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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 뿌리인 아마추어 체육에 더 많은 관심 가져야”

등록일 2023-08-13 17:56 게재일 2023-08-1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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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강의 기억, 영일만의 격랑 -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 3<br/>최인수 ⑤ 포항시 체육회 이후의 활동 그리고 못다 한 이야기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리스트 권혁·강민호 선수가 모교 후배들의 무등을 타고 환영 행사장으로 가고 있다. (2008.9.2)

인터뷰는 매번 최인수 선생의 단골 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나서 진행했는데 메뉴는 늘 된장 전골이었다. 식사하는 동안 선생은 필자가 물을 따르거나 수저를 놓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고 손수했다. 어린 아들에게 밥을 먹이는 아버지 같은 행동이었다. 최인수 선생은 포항시 체육회 부회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지역 체육계를 보살피는 일을 계속해 나간다.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간 간격 좁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포항생활체육협의회 상임부회장직 수락, 종사자 처우개선 노력

원로들 모아 지난 2014년 포항 체육을 사랑하는 모임인 ‘체사모’ 결성, 꿈나무 장학금 등 체육회·체육인 격려 후원하는 사업도 펼쳐

포항야구장 건립 괄목성과 한편 ‘포철고 야구부 해체’ 논란 등 아마추어 스포츠 육성 의지 아쉬움… 시민 관심·참여 가장 중요해

 

김 : 건강은 어떻습니까?

최 : 몇 달 전에 녹내장 수술을 했어. 언젠가부터 눈이 침침하고 초점이 잘 안 맞았는데 나이 탓이려니 하고 방치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쳤나 봐. 수술 후에도 예전처럼 회복이 안 되는군.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를 잘해야겠지. 그 밖에는 크게 아픈 곳 없이 건강한 편이야.

 

김 : 체육회를 떠나신 후에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최 : 바깥에 나가 체육회를 바라보니 체육회가 학교체육과 엘리트 체육 위주로 운영되고 있고 생활체육은 등한시하더군. 현역 시절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었어. 그러던 차에 이상구 포항생활체육협의회 회장이 생활체육협의회 상임부회장을 맡아달라고 하더군. 체육회를 떠난 지 얼마 안 됐고 생활체육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아 고민했지만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 간의 간격을 좁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수락했지.

 

김 : 생활체육협의회에 들어가보니 어떻던가요?

최 : 예상은 했지만 체육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조직이나 재정 면에서 미흡하더군. 그나마 2009년 양학동에 국민체육센터가 개관돼 시민들이 체육을 접할 기회가 확대된 게 다행스러웠지. 생체협 지도 선생님들의 처우가 열악한 게 문제였어. 개선해보려고 했지만 뜻대로 안 되더군. 그분들한테 참 미안했지.

김 : 생활체육협의회 상임부회장의 보수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최 : 보수라고 할 게 있나? 상임부회장이라는 직책은 무보수에 봉사직이어야 한다는 게 변함없는 생각이야. 어느 날 사무국 직원이 활동비라면서 몇십만 원을 주더군. 당시 생활체육 지도교사가 여섯 명 정도 있었는데, 이분들은 지도 요청이 있으면 먼 곳까지 본인 차량을 이용해야 했어. 그래서 그 돈으로 주유 상품권을 사서 나눠주었지. 그나마 돈이 얼마 안 돼 다달이 번갈아 지급했어.

 

김 : 생활체육협의회 업무가 쉽지는 않았겠습니다.

최 : 맨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엘리트 체육 지도자들이 생활체육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었어. 생활체육이 활성화되어야 엘리트 체육도 발전할 수 있지. 그런데 당시 엘리트 체육인들은 그런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어.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양쪽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산악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산행을 했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양쪽이 좀 더 가까워지고 신뢰도 생겼어.

 

김 : 상임부회장 재직 후에는 ‘포항 체육을 사랑하는 모임’을 결성하셨지요?

최 : ‘체사모’라고 부르는 단체지. 포항에 거주하는 체육회 산하 가맹단체 원로들이 모여서 2014년에 만든 단체야. 체육 인재를 양성하고 체육인들의 친목 도모와 포항 체육 발전을 위해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였어. 내가 8년째 회장을 맡아서 일하는데 회장직을 맡으려는 사람이 없어 걱정이야.

 

김 : ‘체사모’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합니까?

최 : 회원은 27명이고 회장과 고문, 자문위원, 정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회원들에게 월 회비와 찬조금을 받아 운영하는데 체육 꿈나무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거나 도민체육대회에 출전하는 포항 선수단에게 격려금을 전달했지. 그 밖에 체육회와 체육인들을 격려하고 후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어.

 

김 : 앞으로 ‘체사모’ 활동도 기대됩니다.

최 : 다른 지역의 체육 원로들도 ‘체사모’에 관심을 보이고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경북에서 체육 원로들이 모여서 활동하는 단체는 ‘체사모’가 유일하거든. 포항 체육을 홍보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장학사업을 확대하고 싶어. 현재 회원은 60∼70대가 주축인데 30∼40대도 가입할 기회를 만들려고 해.

