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대 이전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오전 8시께 텔레비전 앞에 앉아 눈 앞에 펼쳐진 화려한 그래픽의 향연에 입을 벌리고 손뼉을 쳤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케케묵은 냄새가 나는 만화방에서 수십권의 만화책을 쌓아놓고 자장면 곱배기 한 그릇을 냅다 해치웠던 기록이라도 말이다. 하물며 만화책 종이종이에 묻었던 이물질이 그리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역시.
현대 한국 만화의 효시는 1909년 6월 2일에 창간된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삽화’라는 이름의 1칸 만화이다. 일종의 만평인 셈이다. 해당 만화는 화가 이도영이 그렸다. 한 전문가는 말했다.
1909년 ‘삽화’로 시작해 2021년 영화·드라마 진출
2019년 기준 세계 5위 시장… 매년 급속도로 성장
글로벌 웹툰시대, 순정만화 등 추억의 작품에 심쿵
“아마 이도영의 만화를 처음 본 사람들은 신기했을 겁니다. 앞다투어 신문을 펼쳐든 사람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신문 기사가 아니었으니까요. 바로 1면 중앙에 배치된 독특한 그림. 한 칸을 가득 채워 그린 개화기 신사의 모습과 인물에서 뻗어나온 선을 따라 쓰여진 글자들이죠. 그것이 바로 최초의 만화였습니다. 일본의 내정간섭이 극도에 달하며,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가는 가운데 애국단체 대한협회가 발간한 ‘대한민보’ 창간호가 파격적인 선택을 한 것이죠.”
우리나라 시초 만화의 내용은 이랬다. ‘국가 정세를 바르게 이해하고, 한민족의 혼을 통합하여 백성의 목소리를 모아 보도 내용을 다채롭게 하겠다’
다만, 한국 역사상 최초의 만화는 지난 1990년 충북 선산에서 발견된 의열도(義烈圖)로 여겨진다. 의열도는 조선시대 초 1745년, 선산의 부사였던 권상하가 지역에 내려오는 각종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서민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부 이야기는 그림으로 묘사했다. 이 중 주인을 구한 소 이야기를 담은 의우도와 주인을 구한 개 이야기를 담은 의구도는 사실상 4컷 만화다. 하지만 의열도는 어디까지나 최초의 한국 만화였을 뿐,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는 뿌리가 되거나 훗날 한국 만화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만화의 시초라고 보긴 어렵다.
□ 그후 100년, 한국 만화 산업은 세계 5위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세계 만화 시장의 규모는 78억7천800만 달러(약 9조2천억원)로 추정됐다. 이것도 순수한 만화 콘텐츠 시장 규모만 따진 것이다. 여기에 지식재산권(IP)과 부가가치를 합치면 웹툰 시장 규모는 훨씬 더 커진다. 물론 지식재산권 전체 만화 콘텐츠 시장의 절반 이상인 40억1천800만 달러를 일본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2위는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의 본고장인 미국(10억2천700만 달러·약 1조2천억원), 3위는 인구 대국인 중국(8억6천만 달러·약 1조100억원)이 차지했다. 한국은 2018년 3억1천300만 달러로 6위였지만, 2019년에는 5위로 올라섰다.
“아마도 뿌리 깊은 천시 때문일 겁니다. 과거에도 글자를 모르는 백성에게 그림으로 교화한다는 사상이 있었잖아요. 만화 역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보는 것이라는 풍조가 있었죠.”
실제로 만화에 대한 저질시비는 상당히 뿌리깊은 악습이었다. 1920년대 조선일보에 4컷 만화 ‘멍텅구리’ 시리즈를 연재했을 때에 일부 식자층에게 ‘어른들을 단순 사고만 해대는 바보처럼 묘사하고 미련하게 표현했다’는 식으로 만화의 저질성이 지적된 바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비판은 상업 어린이 만화 시대가 도래한 1948년 7월 5일에 발행된 잡지 ‘백민(白民)’에 실린 수필가 양미림의 글 ‘만화시비’였다.
