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사람의 특징이요, 겨레의 보람이요, 문화의 표상이다. 조선말은 우리 겨레가 반만년 역사적 생활에서 문화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결과이다. 그 낱낱의 말은 다 우리의 무수한 조상들이 잇고 이어 보태고 다듬어서 우리에게 물려 준 거룩한 보배이다. 그러므로 우리말은 곧 우리 겨레가 가진 정신적 및 물질적 재산의 총목록이라 할 수 있으니 우리는 이 말을 떠나서는 하루 한때라도 살 수 없는 것이다.”
1947년 조선어학회가 편찬한 ‘우리말큰사전’의 머리말 일부다.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온갖 고난을 겪은 ‘우리말’이 흩어진 글자와 단어들, 방언과 속어들, 기억들, 옛 이야기들, 꿈과 마음들, ‘엄마’와 ‘윤슬’과 ‘미리내’와 ‘개여울’들, 그 모든 처절한 뼈와 살들을 겨우 한 데 모아 몸을 갖췄다. 한글학자들의 감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전 세계에 현존하는 약 3천 개의 언어 중 고유한 사전을 가지고 있는 언어는 단 20여개에 불과하다.
2019년 개봉한 영화 ‘말모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헌신한 조선어학회 한글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말모이’는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주인공 김판수(유해진)는 무지에서 앎으로 나아간다. 그는 소매치기로 먹고 사는 즉자적인 인물이지만, 우연한 계기로 우리말 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말은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말은 곧 ‘우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대자적 존재로 변화한다.
판수의 자기존재 전환은 까막눈인 그가 한글을 깨우쳐 나가는 학습과 함께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어의 아름다움, 우리말을 지키고자 민중이 흘린 피, 땀, 눈물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그리스 크레타 섬은 400년 동안 터키로부터 식민 지배를 당했다. 크레타 출신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미할리스 대장’에 이런 대목이 있다.
“노인은 웃었다. “내가 고생고생하면서 글자를 배운 이유, 이제 알겠지? 이 마을 벽이란 벽은 한 군데도 빼놓지 않을 테다. 교회 종탑에도, 회교 사원에도, 내 죽기 전에 써둘 테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한 글자씩 쓰고 그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자기 솜씨를 감상했다. 그는, 가로로 긋고 세로로 긋기만 해도 목소리, 그것도 우렁찬 함성이 되는 신비에 어리둥절했다. 이런 부호가 어떻게 말을 한단 말인가? 지금까지 그저 텅 빈 채 묵묵히 서 있던 담벽과 대문이 이제 소리 높이 자기네 희망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었다.”
조선어학회 한글학자들은 말의 해방이 곧 정신의 해방이라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들의 헌신과 노력은 총탄 빗발치는 전장에서 싸운 독립군 못지않은 것이다.
우리는 한국어를 지켜낸 이들의 위대한 희생을 기억하면서, 노래를 지어 부르고, 시와 소설을 쓰고 읽고, 줄임말과 합성어와 신조어 등으로 우리말을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해야 한다.
‘말모이’ 후반부에 판수의 중학생 아들 덕진이 여동생 순희를 업고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나는 요양병원에 5년째 누워 있는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일본군 전투기 활주로가 있던 마을에서 태어나 청력이 온전치 않았다. 당연히 말의 배움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는 ‘요이땅’, ‘벤또’, ‘요시’ 같은 일본말을 자주 했는데, 볕 좋은 날이면 혼자 마당에 앉아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하셨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우리말큰사전’ 머리말에는 또 이렇게 쓰여 있다. “조선말은 조선 사람에게 너무 가깝고 너무 친한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조선 사람에게서 가장 멀어지고 설어지게 되었다”고. 우리는 모두 ‘엄마’, ‘아빠’, ‘해’, ‘달’, ‘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를 배우며 울긋불긋 말의 꽃이 피어나던 모국어 마을을 고향으로 두고 있다.
얼마 전 한글날이었다. 2012년 공휴일로 재지정된 후 역사적 의미보다는 ‘노는 날’로 여겨진다. 국문학과 졸업 시험에 토익 성적을 제출해야 하고, 아이들을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풍조 속에서 이런 글은 고리타분한 것일지 모른다.
다만, 드라마와 케이팝 열풍으로 전 세계인들이 한글을 주목하는 지금, 나는 우리말이 세계시민의 ‘제2외국어’쯤 되는 꿈을 꿔본다. 그러면 한국에서 노벨문학상도 나올 것이다. 그게 나일 수도 있다는 망상은 볕 좋은 주말 낮잠에 이미 전송해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