽과 서쪽에서도 불사가 이뤄졌다. 신라가 저물어가던 이 시기에는 여러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왕권이 불안정하였다. 왕위 계승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왕권이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5<E211> 이상의 거대한 불상이 유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9세기 이후가 되면 불상보다는 석탑이 선호된다. 하늘과 가깝고 높고 딱 트인 지형에 석탑을 세워 불국토를 건설하려 하였다. 10세기 이후에는 새로 짓기보다 개축하고 보수하여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런 상황은 고려를 지나 조선 후기까지 계속된다.

남산은 불사가 쌓여 온 세월만큼 많은 유적과 유물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다. 그중에서 열암곡은 2007년 이후 ‘기적’이라는 이야기가 덧붙어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는 곳이다. 고위산 남서쪽 백운계 본류의 오른쪽 열암곡에는 열암곡사지라는 절터가 있다. 이곳은 깨어지고 넘어진 불상이 많이 흩어져 있고 경사가 심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은 기적의 이야기를 직접 보고자 열암곡사지를 찾는다. 이곳은 2007년 정비하면서 발굴과 일대 조사가 함께 이뤄졌다. 더불어 흩어져 있어서 외면받고 방치되었던 석조여래좌상의 머리도 발견되었다. 열암곡사지 석조여래좌상은 9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8세기 후반 불상들에 비해 얼굴이 둥글둥글하고, 신체 비례가 짧은 편이며, 어깨와 가슴은 좀 더 남성스럽고, 광배(불상 뒤를 받치는 꽃잎 모양의 석재)의 화염문이 8세기 후반보다는 세밀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30<E211> 거리쯤 떨어진 곳에서 높이 5미터가 넘는 대형 마애여래입상을 찾아내었다. 마애여래입상은 발견 당시 앞으로 고꾸라진 채 바닥과 겨우 5㎝의 간격을 두고 버티고 있었다. 불상이 새겨진 바위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폭 4<E211>, 높이 6.8<E211>, 두께 2.9<E211> 그리고 무게만 80t에 이른다. 그런 바위가 약 40도에 가까운 급경사면에 거꾸로 엎어져 있으며, 불상의 코가 겨우 지면에서 5㎝를 두고 뭉개지지 않은 것이다. 그 5㎝의 간격이 불상의 얼굴을 원형 그대로 살렸다.

1천300년의 세월을 품은 기적의 이야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르 몽드’지(2007년 9월 13일) 1면에도 소개되었다. 지금도 남산 열암곡에는 2007년 발견된 그대로의 이야기가 유지되고 있다.

사람들은 기적의 이야기를 보고, 기적을 빌기 위해 지금도 남산 열암곡의 험한 산길을 걷는다.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인 아유타하 왓 프라 마하탓(Wat Phra Mahathat)의 큰 보리수나무 뿌리에 박힌 불상 머리를 보기 위해 몸을 숙이는 것처럼 ‘5㎝ 기적’을 확인하기 위해 마애여래입상 앞에서 엎드리거나 고개를 깊게 숙인다. 그 오똑한 콧망울을 확인하려면 몸을 숙이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의 행동이 마치 부처에게 기도하며 절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바로 세워진 마애여래입상보다 거꾸로 있는 현재의 이야기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와닿는 듯하다.

남산은 오래된 만큼 많은 불교 유적이 있고, 그 속에 품은 이야기가 있다. 성지 순례하듯이 남산의 불사만 찾아다녀도 꽤 오랫동안 숲길을 걸어야만 한다. 누군가는 성지를 순례한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역사적 탐구를 위해서, 누군가는 이야기를 따라 남산 숲속을 오르다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힌다. 바람이 전해주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면서 걷는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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