「끝으로 결론삼아 몇 가지 만화에 대한 공통된 시비를 요약해 말해보면 첫째로 그 제재가 허무맹랑한 것과 미신적 내지 비과학적인 내용인 점이며 그 위에 또 회화예술의 소양이 매우 부족한 솜씨로 그려진 졸렬한 색채. 제멋대로의 사투리와 한글 철자법 사용 등이다. 감수력이 강렬하고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주어지는 더구나 정화가 아닌 만화그림인 즉, 그 저작자와 출판자는 잘 팔리는 데만 정신이 팔리지 말고 모름지기 그 영향의 결과까지를 고려에 넣는 양심적 출판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양미림의 ‘만화시비 중에서’)」
하지만 2021년 현재 한국 만화 시장은 평균 1.5% 이상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 만화 시장 상위 10개국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한국 웹툰사들의 수출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점이 기대 요인이다. 웹툰은 한국이 개발해 해외에 진출한 플랫폼이라 한국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이 선점한 시장이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되면 한국이 차지할 파이가 크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디지털만화는 종이만화를 단순히 모니터로 옮긴 형태로 소비돼 왔지만 한국 웹툰은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한 플랫폼을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지금 이현세나 박봉성, 허영만 등 만화가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전선욱, 주호민, 이말년 등의 이름은 젊은층 사이에서 유명하죠. 이들의 수익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일부 인기 작가들은 강남에 빌딩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더라구요.”
□ 코끝을 간지르는 추억의 만화
아기공룡 둘리와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 떠돌이 까치 등 우리의 눈과 귀를 브라운관 앞으로 모이게 하는 것들은 많이 있었다. 지금도 일부 사람들은 유튜브 등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과거의 추억에 젖어들고는 한다. 웹툰이 만화 시장을 접수한 2천년대 이후의 추억은 영화나 드라마로 나타났다. 인기 웹툰이 영화화되고 드라마화된 것이다.
지난해 글로벌 인기 웹툰 ‘여신강림’은 동명의 드라마로 첫 선을 보였었고, 글로벌 누적 조회 수 12억뷰를 자랑했던 웹툰 ‘스위트홈’은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JTBC 월화드라마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는 네이버 시리즈 웹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이외에도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지난해 9월 영화 ‘신과 함께’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와 극장용 장편 영화 5편 제작에 대한 판권 계약을 맺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추억을 자극할 수 있는 만화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우선 ‘검정 고무신’은 어떠할까. ‘검정 고무신’은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1969년을 배경으로 기영이와 기철이 형제의 풋풋한 성장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족 만화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다. 이영일(필명 도래미)이 스토리를 쓰고 이우영이 그렸다. 1992년 소년 챔프에 연재된 이후 2006년까지 연재해 한국 코믹스 만화 사상 최장수 연재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아동용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엄마 나 군대가”, “으~ 술이 안 깨”, “진노 쓴물”과 같은 말이 등장한다. 3기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편에서는 도승이가 기철이에게 껌과 초콜릿을 줘서 계급이 상승하는 장면 등 풍자적인 모습도 나온다.
‘달려라 하니’는 이진주 작가가 그린 순정만화다. KBS에 의해 만화 영화화된 초기 방송용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소녀 주인공 하니가 역경을 딛고 육상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만화는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둔 시점인 1985년부터 1987년까지 만화 잡지 ‘보물섬’에 인기리에 연재됐으며, 1988년 만화영화가 되었다. 특이한 것은 해당 만화의 출판사가 육영재단이라는 점이다.
2천년대 이후에는 만화보다는 웹툰이다. 요사이 만화는 웹툰과 동의어로 쓰이는 것 같기도 하다. 2천년대 이후 웹툰의 추억은 무엇이 있을까.
호연 작가의 ‘도자기’는 수묵화 같은 느낌의 필치와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한국의 도자기에 관해 다루는 웹툰이다. 단순한 그림체가 주는 편안함과 섬세한 내용이 주는 잔잔한 감동,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가는 도자기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2007년 1월에 연재를 시작해 9월까지 총 93화로 완결됐다.
군대 생활을 기반으로 한 웹툰도 빠질 수가 없다. 그 시초격이라고 할 수 있는 ‘꾸나꼬무이야기’는 작가 겔부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스포츠 투데이에 연재한 웹툰 형식의 만화다. 요사이에는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된 ‘디피(D.P.)’도 화제다. ‘디피(D.P.)는 작가 김보통의 원작 웹툰 ‘디피: 개의 날’을 기반으로 한다.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