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에 가면 특별한 가면극이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라 칭하는 이 공연은 본래 마을 수호신을 위한 제의이자 마을 사람끼리의 화합을 기원하던 행사로 대략 10년에 1회쯤 열리는 가면극이었다고 한다. 주로 원시종교 가면극은 대략적인 극의 형태만 정해져 있을 뿐 세세한 각본은 정해져 있지 않고, 광대들이 신의 계시를 통해 당시 사회의 이슈를 다루며 즉흥연기로 하던 공연이다. 그래서 관객과의 소통과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회별신굿탈놀이도 음력 12월 29일부터 정월 보름까지만 치러졌으며, 탈광대들이 장기간 합숙하며, 몸을 정갈히 하였고, 신내림에 의해서만 연행되었다. 대략적인 마당 순서와 내용만 정해져 있을 뿐 세세한 각본은 없었다. 이후 보존회를 통해 복원되면서 무형문화재로서 극본이 마련되었지만 본래 가면극의 기능인 관객과의 소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희자가 공연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표현하는가에 따라, 관객이 어떤 장면에 호응하는가에 따라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시대에 발맞추어 열린 공연을 지금도 이어간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고려 중엽(12세기)부터 800년을 이어 현재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1928년에 열린 별신굿을 끝으로 전승이 단절되었다가 남아있는 채록본을 바탕으로 복원하였다. 1964년 하회탈 국보 121호로 지정, 1973년 하회가면극연구회 창립, 1978년 연행 유경험자 이창희 발굴 등 복원에 힘써오다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97년 상설 공연 시작, 2010년 하회마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202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보존해야 할 무형 문화유산이자 하회마을의 대표 관광상품이며 동시대성으로 소통과 화합을 유도하는 공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풍물놀이를 시작으로 무동을 탄 각시탈이 마당을 한 바퀴 돌면서 시선을 끈다. 마을에 전해지는 설화에 따르면 이 각시는 마을의 수호신이다. “하회마을의 허도령이 신의 계시를 받아 금줄을 치고 탈막 안에서 탈을 깎았다. 백일 기한으로 깎는데 마지막 날에도 허도령이 나오지 않자 그를 사모하던 김씨 처녀(17세)가 탈막을 몰래 엿보았다. 마지막 탈인 이매탈을 깎고 있던 허도령이 탈의 턱을 완성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이에 김씨 처녀도 번민하다 죽음에 이른다. 처녀가 죽은 뒤 당방울이 날아와 떨어졌는데 그 자리에 서낭당을 세워 서낭신으로 모시고 해마다 당제를 올렸다. 몇 해에 한 번씩 초례와 신방 행사를 치러 서낭신을 위로하고, 탈춤을 추었다.” 하회마을은 고려 중엽 허씨가 자리를 잡고 안씨가 들어왔으며 조선시대에는 류씨가 기득권을 획득한 마을로 알려져 있다. 탈 제작자 허도령이 마을에 처음 안착한 허씨와 성이 같다는 것이 설화의 신빙성을 더한다.
다음 주지마당에서는 주지 한 쌍이 마당을 정화하고 풍요와 다산을 비는 춤을 춘다. 주지는 들짐승·날짐승·어류의 습성을 모두 가진 상상의 동물이다. 백정마당은 백정이 소를 죽여 소 생식기를 관객에서 파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는 남자배역은 몽두리춤이라 하여 동작이 크고 땅을 내리찍는 듯이 추고, 여자배역은 오금춤이라 하여 무릎이 서로 맞닿듯이 춘다. 백정은 몽두리춤을 추어 캐릭터의 성격을 잘 드러내었다. 중마당에서는 부네를 유혹하는 파계승과 이를 비판하는 초랭이와 이매가 등장한다. 이 마당은 본래 무언극이었으나 현재는 유언극으로 변화하였다. 부네는 작은 첩의 역할로서 분칠한 얼굴, 붉은 입술, 요염한 표정이 특징이다. 각시탈과 함께 턱이 분리되지 않아 가부장 사회에서 말을 쉽게 하지 못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이와 반대로 기득권층인 파계승·양반·선비는 턱이 분리되어 있다. 하인 초랭이탈 역시 턱이 붙어있는데,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 한다”는 말처럼 삐뚤어진 입을 가지고 있다. 초랭이와 이매를 통해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적 정서와 바보의 역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이매의 넋두리는 별도의 마당은 아니지만 관객을 마당에 초대하는 장면의 호응이 높아 하나의 마당으로 분리해도 좋을 정도로 시간이 늘어났다. 양반선비마당은 양반이 일방적으로 선비에게 지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백정의 소 생식기를 서로 갖겠다고 싸우다 할미에게 일침을 당하면서 마무리된다. 공연자끼리 말다툼이 많아 지루하여 축소된 부분이 있으며, 과거 공연 때보다 갈등의 전개가 빠르게 진행된다. 공연은 다시 풍물 소리가 들리며 모든 공연자가 어우러져 춤을 춘다. 마지막으로 혼례와 신방마당은 서낭신을 위로하는 마당으로 아무도 보지 못하게 비밀스럽게 진행된다고 한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지금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에는 액운을 막고,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을 공연에 담았다면 지금은 관객과의 호응과 공감으로 화합을 이루는 것이 주가 되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변화하는 동시대성을 지닌 예술이자 800년을 이어온 전통가면극인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지금도 열린 공연으로써 우리 곁을 함께하는 문화유산이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