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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가 지나간 자리에서

등록일 2021-09-14 18:37 게재일 2021-09-1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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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선 자리는 크고 작은 사건과 참사들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닐까. /pixabay

영원할 것 같던 레트로 열풍도 이제는 한 풀 꺾인 모양이다. 패션, 음악, 영화, 사진, 음식,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물들이 90년대 감성으로 포장되어 거리를 꾸미던 모습은 우리를 그리웠던 옛 시절로 데려가기 충분했다.

듀스를 좋아했던 나에게 ‘여름 안에서’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은 분명 반가움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걸 뭉클했다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9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레트로가 만든 풍경이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이질적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과거를 회상한다는 건 분명 단순한 되새김질이 아니다.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 사라진 장소를 거닐었던 순간을 떠올린다는 건 우리의 마음을 손쉽게 간지럽힌다.

자그마한 화단이 가운데 놓인 ㄷ자 모양의 슬레이트집, 매일같이 골목길에 모여 고무공을 차고 놀던 친구들, 도무지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유치원의 연극,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거닐었던 중학교의 운동장, 하릴 없이 쏘다니던 개천변의 풍경 같은 것들.

이제는 사라진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기억이나 학교를 땡땡이 치고 패스트푸드에서 시간을 뭉개던 재수시절 같은 것들은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게 남은 시간이 아닐까.

하지만 그 기억들이 마냥 기쁨과 환희의 시간이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과거가 그러하듯 내가 가진 유년의 기억들에는 늘 한편에 얼룩 같은 것이 묻어있다.

하교 길에 성폭행을 당할 뻔 했던 누나에 대한 기억,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던 지긋지긋한 빚쟁이들, 매일같이 친구들과 모여 놀던 골목에서 형들에게 이유 없이 맞았던 기억이나 금품을 갈취당한 기억 같은 것들 말이다.

단지 가난이라고 말하기에는 일그러진, 나의 그리운 1990년대. 이런 유년의 시간들을 마냥 행복했다고 말하기엔, 나의 마음은 여전히 성글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이런 말을 할 때면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라고. 레트로 문화라는 건, 그냥 그런 느낌을 즐기는 거라고. 하지만 나에겐 그 감성이 ‘그냥’ 즐기기엔 너무 무겁고 힘들었다.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각자가 다르다. 레트로가 한 때의 유행으로 지나가버린 지금, 안도감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사실 이건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마냥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느낀 이질감의 정체는 이런 게 아니었나 싶다. 90년대에 우리가 함께 겪었던 슬픔과 고통들이, 레트로의 열풍 속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 삼풍백화점에서부터 성수대교, 대구 상인동, 씨랜드, 연천 예비군 훈련장, 서해 훼리호…. 그리고 IMF까지.

지금 우리가 선 자리는 그런 크고 작은 사건과 참사들 위에 세워진 것 아니었나. 항상 기억하자고 말하던 우리는,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렇게 슬픔과 고통을 잘라내고 유흥과 부흥을 기워넣고는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웃고 떠드는 모습이 나는 슬펐던 것 같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나의 슬프고 찬란한 기억이 단지 가벼운 농담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레트로라는 유행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웃고 즐기기에 나는 너무 무거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천성이 그런 탓일 게다. 상품이 되어버린 기억을, 나는 조금 버티기 힘들었다.

과거가 돌아온다는 건, 지금처럼 웃고 즐기는 형태로 돌아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건 우리가 은연중에 억압해온 무언가, 우리가 지금의 삶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배제하고 은폐했던 그것이 섬광처럼 우리의 삶을 잘게 찢는 순간도 분명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 앞에 과거가 돌아온다면, 그건 우리가 레트로 열풍 속에서 삭제했던 부분들이 우리 삶의 한복판에 나타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끔은 그런 일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걸어온 시간을 기쁨과 환희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의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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