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평양, 개성, 진주 등과 함께 대구도 기생이 많은 도시로 유명했다. 지금의 대구시 중구 종로 일대는 기생들이 자주 나들이하는 장소였고 변두리에 사는 서민들은 기생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일부러 종로 거리를 찾아나서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기생 세계도 엄격한 규율이 있었다. 고급기생은 붉은색 양산(紅傘)을, 그보다 낮은 기생은 푸른색 양산(靑傘)을 썼다. 푸른색 양산을 쓴 기생이 붉은색 양산을 쓴 기생을 만나면 길을 양보하는 등 깍듯한 예의를 차렸다.
어느 기생 열전에 나온 이야기의 한 토막인데, 실제 대구 종로 가구골목 일대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기생을 둔 요정이 50군데나 됐다. 요정(料亭)이란 기생을 두고 술과 요리를 파는 고급 요리집이다. 지금은 사찰로 바뀐 서울의 대원각이나 삼청각은 서울서 유명한 요정이다.
춘앵각은 1970년대 대구 대표 요정이다. 옛 만경관극장 인근에 자리한 춘앵각은 당시 대구에서 행세 꽤 한 정, 재계 인사라면 한번쯤은 들른 곳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도 대구 방문 때면 이곳서 식사를 했다. 정치적으로 많은 에피소드를 간직한 장소다.
6·25때 남하한 나순경이 1969년 요정으로 문을 열었고, 온갖 일화를 남기고 2003년 문을 닫았다. 최근 영화관 업체가 춘앵각을 매입하면서 곧 철거될 운명에 처했다는 소식이다.
비록 요정이지만 대구 사회의 숱한 일화를 간직한 장소란 점에서 철거에 대해 아쉬워하는 이가 적지 않다. 대구 근대역사 골목길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니 대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의견도 있다. 역사 뒤안길로 사라질 춘앵각이 화제를 뿌리고 있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