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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공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영일만에 밍크고래가 많았지”

등록일 2021-07-28 20:19 게재일 2021-07-2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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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잡이③ 포경선 선원 김정환 인터뷰
1969년 울산 장생포, 참고래 해체 장면 -사진 : 서진길(사진작가)

1949년 구룡포 구평리에서 태어난 김정환 씨는 전복, 해삼 등을 잡던 머구리배(잠수부가 바다 밑에서 조개 등을 잡는 배)를 타다가 18세에 포경선을 탔고, 21세에 장생포로 건너가 줄곧 고래를 잡았다. 포경선에서 조리사부터 시작해 3등 세라, 2등 세라, 1등 세라를 거쳐 갑판장까지 했다.

여름이 되면 동해로 다녔는데 울릉도·독도 쪽에 100자(30m)짜리 나가수(참고래)가 나타났거든

솔피(범고래)는 바다의 왕이지, 떼를 지어 다니는데 나타나면 나가수·밍크고래는 도망가버려

구룡포 목선에서는 큰 돈 벌기 힘들어 장생포 철선을 탔고 벌이가 괜찮을땐 좋은 세월을 보냈지

김도형(김) : 어떻게 포경선을 타게 되었는지요?

김정환(환) : 아는 사람이 소개해주더군. 마침 한 자리가 비어 있었지. 3년 정도 구룡포에서 목선을 타면서 일을 배웠는데, 철선을 타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 장생포로 갔어. 목선과 철선은 수입에서 차이가 꽤 났거든.

김 : 구룡포에서 포경선을 탈 때 어디로 다녔는지요?

환 : 북쪽으로는 호미곶 지나서 강구, 축산으로 다녔고, 남쪽으로는 양포, 감포로 다녔지.

김 : 과거에 영일만에 밍크고래가 많았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어땠나요?

환 : 제철공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영일만 쪽에 밍크고래가 많았지. 감포, 호미곶, 칠포, 죽변에도 꽤 있었고.

환 : 장생포에서 철선 탈 때는 어디로 다녔는지요?

환 : 2월에 군산 어청도로 갔고, 5월이 되면 동해에서 움직였지. 그러다가 다시 전라도 가서 조업했고, 여름이 되면 나가수(참고래) 같은 큰 고래를 잡으러 동해로 왔지. 울릉도, 독도 쪽에 100자(30m)짜리 나가수가 나타났거든. 서해 쪽으로는 처음에 어청도를 다녔는데 거기가 전진기지였던 셈이지. 그다음에 흑산도로 갔고, 백령도에도 갔는데 3년 정도 지나니 못 오게 하더군. 그래서 항구에는 못 들어가고 그 근방에서 고래를 잡았지. 격렬비도 근처에도 갔고 고래 추격하느라 산둥반도 가까이 갔는데 중국에서 간섭을 안 하더군. 중국 배를 ‘짱구리선’이라 불렀는데 근처에 가면 연탄 냄새가 났어.

김 : 고래 특성을 얘기해주신다면.

환 : 밍크고래는 이것저것 다 잘 먹는데 나가수는 ‘곤지(새우 새끼)’만 먹어. 그래서인지 몰라도 밍크고래보다 나가수가 맛이 좋지. 12월이 되면 돌고래가 북쪽에서 어장 쪽으로 붙어서 내려오는데 전복, 해삼을 먹는다고 하더군. 1월이 지나면 부산 앞바다를 지나 대마도 쪽으로 간다고 들었어. 우연히 작은 돌고래가 잡혀서 먹어봤는데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껍질이 두껍고 전복처럼 쫀득쫀득하지. 돌고래는 참 귀해. 텔레비전에 나오는 돌고래는 ‘곱시기’라고 하는데 뱃사람이 말하는 돌고래와는 달라. 솔피(범고래)라고 있는데, 이놈은 밍크고래나 곱시기도 잡아먹어. 대단한 놈이지. 멀리서 솔피가 나타나면 나가수나 밍크고래, 곱시기는 도망가버려. 몇 번 잡아봤는데 일고여덟 마리가 떼지어 다녀. 수놈은 한 마리뿐이야. 돛대지. 아주 커. 나머지는 암놈이고. 솔피 한 놈이 밍크고래를 잡으면 그 주변으로 다른 놈들이 빙 둘러서서 살을 이빨로 물어뜯어. 밍크고래가 바다 밑으로 내려가면 안 되니까 한 놈은 밍크고래 밑에서 떠받치고 있고. 솔피 무리가 나타나서 총을 쏘아 한 마리 맞으면 바다에 피가 흥건할 거 아냐. 그런데 다른 솔피들이 도망을 안 가고 그 옆에 붙어 있어. 그러면 포수가 또 총을 쏘게 돼. 솔피는 바다의 왕이지.

김 : 고래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망통에서 쌍안경으로 고래를 관찰하는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환 : 쌍안경으로는 안 되고 두 눈으로 살피지. 경험이 있어야 하고 시력이 좋아야 해. 고래는 숨 쉬러 물 위로 한 번 올라오면 서너 번 더 올라와. 망통에서 그걸 보게 되면 고래 근처로 빠르게 접근해서 총을 쏘지. 고래도 사람처럼 허파로 숨을 쉬잖아. 처음에는 작살을 맞고도 잘 가다가 시간이 지나면 퍼지고 말지.

김 : 포경선에서 선원들 사이에 역할 분담은 어떻게 했습니까?

환 : 갑판장은 오래 앉아 있고, 기관장과 선장이 교대 근무를 하지. 세라는 두 시간씩 교대하고. 고래를 추격할 때는 갑판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쪽으로 가라, 저쪽으로 가라 지시해. 포경선에서는 포수가 대장인데 대개 오십이 넘어야 될 수 있어.

