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독도에 유일하게 민간단체가 최초 설치한 대한민국 독도영토표석이 지난 2022년 태풍으로 유실된 후 1년 만에 복원, 다음달 2일 개막식 및 독도표석 70주년 행사를 한다.
한국산악회가 제작 설치한 독도영토표석은 독도경비대가 있는 동도 몽돌해변 인근 암석에 설치돼 있었지만 지난 2022년 9월 6일 울릉도와 독도를 강타한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유실됐다.
하지만 한국산악회(회장 변기태)는 최근 독도를 찾아 독도 표석 복원 및 재 건립 작업을 완료했다. 한국산악회는 다음달 2일 회원 200여명이 입도 제막식 및 독도표석 건립 70주년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이번 재설치 작업에는 변기태 회장을 비롯해 장승필 고문(유실된 표석 제막당시 회장), 이상세 총무이사, 유학재 이사, 이영준 학술위원장, 박준기 촬영담당(영화감독) 김동관 문화재 보수 기능보유자 등이 참여했다.
이 표석은 과거표석과 규격이 같고 같은 내용이면 화강암으로 육지에서 제작 독도현지로 옮겨 4시간여에 걸쳐 작업 끝에 표석을 복원했다.
한편, 태풍 힌남노로 훼손된 2015년 설치 표석을 수거했다. 독도의 거친 환경 속에서 유실돼 30미터를 날아 간 옛 표석은 회수해서 울릉도 독도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독도 표석은 상징성이 크다. 한국산악회가 지난 1953년 사회단체로 유일하게 울릉독도 동도 몽돌해변 입구에 설치한 ‘독도표석’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이 표석은 정부지원으로 민간단체가 설치한 최초 독도영토표석이다.
이 독도영토표석의 규모는 가로 60cm 세로 46cm 규모로 지난 2015년 8월7일 애초 설치됐던 표석이 낡아 재설치됐고 앞면에 독도 獨島 DOKDO KOREA가 적혀 있다.
뒷면에는 한국산악회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 KOREAN ALPINE CUUB 1952년 8월 15일이라고 적혀 있다. 한국산악회 ‘독도표석’은 애초 지난 1953년 10월14일 설치됐지만, 사연이 있다.
울릉군독도박물관 등에 따르면 당시 국제해도에 LI-ANCOURT라고 표기된 섬이 독도라는 것을 밝히고자 한글과 한문 영문으로 독도를 표기했다는 것이다.
이 표석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산악회는 지난 1940년 결성된 백령회를 그 전신으로 하고 있다. 백령회는 1931년 일본인들이 조선산악회를 조직하자 이에 자극받은 한국 산악인들에 의해 결성된 등산 동호회다.
한국산악회의 창립목적은 ‘국토구명사업과 학술조사’다 이들은 울릉도·독도를 지난 1947년 8월16일~28일까지 13일간, 2차 조사는 1952년 9월17~28일까지 12일간, 3차 1953년 10월11일~17일까지 7일간 3차례 조사했다.
제1차 조사는 해방 후 일본의 불법 독도침탈과 영유권 주장이 계속됨에 따라 이를 내버려둘 경우 앞으로 외교적인 문제로 심화할 수 있다고 판단 시행한 조사다.
당시 과도정부는 안재홍 민정장관을 위원장으로 ‘독도에 관한 수색위원회’를 조직 정부 공무원과 각계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을 파견 독도를 조사했다.
제1차 조사를 통해 독도의 동식물 표본이 채집됐고 독도의 측량 및 사진 촬영이 이뤄졌다. 이와 함께 독도에 ‘조선 울릉도 남면 독도’라는 푯말(독도영토표석)을 설치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밝히고자 했다.
제2차 조사는 일본의 지속적인 독도침탈에 대응하고자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고 기초자료를 축적하고자 조사대상범위를 확대했다.
당시 한국 산악회 홍종인 부회장을 단장으로 12개 반 38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은 독도에 상륙을 시도했지만 1948년 미 공군 독도폭격과 풍랑으로 독도에 상륙하지 못하고 사진촬영만 했다.
제3차 조사에서 일본이 독도 동도와 서도에 “島根縣 隱地郡 五箇村 竹島”(도근현 은지군 오개촌 죽도)라는 표목을 설치한 것으로 제거하고 화강암으로 이 독도표석을 설치, 의미가 크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