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빛 좋은 개살구 먹는 법

등록일 2022-10-25 20:16 게재일 2022-10-26 17면
스크랩버튼
‘빛 좋은 개살구’를 현명하게 먹는 방법은 뭘까? /언스플래쉬
‘빛 좋은 개살구’를 현명하게 먹는 방법은 뭘까? /언스플래쉬

바야흐로 ‘보여주기’의 시대다. 자신의 일상을 전시하는 일은 어렵지 않고 그만큼이나 쉽게 타인의 삶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옛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워지면 스마트폰을 들어 SNS를 켜면 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의 하루가 궁금하면 유튜브에 접속해 영상을 시청하면 된다.

현대사회에서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소셜 네트워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구시대적이라는 감각을 넘어 타인과의 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자기를 보여주는 방식 또한 중요해졌다. 소위 MZ세대로 통칭되는 청년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과제 앞에 놓였다. 그 어디보다 경쟁구조가 선명한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이러한 증명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처럼 보인다. 가진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하면 자신의 것이 너무나 조그맣다고 느끼기 쉽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몸집을 부풀리기 마련이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이 있다. SNS에서 인기라는 식당에 가면 앉을 자리가 없다. 문 앞에는 웨이팅하는 손님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받은 음식은 번지르르한 모양과는 달리 별로 특별한 것 없는 맛이다. 인기 연예인이 극찬했다는 화장품은 고급스러운 패키지에 비해 효과가 미미하고 백만 독자를 사로잡았다는 책에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가득하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엔 좋아 보이는 것들도 깊게 들여다보면 실속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제보다 더욱 멋들어지게 포장하는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타의로 작동되는 일이기도 하다. 인기라는 거품이 꺼지고 자신의 실체가 드러날까 두려웠다는 유명 가수의 이야기처럼 자신을 세상에 내보이는 사람들은 어떠한 포장지에 싸이기 마련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조건을 가지고 삶을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당연하게 있는 것들을 만져 보지조차 못하고 자신에게 허용된 세계라는 느낌을 받기가 어렵다. 내가 가진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이 필요하고 거기에서 ‘보여주기’의 굴레는 더욱 공고해진다.

SNS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는 나와 타인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나는 9개월 동안 외국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의 외로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나만 빼고 세계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SNS로 소통하면서 나 역시 이 세계에 공고하게 존재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현재의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었고 나의 하루가 얼마나 더 아름답고 빛나게 기록될 것인지에 대한 탐구에 돌입하게 되었다. 내가 누구와 만나는지, 무엇을 먹고, 어디에 가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나의 가치가 정해진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하는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나를 얼마나 훼손하면서 살고 있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 연연하며 최대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것은 당연히 어리석고 피곤한 일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완벽하게 벗어날 순 없다. 망망한 무인도에 완벽하게 고립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딘가에 계속해서 노출될 것이다. 아날로그적 시대를 그리워하며 지금의 상황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현실에서 도피하는 일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빛 좋은 개살구’를 현명하게 먹는 방법 중 하나는 개살구가 그저 ‘빛이 좋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맛이 없잖아, 하고 실망하는 대신 허황된 빛을 가진 열매를 그 자체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본질보다 보이는 모양 자체가 중요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고 그것을 굳이 비난할 필요는 없다. 밍밍하고 맛이 떫은 것을 먹더라도 괜찮다. 우선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먹자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 싱싱하고 달콤한 과육을 원하는 이들은 응당 이러한 빛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겠다. 보여주는 것에만 매혹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 자신이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지 끊임없이 되돌아보려는 시선 또한 중요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내 안에 있는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고민은 정보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될 것이다.

2030, 우리가 만난 세상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