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코로나 상황 명절 분위기 빠른 속도 변화<br/>2020년 13% 증가한 반찬가게 이용, 작년 22% ‘쑥’<br/>거리두기 해제 후 첫 설연휴, 여행 떠나는 사람 늘어<br/>근거리 여행 ‘J턴족’·호텔 즐기는 ‘호캉스족’ 신조어도<br/>성균관 ‘시대에 맞는 유교’ 차례상 간소화 원칙 권고<br/>전통적 모습 사라져도 예 지키는 정신 계속 이어져
명절 풍습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시대의 흐름과 명절 트렌드에 변화가 일면서 ‘현대적 명절나기’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설날은 새해를 알리는 첫 명절이다.
그동안 우리는 설날이 되면 수천만명의 인구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민족 대이동을 벌여왔다.
떨어져 있던 일가친지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풍성한 한 해가 되기를 소원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통 명절의 모습은 거의 실종된 상태다.
대가족 붕괴와 만혼·비혼 기조가 만든 가족해체, 차례·제사·성묘 등 명절 전례의 간소화, 비대면 쇼핑 콘텐츠 증가, 명절 연휴를 ‘쉬는 날’로 인식해 여행을 계획하는 등 달라진 사회적 가치관 확산이 주원인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후유증과 물가상승의 여파 또한 설 명절 분위기의 판도를 더욱 빠르게 바꿔가고 있다.
옛 관습을 이어받아 탈바꿈한 오늘날의 명절은 어떤 모습일까.
□ 제사 간소화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이하 성균관)는 지난 16일 ‘시대에 맞는 유교’를 내걸고 차례상에 대해 ‘간소화’ 원칙을 권고했다.
이날 성균관은 떡국, 나물, 구이, 김치, 술(잔), 과일 4종 등 9가지 음식을 올린 차례상을 보기로 제시했다.
송편 대신 떡국을 준비한 것이 추석 차례상과의 차이점이다. 또한, 차례상에 올리는 과일 종류는 정해진 것이 없으니 편하게 고르면 되고 힘들게 전을 부치지 않아도 된다고 제언했다.
이처럼 유교적 권위의식과 더불어 형식과 의무감을 중요시했던 과거와 달리,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즐겁게 차례를 지낼 수 있도록 전통 예법을 개혁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조상과 손님을 위해 음식을 하고 대접하는 것에 치중했던 명절에서 탈피해 가족끼리의 진실한 마음 나눔을 가장 중점적인 가치로 여긴다.
제사를 합사해 같은 날 모시거나,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고 고인이 생전에 즐겨 찾던 음식을 올린다. 시간이나 절차 또한 식구들과 의논해 조절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 감염과 예방에 대비해 개인위생 관리를 당부하는 국가적 분위기에 맞춰, 제사에 쓴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 문화에도 위생을 준수해 개인 접시를 이용한 뷔페식 음식상을 준비하기도 한다.
형식을 달리하고 간략화하더라도 제사의 뜻과 취지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제사 간소화’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 반찬 전문점·간편식 제품 인기
고물가 상황 속에 추석 장보기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반찬 전문점과 간편식 조리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꼭 필요한 음식만 가성비 있게 준비하자는 인식 변화 탓이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명절 전날 기준 반찬 전문점의 이용 건수는 거리두기가 강화됐던 2021년을 제외하면 매년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20년의 경우 설 기간에는 12.5%, 추석은 15.9%, 2022년 설은 21.9% 증가했다. 전문점 이용 연령대는 지난해 설 기준 40대(26.6%)가 가장 많았고 50대 26.0%, 30대 20.8%, 60대 이상 15.7%, 20대 10.9% 순이었다. 50∼60대의 경우 반찬 전문점을 이용한 고객이 지난 2019년 설 대비 13.2%p 증가한 41.7%에 달했다.
반찬 전문점 외에도 차례상 대행업체와 HMR(Home Meal Replacemen·가정대용식), 완제품을 마트에서 구매하는 추세다. 신세계푸드 소비자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2022년 적전류, 양념육, 떡류 등 30여 종의 명절용 가정간편식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앱을 통한 간단한 주문, 합리적인 가격 등 재료 준비부터 조리까지 번거로움 없이 명절 음식을 필요한 만큼 간편하게 차릴 수 있다는 점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여행족 증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처음 맞는 설 연휴에 코로나19로 구속됐던 여행 욕구를 해소하려는 ‘명절 여행족’도 증가했다. 올해는 근거리 여행을 계획하는 ‘J턴족’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상거래 중개업 플랫폼 티몬이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여행 카테고리를 분석한 결과 △국내 여행 △무박 당일 여행 △일본 여행 등 3가지 키워드가 두각을 보이며 ‘근거리 여행 트렌드’가 두드러졌다.
