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산책을 하다가 어떤 사건을 목격했다. 오후 세 시,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로 공원 놀이터는 북적였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한 아이가 혼자 벤치에 앉아 있었고, 동시에 저 멀리서 경찰이 오는 게 보였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상황을 종합해 보니 아이가 자신이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한 것. 출동한 경찰은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내어 상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육체적인 폭력은 없었고 놀다가 말다툼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한 아이가 배제된 것이었다. 등나무 벤치에 앉아 있던 할머니 중 한 명이 큰 소리로 외쳤다. “친구들이 안 놀아준다고 경찰을 불러도 돼?” 옆에 앉은 다른 사람 역시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요즘 애들은 시도 때도 없이 경찰을 막 불러.” 나는 그들에게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채로 공원을 떠나야 했다.
세상이 달라졌구나. 나 역시도 그렇게 느꼈다. 아이들이 자기를 지키는 방식을 알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세상에 보호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스럽게 놀라운 마음이 들었다. 또한 아이의 신고였으나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조사하는 경찰의 모습 또한 대단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당연한 우려가 따라왔다. 친구들끼리의 다툼, 물론 크다면 크고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이러한 일에 공권력을 소환한 것을 과연 올바른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려지던 아이는 경찰의 등장으로 인해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되었다.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칼자루를 손에 쥐고 휘두르는 쪽이 되어 버린 것이다. 법과 제도는 약자를 지켜주는 장치이다. 하지만 이것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상대를 상처 주고 크게 다치게 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법대로 하자”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요즘이다. 규범을 어긴 사람이 처벌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당사자들끼리 소통하고 충분히 숙고해 볼 수 있었던 문제까지도 법의 영역으로 끌고 와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어떤 판결이 나는 순간, 누군가는 죄인이 되고 모든 것이 공정하게 처리되었다는 착각을 등에 진 채로 상황은 종결된다. 일련의 사건에서 많은 것이 묵살된 채로 일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웹툰 작가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자폐증을 앓는 자신의 아이를 담당하는 특수교사가 아이에게 정서적 학대를 했다는 이유로 교사를 고발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녹음기를 사용했고 특수교사에게 상담을 청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보다 고소를 하여 징계 받는 것을 우선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작가는 자신의 입장문에서 아이를 지키고 싶은 부모의 마음, 동시에 교사를 고소해야지만 아이와 분리될 수 있는 시스템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러한 일을 시행했다고 말했다. 제도적 문제 속에서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지점을 봐달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대중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설령 법정에서 교사가 사용한 언어가 학대의 영역이라고 판단한다고 할지라도,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면서까지 그가 얻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것이다.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와 ‘법대로 엄중하게 처벌해 달라’는 요청은 전혀 다르다. 그가 진심으로 교사에게 원하는 것이 반성과 개선이었다면, 이러한 선택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페터 비에리는 자신의 저서 ‘삶의 격’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 우리에게 알면서도 고통을 가하는 경우 우리는 분노와 원망, 증오를 느낀다. 이러한 감정들은 고통의 상쇄를 갈망하는데, 그것이 원망을 잠재워주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쇄를 일컬어 복수 또는 보복이라고 한다. 피해자가 재판관에게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가해자를 감옥에 집어넣고 고통을 고통으로 되갚아주는 것이다.” 보복의 마음을 가지고 있게 되면 절대 화해의 결과가 나올 수 없다. 그날 오후, 놀이터의 아이들은 경찰의 등장으로 인해 사이좋은 친구 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 학부모와 교사 사이의 법적 공방에 결론이 나면 그로 인해 모두가 존엄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결코 단순하고 표면적이지 않다. 모든 것을 법대로 해결하는 세상은 결코 좋은 세상일리 없다. 하루가 머다 하고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서로의 상황을 더욱 이해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