 

김 : 포항은 긴 해안선을 접하고 있어 해양 스포츠가 발달하기에 좋은 환경인 것 같습니다.

최 : 그렇지. 포항은 해안선의 길이가 204㎞에 이르는 천혜의 해양도시야. 이를 충분히 활용해 전 연령과 활동 수준에 맞는 맞춤형 해양 레저스포츠를 체험할 기회를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해. 그리고 해양 스포츠팀을 육성하고, 해양 스포츠센터, 계류장 같은 기반시설을 확충해 해양 스포츠를 산업으로 키운다면 포항의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겠지.

경기 중인 포항야구장 전경. /경북매일DB
경기 중인 포항야구장 전경. /경북매일DB

김 : 프로스포츠도 한번 짚어주시지요. 포항에 스틸러스 축구단이 있습니다만.

최 : 포항 스틸러스가 적은 재정으로도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지. 스틸러스가 자생력을 더 키워 포항의 브랜드 가치를 키우고 스포츠 선진 도시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야. 한때 박지성 선수가 뛰었던 영국 프리미어리그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연고지 맨체스터는 인구가 40만 명이야. 포항보다 작은 도시지. 그런 곳에 맨체스터시티와 더불어 두 개의 세계적인 명문 구단이 있어. 포항 스틸러스도 50년 전통을 가지고 있어. 일본 J리그 경우를 보면 우리보다 10년이나 프로리그 출범이 늦었지만 몇몇 구단을 제외하고는 거의 흑자 경영을 하고 있거든. 지역민들의 사랑이 커서 가능한 일이야. 스틸러스도 포항 시민의 관심과 사랑을 더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김 : 2012년 포항에 정식 야구장이 개장된 것도 포항 체육사에서 중요한 대목인 것 같습니다.

최 : 포항에 1만2천 석 규모의 야구장이 건립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지. 이 야구장이 건립되어 포항에 프로야구 유치를 할 수 있었고, 전국 규모의 아마추어 야구도 계속 열 수 있었어. 사회인들도 이 야구장에서 뛰면서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지. 하지만 프로야구의 근간이 되는 고등학교 야구의 현실을 보면 씁쓸함을 금할 수 없어. 경북 제1의 도시 포항의 유일한 고등학교 야구부가 존폐 위기에 놓였거든. 포철공고가 2013년 마이스터 고등학교로 전환하면서 관계 법령에 따라 야구부, 축구부가 포철고로 이관되었지. 마이스터 고등학교는 운동부를 운영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말야. 그래서 포철고에서 야구부와 축구부를 운영하는데 작년에 학교에서 느닷없이 야구부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했지. 충격적인 일이었어. 야구부 학부모와 포철고 동문들이 들고 일어나 야구부 해체가 백지화되긴 했지만 이 사안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었어. 상황이 이러니 포철고 야구부에 우수한 선수들이 오겠냐 말이야. 포철고 야구부는 2018년 청룡기에서 준우승을 하는 등 어려운 여건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참 답답한 일이지. 프로스포츠의 화려한 면만 보지 말고 그 뿌리인 아마추어를 육성하려는 의지가 아쉬워.

 

김 :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끝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전해주시지요.

최 : 몇 번 강조했는데 시민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해. 올해 울진에서 열린 경북도민체육대회에서 포항이 또 우승했어. 그런데 그 사실을 포항 시민들은 잘 몰라. 도민체육대회가 체육인들만의 잔치가 된 거나 마찬가지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선수를 양성하고 대회에 나가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봐야 해. 그리고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야 하고 말이야. 그러려면 생활체육을 활성화해야 하지. 또 한 가지 당부하자면, 포항이 경북 제1의 도시로서 경북 전체를 아우를 만한 그릇으로 키워야 해. 작은 것은 통 크게 양보하고 다른 시·군의 의견을 경청한다면 향후 포항체육회가 큰일을 도모할 때 힘이 되어줄 거라고 믿어.

 

 

최인수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가족과 대구로 피난했다. 대구상고 시절 정구 선수로 활동했고 경북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재학 때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대학 졸업 후 대구 효성여고에서 교편을 잡았고, 1975년 포항 대동고등학교로 부임하면서 포항과 인연이 되었다. 1979년 포철공고로 옮겨 야구부와 축구부 창단을 주도했다. 포항시 사립중·고등학교 체육교사협의회 회장, 포항시체육회 부회장, 포항시 생활체육협의회 상임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문체부장관 표창, 경상북도교육상, 포항시 최고체육 공로상 등을 수상했고 2007년 정년 퇴임했다. 2014년 종목별 원로들로 구성된 ‘포항 체육을 사랑하는 모임’(체사모)을 결성해 회장을 맡고 있다.

<끝>

대담·정리 : 김도일(소설가) / 사진 촬영 : 김 훈(사진작가) / 사진 제공 : 최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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