해외 여행 매출은 지난해 연휴보다 4천721%로 급증했다. 가장 많은 항공권 예매율을 차지한 나라는 일본이다. 연휴 기간이 짧은데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엔저 현상 등이 겹치면서 일본 항공권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국내 여행 매출도 30% 증가했는데 이는 코로나 이전(2020년) 보다 42% 늘어난 수치다. 무박 당일 여행 상품 매출도 314% 늘어났다.
귀성을 포기하는 대신 여행을 선택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장소, 이동경로에 따라 여행족을 분류하는 용어도 다양해졌다.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호캉스족’, 가까운 지방에서 연휴를 즐기는 ‘J턴족’,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여행을 즐기는 ‘D턴족’ 등이다.
□ 비대면 선물 문화 확산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비대면 소비문화가 커지면서 명절 선물 문화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명절 선물을 골라 지인의 주소로 택배를 보내거나 만나서 전달하는 방식이 주였다면 최근에는 비대면 명절 선물하기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2년 11월 온라인쇼핑 동향’에 따르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8조1천20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1조2천304억원(7.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온라인쇼핑 거래액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품목은 음·식료품(13.3%)과 음식 서비스(11.2%)로 나타났다. 거래액은 각각 2조4천015억원, 2조232억원 등이다. 뒤를 이어 가전·전자·통신기기가 1조9천705억원으로 10.9%를 차지했다.
가격경쟁력과 쇼핑 편의성이 높은 온라인 플랫폼이 대표적인 쇼핑 채널로 자리 잡으면서 ‘언택트 소비 트렌드’ 기조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쇼핑 거래액이 매년 증가세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비대면과 편의성 때문이다. 물품에 구애받지 않고 간편하고 합리적인 방법과 가격에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데다 시간 절약까지 된다는 점이 거래액을 늘어난 주원인으로 손꼽힌다. 이에 식품업계는 온라인 전용 설 선물세트 출시와 할인 적용, 온라인 프로모션 강화 등을 전개하며 변화된 소비 트렌드에 맞춤 대응하고 있다.
□ 올바른 세배 예법
신앙적 성격을 강하게 띄었던 전통 명절의 모습이 희미해져가도 예를 지키는 정신은 이어지고 있다.
성균관에 따르면 올바른 명절 인사법은 ‘배꼽 인사’를 할 때 두 손을 모으는 것과 비슷한 ‘공수(拱手)’ 자세를 일단 취한 뒤 몸을 숙여서 절하는 것이 예법에 맞는다고 안내했다.
세배 때 하는 절은 ‘전배(展拜)’인데 공수 자세를 취한 후 몸을 굽혀 절을 하면 된다.
공수는 복부와 주먹 하나 정도의 간격을 두고 두 손을 배꼽 높이에서 가지런히 모으는 것을 말한다. 남자는 왼손이 위로 가도록,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가도록 포갠다. 유치원 등에서 어린이에게 배꼽 인사를 가르칠 때 하는 준비 자세와 비슷하다.
공수를 한 상태에서 몸을 굽혀 손을 바닥에 대고 왼쪽 무릎, 오른쪽 무릎 순으로 바닥에 닿게 한 후 손등에 닿을 듯 말 듯 하게 머리를 숙인다. 일어설 때는 오른쪽 무릎을 먼저 바닥에서 떼고, 두 손을 오른쪽 무릎 위에 올린 후 왼쪽 다리를 펴며 일어선다. 일어선 후에는 공수한 상태에서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읍(揖)’을 한다.
공수는 평상시에 서서 하는 인사인 ‘입배(立拜)’에서도 활용된다. 공수 상태에서 상대를 향해 허리를 구부리면 된다. 대략 30∼45° 정도 굽히면 충분하고 지나치게 많이 구부릴 필요는 없다.
차렷 자세에서 허리를 굽히거나 손을 무릎에 올린 상태로 인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외국 인사법을 모방했거나 국적 불명의 방식이라고 성균관 측은 평가했다.
/김민지기자 mangch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