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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악마가 되어가는가

등록일 2023-08-08 18:35 게재일 2023-08-0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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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생겨나는 게 아닐까. /Pixabay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자꾸 발생하고 있다. 7월 21일에는 신림역 일대에서 칼부림 사건이 일어났고, 8월 3일에는 서현역 일대에서 칼부림 사건이 일어났다. 미수에 거친 사건도 8월 3일에서 4일까지 3건 가량이 있었고, 무차별 난동이 아닌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한 상해 사건도 많았다. 인터넷에서는 자신이 특정 지역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을 벌일 것이라는 예고 글도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내가 자주 가는 왕십리역, 혜화역, 고속버스터미널역 등에도 예고글이 올라와 지인들과 소식을 공유하기도 했다.

범죄 전문가들은 최근 추세를 범죄 감염 이론의 관점에서 해석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범죄가 발생하고, 이를 미디어에서 주목해 흥미 위주의 자극적인 보도를 계속하자, 예비 범죄자들이 자극을 받아 실행에 옮기면서, 이와 같은 범죄가 확산된다는 것이 범죄 감염 이론의 주된 골자이다. 실제로 흉기 난동 사건이 7월 말에서 8월 초 현재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범죄 감염 이론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실제로 모방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의 경고가 있기도 했었다.

현상 자체도 우려해야 할 일이겠지만, 한 가지 더 우려되는 것이 있다. 그건 미디어가 범죄자들을 보도하는 태도다. 범죄자들이 평소 금전 관계나 치정 관계, 혹은 정신병력이 있었다는 식의 보도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궁금하다. 지금의 한국에서 금전 관계나 치정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신과 진료 기록을 가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까닭을 금전 문제나 치정 관계 혹은 정신병의 문제로 일소시키는 것은 얼마나 단순한 일일까.

내가 불만인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최근 미디어의 보도 태도를 보자면, 이와 같은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특정한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축소하려 이를 악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특정한 개인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범죄의 확산에 취약한 특정한 계층 내지는 세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왜 국가는 범죄의 확산 자체를 문제시하고 고찰하는 대신 특정한 지역에 경비경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일까. 마치, 이 모든 문제가 구조적 결함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결사적으로 항변하듯.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특정한 범죄자 내지는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동일한 유형의 범죄가 계속 발생한다면, 그건 범죄자의 잘못일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범죄가 계속해서 일어나도록 방치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뉴스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댓글에서 묻지마 범죄를 근거로 특정한 하위 집단을 악마화하는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화가 난다. 그리고 그 악마화하는 대상에 2·30대 남성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 왜 2·30대 남성들은 갈수록 범죄자의 형상으로 그려져야만 하는 것인가. 실제 2022년에 발표된 범죄 연령 통계에 따르면 2·30대는 전 세대 가운데 가장 범죄율이 낮은 것으로 집계된다. 그럼에도 사실을 왜곡시켜가면서까지 2·30대 남성을 악마화 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 강력 범죄율이 20대에서 높다는 사실에만 주목하면서, 왜 그들이 분노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인가.

이데올로기 연구자인 상탈 무페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적대 이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데올로기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미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그 사회와 불화하는 적대성을 내포한다. 그와 같은 적대는 한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통해 분출한다. 지금 터져나오는 분노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정말 특정한 악마의 소행일까. 악마를 키우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오늘도 여전히 정부의 무능에 대처하기 위해 20대 남성 군인 장병들이 동원되고 있다. 솔직해지자. 이 나라는, 이 정부는, 이 구조는, 자신들의 무능과 구조적 결함을 감추기 위해 특정 세대를 구멍 마개로 삼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수호하기 위해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전체주의적 군 시스템을 구멍마개로 활용해 20대 남성들을 갈아 넣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들을 사회를 위협하는 잠재적 악마인 것처럼 묘사한다. 작금의 20대 남성들은 시스템의 구멍을 막기 위해 동원되는 이중의 희생양에 불과하다. 내가 과격하다고 느껴지는가? 아니, 정말로 과격한 것은 이같은 부조리에 질끈 눈을 감고자 하는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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