포경선 선원 김정환씨.
포경선 선원 김정환씨.

김 : 목선과 철선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습니까?

환 : 구룡포 목선은 해승호가 15t, 영어호가 10t밖에 안 되고 속도도 느려서 멀리 못 갔지. 목선으로는 큰돈 벌기 힘들어. 철선은 60t에서 80t 정도에 속도도 빠르고 멀리 갔지. 내가 구룡포에서 목선을 탈 때 장생포에는 일본에서 소나를 도입한 철선 동방호가 한 해에 100마리 이상 잡았어. 그때는 철선 타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어. 직장 다녀서는 그만큼 벌 수 있나. 턱도 없지. 또 목선은 배가 작아 배 위에서 고래를 깰 수 없으니 끌고 들어왔지(김정환 씨는 고래 해체를 ‘깬다’고 표현했다). 철선은 웬만한 고래를 배 위에서 다 깨는데 진짜 큰 고래는 어쩔 수 없이 와이어에 감아서 끌고 들어왔어. 고래를 배 위에서 깨서 운반선에 옮겨 보낼 때도 있었고.

김 : 포경선 탈 때 수입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환 : 구룡포에서는 월급 없이 수당으로 받았고, 장생포에서는 월급에 수당이 붙었지. 22자(6.6m) 넘으면 두 마리 계산을 했고. 장생포에서 포경선 타고 서해 다닐 때는 고래를 워낙 많이 잡아서 월급보다 수당이 더 많았지. 이따금 부수입도 생겼어. 포경선에서 고래고기를 절여놓았다가 장생포에 오면 뒷거래를 했지. 전라도 사람들은 고래고기를 잘 먹던데 거래는 안 하더군. 전라도 가면 그쪽 배 옆에 우리 배를 붙여서 우리가 잡은 고래고기하고 그쪽에서 잡은 가자미, 조개, 꽃게를 바꾸기도 했지.

김 : 고래 가격은 어느 정도 되었습니까?

환 : 15자(4.5m) 새끼 밍크는 150만 원에서 200만 원, 20자(6m)는 25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 했어. 요즘은 크기는 물론 선도나 껍질 두께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지.

김 : 포경선이 다른 어선에 비해서는 안전하다고 하더군요.

환 : 포경선은 노는 날이 많아. 비 오고 안개 끼면 앞이 안 보이니 바다에 나갈 수 없고, 파도가 높으면 배가 속도를 못 내고 위험해서 출어를 못 하지. 밤에도 보이는 게 없으니 움직일 수 없고.

김 : 그래도 사고 위험은 있지 않을까요?

환 : 나도 죽을 고비가 한두 번 있었어. 갑판장 시절에 포수가 총을 쐈는데 헛방을 했어. 키를 총 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순간 그렇게 못 한 거야. 그러자 배 위에 허술하게 놔둔 큰 밍크고래가 한쪽 방향으로 밀려서 배가 확 쏠려버렸지. 빨리 키 풀어라 고함지르고 난리가 났어. 우와 겁나데. 또 한 번은 항구에 정박해둔 배에서 합선으로 불이 나 곤욕을 치렀지.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다른 배에 비하면 안전한 편이야.

김 : 포경선 탈 때 추억이라 할까요, 한 토막 얘기해주신다면.

환 : 벌이가 괜찮을 때 흑산도 가서 돈 좀 썼지. 흑산도가 뱃사람들의 수도 아닌가. 그때 한 세월 갔어. 추억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1970년 4월 서해 격렬비도 앞바다에서 간첩선 격침시킬 때 바로 옆에 있었지. 조명탄이 대낮처럼 하늘을 밝히고 정말 살벌했어.

김 : 포경선 타면서 기분 좋았던 때는 언제입니까?

환 : 뱃사람이야 고기를 많이 잡을 때가 가장 좋지. 나가수 같은 큰 고래를 잡으면 만선기를 달고 항구로 들어가지. 뱃고동 세 번 울리면서. 그래도 너무 많이 잡으면 지쳐. 고래는 무게가 있으니까. 전라도 가서 하루에 밍크고래 서너 마리 잡으면 몸도 힘들어. 고래 잡는 것도 힘들지만 그걸 배 위에서 다 깨야 하니 얼마나 지치겠어. 소금에 절여놨다가 운반선에 넘겨주는 일이 또 힘들어. 배에 기름도 넣어야 하고 얼음도 실어야 하고, 밤새 선원들이 그 일을 하다 보면 낮에는 꾸벅꾸벅 졸다가 배 옆으로 고래가 지나가도 모르지.

김 : 포경 금지되고는 무슨 일을 하셨는지요?

환 : 작은 작업선 타다가 형제들이 힘든 뱃일은 그만하라고 해서 철강 공단에 들어갔어. 배도 팔아치우고 용접 기술을 배워 한동안 잘했지. 10년을 못 채웠는데 IMF가 터져 공단에 일거리가 없는 거라. 공치는 날이 한두 달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도무지 알 수가 있나. 얼마 갖고 있지 않은 재산은 자꾸 까먹고. 도저히 안 돼 사표를 내고 다시 배를 탔지. 시간이 좀 지나서 철강 공단의 그 회사에서 다시 일 좀 해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 다시 가겠어. 계속 배를 탔지.

김 : 구룡포에서 포경선 탔던 분들 소식은 듣는지요?

환 : 포수나 선장 하던 분들은 거의 돌아가셨고, 갑판장 하던 분들도 얼마 남아 있지 않을 거야.

김 : 뱃일이 힘들 텐데 앞으로도 계속하실 겁니까?

환 : 나이 들어도 놀 수야 있나. 지겨워서 놀지도 못해. 뱃일을 하는 데까지 해야지.

대담·정리 : 김도형(THE OCEAN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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