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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평가라는 허상

등록일 2022-11-22 17:52 게재일 2022-11-2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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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좋은 방법은 뭘까? /Pixabay

어느새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날이 추워졌고,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한 학기가 끝나간다는 신호다. 학기 내내 얼른 종강만 했으면 좋겠다고, 하루라도 좀 맘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종강이 가까워지자 괜시리 마음이 바빠진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평가할 방법들을 점검한다. 내가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내가 맡은 수업은 말하기 수업과 글쓰기 수업인데, 객관적인 평가가 다소 어려운 과목이다 보니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 게 좋은 방법인지 항상 궁금해진다. 사실 말하기와 글쓰기는 개인의 노력 여하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라 결과물을 중심으로 평가를 하는 것이 옳은지 늘 고민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글쓰기를 성취도로 평가를 하자니, 객관적인 결과물이 눈앞에 놓여있어 그 또한 석연찮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일종의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상호평가였다. 평가 점수의 절반은 내가 책정하고, 나머지 절반은 같은 반의 학생들이 책정하도록 했다. 단순히 점수만이 아니라 피드백 또한 해줄 것을 부탁했다. 생각보다 학생들이 성실하게 평가를 해주었던 덕분에, 1학기 때에는 성적 평가를 하기 꽤 수월했던 것 같다. 또, 해당 성적에 대해서 이의가 들어온 경우에도 이를 해명하고 설득하기에 꽤 도움이 되었다. 어쨌든 자신 또한 평가의 주체였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학생들을 각각의 점수에 따라 줄을 세우더라도 여전히 의구심이 남곤 한다. 나는 정말 아이들을 잘 가르친 걸까? 아이들은 내가 가르친 걸 잘 흡수한 걸까? 막상 이런 방식으로 평가를 하다보면 매 수업 성실하게 임했던 학생들이 항상 좋은 결과를 받는 것은 아니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수업을 성실하게 들은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재능이든 뭐든 좋은 결과물을 내놓는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맞는 것인지 늘 헷갈리곤 한다. 어쨌든 둘을 절충하는 방식으로 성적을 내곤 하지만, 그렇다고 의구심이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

사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상대평가 방식을 썩 신뢰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성취도가 아닌 상대적인 결과를 가지고 평가를 하는 것이다 보니 그다지 성취도가 높지 않더라도 한 반 안에서 상대적으로 잘하기만 한다면 A+를 받을 수 있다. 반면에 운이 안 좋게 학업 집중력이 높은 학생들이 많은 학과에서는 비슷한 성취도를 보이더라도 같은 성적을 받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 예컨대, 수업 반마다 성적을 책정하다보니, 한 반 내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그걸 학교 전체의 규모로 놓고 보게 되면, 어쩔 수 없는 결과적인 불평등이 생기곤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반 전체의 분위기가 다 같이 열심히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때면 정말 걷잡을 수 없어진다. 어차피 성적은 상대적으로 결정 나는 것이다 보니, 다른 아이들보다 약간만 열심히 하면 될 뿐, 교강사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대학 내 상대평가 비중의 강화가 경쟁력 강화를 위함이었다는 것을 떠올려보자면, 이건 아무래도 예상치 못한 폐해가 아닐까 싶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학교의 목적이 지식의 습득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면, 이처럼 지식의 습득 여부가 아닌 상대적인 결과에 따라 성적을 매기는 건 어쩐지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입사를 비롯한 여러 과정에 있어 대학에서의 성적이 공신력과 변별력을 가질 수 있도록 상대평가의 비중을 늘렸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지식의 습득에 도움이 되는 결정인지에 대해서는 왠지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 교사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면, 아무래도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거기에 골몰하는 것보다는 수업 시간을 통해 이후에는 해볼 수 없는 고민을 해봤으면 싶다. 사실 입사를 비롯한 이후의 과정들에 대학에서의 성적이 그렇게 큰 변별력을 갖지도 못하는데, 왜 학생들이 오직 좋은 성적을 받는 것에만 골몰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대학교육의 실패란, 단지 사람들이 상식이 부족해진다거나 하는 지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사람들을 점점 더 아무런 사유도 질문도 하지 않도록 만들어가는 그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어쨌든, 이번 학기에도 나는 학생들을 평가하고 제도와 규칙에 따라 성적을 배분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고민들을 학생들에 대한 평가에 녹여낼 수 있을지, 과연 이런 고민이 언젠가 끝나기는 할지. 어쨌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좋은 평가방법을 고민해보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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