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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랑

등록일 2021-11-02 18:10 게재일 2021-11-0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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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가난한 사랑 노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다. /pixabay

최승자의 여러 시집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이 時代(시대)의 사랑’이다. 시를 잘 모르던 시절, 제목이 너무 예뻐서 샀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시집에 사랑에 대한 잠언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정작 그 안에 든 건 그로테스크하고 무참한 인간의 슬픔이었기에 많이 놀랐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사랑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화장실에 걸린 잠언이나 경구들처럼 평온하고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일이다. 사랑은 대상을 위하는 마음만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니까. 사랑은 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의 깊이만큼의 처참함을 간직한다. 그 안에는 소유하기를 원하는 마음도, 그리하여 그것을 파괴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함께 있을 수밖에 없다.

‘이 時代의 사랑’의 한편에 아름다운 처량한 마음이 있어, 다른 한편에는 그로 인해 찢겨지고 비참해진 마음이 같은 크기로 놓여 있는 것처럼. 그처럼 ‘나’의 마음이 아름다움과 처참함으로 양분되는 건 분명 사랑의 힘일 것이다. 그뿐일까.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내가 얼마나 비루한 존재인가를 자각하게 만드는 것까지도 모두 사랑의 능력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사랑’이다. 비록, 나 자신이 비루하고 비참한 신세라는 것을 자각하게 될지라도, 그 시대의 사랑은 결코 다른 사물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내가 비참하게 된다 할지언정,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사랑에게 나의 삶의 중심을 양보하는 것, 그게 ‘이 時代의 사랑’의 의미가 아니었나,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게 80년대의 사랑이란, 마치 ‘나’ 자신의 실존을 걸고 이루어지는 모험과도 같이 느껴진다. 절박하고, 비참해지기도 하는 사랑. 사랑이 이루어질 때면 우리는 자신의 삶의 의미와 그 모든 노력에 대한 보상을 얻겠지만, 실패한다면 우리는 그 모든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모험 같은 사랑은 왠지 사랑이 아닌 인정투쟁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건 그 시대가 그만큼 사랑 외에는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혹은 자신의 다른 의미를 쟁취할 길이 없었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더 이상 사랑을 통해 스스로를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사랑’에게 자신의 삶의 중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랑은 더 이상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흔해진 세계에서, 우리는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다. 이제는 현실이 사랑을 결정하고, 조건에 따라 사랑이 스스로의 모습을 바꾼다. 현실적인 사랑이라는 모순형용적인 말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그건 어쩌면 우리에게 사랑 외에 다른 인정의 수단이 생겼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사랑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우리가 자유를 느끼고 해방감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심 그런 생각이 든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해졌고, 이제는 사랑을 통해서조차 그와 같은 것들이 이룰 수 없게 되었노라고. 그리하여 이 시대에 사랑은 가장 무가치한 것이 되어버렸다고. 사랑이 더 이상 우리를 구원할 수 없는 세계에, 우리는 빠져가고 있다고.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제는 조건이 사랑을 결정하고, 조건이 사랑의 성패를 결정한다.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영화 속에서나 혹은 액정 너머로만 존재할 뿐이다. 예쁜 선남선녀가 좋은 경제적 조건 하에 어떤 고난 없이 서로를 위하는 그림 같은 사랑만이 존재할 뿐이다. 가난한 사랑 노래는 이제 더는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은 가난보다 더 지긋지긋하고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면, 그리하여 최승자의 시 속 화자가 구원받지 못한 형상이 되었던 것이라면, 지금 우리는 구원조차 사라진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사랑조차 우리를 구원할 수 없어서, 우리는 지금 사랑에 무관심해져버린 것 같다고.

우리는 늘 조건을 뛰어넘은 사랑을 갈구하지만, 그조차도 사실은 “조건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조건을 요구한다. 이 말은, “비록 이토록 처참한 나지만 사랑해줘”라는 투정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실은, 사랑을 위해 더는 무리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힘에 부쳐서, 사랑을 위해 무리할 힘 따위 남아있지 않은 걸지도. 그 모든 힘듦으로부터 나를 건져내었던 사랑은 이제 과거에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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