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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따라 꽃은 피는데

등록일 2023-07-06 19:50 게재일 2023-07-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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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시골집 골목에 주황색 종 모양의 능소화가 6월 중순부터 활짝 피었다. 옛날엔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고 ‘양반꽃’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지금은 아무 담장이나 나무에 등나무처럼 달라붙어 귀태를 뽐내는 여름꽃이라 금등화(金藤花)고도 한다. 노란 금계국이 피어 퍼드러졌던 큰길 지나 마을 입구엔 정갈한 무궁화도 피고 있다.

뜨거운 열기와 장맛비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들의 잔치를 보고 싶어 이른 봄에 보았던 노란 유채꽃 들판에 이제 하얀 메밀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호미반도 해안길을 달렸다. 연오랑세오녀 공원을 지나 발산리를 지날 때쯤, 노란 꽃나무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작은 꽃들이 떨어질 때 황금비가 오는 것 같다고 ‘Golden rain tree’라고 하는 모감주나무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가보니 벌써 노란 꽃들이 소복이 떨어져 있다. 7월 개화라는데 이른 폭염 때문인지 벌써 만개가 되었던가, 그야말로 황금비가 내린 모양이다. 꽈리 모양 열매 속에 들어있는 까만 씨앗으로 염주를 만든다고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발산리 군락지는 병아리꽃나무 군락지와 함께 천연기념물 제371호이다.

대동배를 지날 때쯤 갑자기 소나무숲이 붉게 변했다. 사태가 심각하여 내려보았더니 낮은 산꼭대기까지 모든 소나무가 죽어있는 것이다. 재선충병이다. 숲속으로 조금 들어가면 군데군데 녹색 비닐로 덮은 훈증 무덤이 보인다. 고사한 소나무를 잘라 방제하고 묶어둔 것이다. 소나무 불치병인 재선충병은 1900년대 일본에 극심한 피해를 주었고 우리나라는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최초로 발견된 후 최근 1년에 약 40만 그루를 고사시키고 있다. 1mm 정도 작은 벌레가 솔수염하늘소에 기생하여 나무껍질 속에 파고들어 고사시키는 치명적인 병이다. 이미 전국에 퍼졌고 올해는 2배 정도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 보도가 있다.

더운 날 병든 숲을 본 아픈 마음에 냅다 호미곶으로 달려 구만리 언덕을 넘으니 넓은 벌판이 그래도 마음을 식혀준다. 해바라기밭 길가에 주차하고 작은 원두막에 앉았다. 15만평 넓은 메밀꽃밭이 펼쳐지는데 지난번 봤던 그 하얀 소금밭은 어디 가고 검은 소금이 조금 뿌려진 듯한 늦은 6월의 메밀꽃밭이 보였다. 밭두렁 길을 걸어가며 메밀꽃 송이를 따보니 벌써 씨앗은 여물고, 멀리 꾸부정한 소나무가 ‘왜 이리 늦었냐!’고 나무라는 듯하다.

십여 년 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따라 평창군 봉평마을에 갔을 때 해맑은 가을의 메밀밭을 걸어서 문학 산책을 하고 왔던 기억이 새롭다. 허 생원은 밤길을 동행하게 된 왼손잡이 동이에게서 아들의 흔적을 보았지….

흰 눈 내린 듯한 여름 꽃밭을 보지 못한 아쉬움에 ‘상생의 손’으로 가서 갈매기 날개짓 따라 푸른 바다 해안길 숲속에 있는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詩碑)를 읽는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다음 가을, 메밀꽃 필 무렵에는 청포를 입고 하얀 모시 수건에 청포도 한아름 싸 와서 병들어 가는 호랑이 꼬리를 낫게 해 달라고 빌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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