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 가는 고개/ 대마 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가는 고개/ 반평생을 넘던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서울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자고 넘네/ 꼬불꼬불 열두 고개 주물주도 야속하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전해져 내려오는 민요에서 언급된 이 고개는 경북 북부 울진과 봉화를 넘나들며 전국의 장시를 다니던 보부상들이 남겨놓은 옛길이다. 현재 산림청에서 조성한 첫 숲길이자 과거 동해안과 내륙의 물류가 오고 가던 창구이기도 했다. 12령이라 불렸으며, 울진·죽변·흥부에서 시작하여 북천 두천리(말재)를 지나 바릿재와 샛재를 거쳐 봉화로 이어진다. 조선 후기에는 전국적 단위를 형성하여 성장하던 보부상들이, 일제강점기 이후로는 등짐장수·지게꾼·선질꾼이라 불리는 지역 단위의 행상인들이 주로 이 고개를 애용하였다. 이들은 많게는 100명까지도 모여 함께 고개를 넘었으며, 샛재 성황사에 상업의 번성과 안녕을 비는 제를 올렸고, 성황사 내 중수 현판에 그 기록을 남겼다. 과거에는 여러 주막도 있고, 서낭당도 있어서 밥을 먹거나 하루 쉬어가기도 했던 12령 길은 현재 교통로로서의 가치는 거의 상실했다. 불영계곡 옆 36번 국도가 개설되어 물류의 통행로가 변화하기도 했고, 무장공비 사건으로 소수 남아있던 마을을 이전하기도 했다. 지금은 2007년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이 조성되고 일반에 개방되면서 우리 문화재 유지·보수를 위한 보호 임업 자원이자 관광명소로서 그 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예부터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함께 성장해 온 나무로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솔’은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지는데, 늘 푸른 모습이 절개와 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인기가 있었다. 또한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어 활용도가 높아 생활 전반에 쓰임이 많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에 솔잎을 매달아 경계 삼았고, 죽으면 관의 재료로 활용하였다. 때로는 나무 속살로 구황을 위한 죽을 끓이고, 때로는 송화 다식·송편·송기떡·송엽주 등 먹거리로 만들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소나무의 여러 쓰임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소나무 중에서 소위 명품으로 인식되는 것은 황장목·춘양목이라고도 불리는 금강소나무다. 금강소나무는 단단한 심재가 유난히 많아 황색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에 황장목으로도 불린다. 다른 미송에 비해 천천히 자라는 반면 강도가 2배 이상 강하고, 줄기가 30미터 이상 가늘고 곧게 자라고, 나이테의 폭이 좁아 무늬가 아름답고, 조직이 치밀하여 뒤틀림이 적고, 천연방부제 성분이 배어 나와 잘 썩지 않는다. 특히 해충의 피해에 강하며, 내구성의 변화도 거의 없어서 기와가 올라간 무거운 한옥의 지붕도 잘 견디므로 궁궐과 같은 목조 건축물의 자재로써 인기가 매우 높았다. 조선 후기에는 왕실에서 금강소나무로 만든 관곽묘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60처의 황장봉산이라는 보호구역을 설정하여 입산을 금지하기도 했다. 숙종때 처음 실시되었던 조선의 봉산제도는 용도에 맞게 생산임지·공익임지·준보전임지로 나누는 현재의 제도처럼 선재와 건축재를 위한 봉산, 지정학적 요충지로서의 봉산, 관곽재를 위한 봉산, 수도(한양) 인근의 봉산으로 나눠 관리하였다. 봉계석은 대개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여 음각으로 새기고 산지기 이름과 경계를 표시하였다. 현재 대부분의 금강소나무 숲이자 과거 황장봉산은 강원도와 경상 북부를 잇는 태백산맥에 집중되어 있다.
한편으로 금강소나무는 춘양목으로도 불린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80년대 초까지 건축과 땔감용으로 많이 벌목되었는데 주요 공급처인 서울에 공급되기 전 춘양역에 모아서 보냈기에 춘양목이라 불렸다. 일제강점기에는 강릉에서 베어진 금강소나무가 호산항에 집결되어 일본으로 반출되기도 했다. 금강소나무는 일제강점기·한국전쟁·산업 발전 시기를 거치는 동안 보호보다는 활용에 더 치중되었고 손쉽게 벌목되었다. 일본이 ‘신궁산림 200년 계획’을 세워 매년 봄 200~300년 후에 쓸 나무를 심고 보호하는 것에 비해 뒤늦게 금강소나무 숲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현재 울진에 가면 국유림 금강소나무 숲길-보부상길·오백년소나무길·화전민옛길·대왕소나무길·보부천길-이 있다. 옛 보부상들이 무거운 등짐을 지고 넘어 다녔던 그 길을 지금은 500년 이상 자리를 지킨 금강소나무를 보기 위해 거닌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