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어촌 공동체를 지켜온 축제의 한마당

등록일 2021-06-14 20:16 게재일 2021-06-15 13면
스크랩버튼
포항의 해양문화<br/>동해안굿과 포항의 무속 ③ - 동해안 별신굿의 위상

2016년 4월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경북 영덕군 남정면 구계리에서 열린 별신굿. /반혜성(단국대학교 연구교수) 제공

동해안의 수많은 어촌에서는 어로가 중요한 생업 수단이기 때문에 사나운 바다에 나가야 하는 부담과 두려움을 항상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어촌에서는 안전과 풍어를 동시에 바라게 되고, 이러한 소망을 기원할 수 있는 제의를 자연스레 찾게 되었다. 동해안의 마을마다 전승되는 ‘별신굿’은 늘 위험에 노출된 어촌 공동체를 안정시키고 단합을 도모하는 장이 되어 왔다.

동해안의 각 마을에서 무당이 주관하는 큰 규모의 마을굿을 ‘별신굿’이라 한다. 이는 마을별로 오랫동안 공동체의 단합에 기여했던 오랜 역사성을 가진 제의다. 별신굿이라는 말뜻이 궁금할 것이다. ‘별신’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신을 특별하게 모신다’는 의미로 풀이되기도 하지만, 서라벌의 ‘벌’과 같이 ‘평야나 들의 신’이라 해석하기도 하고, 대부분 바닷가에서 쓰는 말인 만큼 ‘뱃신’, 즉 ‘배의 신’을 뜻하는 말이 변하여 ‘별신’이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동해안의 별신굿은 매년 행해지기보다 3년·5년·10년에 한 번씩 한다. 마을마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기에 그 시기가 유동적이기는 해도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주민 한데 모여 화랭이와 연극하고 춤 추고

어민들의 안전과 풍어 기원하는 별신굿은

특별한 오락 없던 시절 마을축제와도 같아

포항 구룡포읍 강사리서 행해진 ‘호탈굿’

종이탈 쓴 호랑이 잡는 연극적 굿놀이로

호환 빈번하던 시절 안녕 기원 의미 남아

무속의 역사성과 별신굿의 개성 대표해

어촌 주민들이 손꼽아 기다린 별신굿

별신굿의 목적은 마을 공동체의 단합을 도모하는 역할이 가장 컸고, 구성원들이 모여 무당의 난장굿을 즐기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축제성’이 강조되는 자리였다. 별신굿이 꾸준히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은 구성원 모두의 보편적 소망인 풍요를 기원하는 목적을 지녔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바다의 상태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업으로 살아야 했던 지역에서는 어로 활동의 풍요로운 결과야말로 마을의 모든 주민이 바라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기에 별신굿의 존재는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같은 소망을 기원하는 자리였다. 특별한 오락이 없던 시대에 재능 있는 화랭이들의 노래와 춤, 연극을 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다 같이 먹고 마시는 자리가 주는 즐거움은 별신굿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였을 것이다.

별신굿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전통신앙인 무속을 중심으로 했겠지만, 유식(儒式) 제의가 굿을 하기 전에 이루어지고 마을의 농악대가 참여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행사였다. 굿이라는 제의의 과정은 마을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부정굿, 당맞이굿, 청좌(請座)굿, 세존(世尊)굿, 성주굿, 천왕굿, 심청굿, 군웅(구능)굿, 손님굿, 계면굿, 용왕굿, 거리굿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우선 부정굿으로 굿판 주변을 정화하고 차례로 신들을 불러 모신다. 그렇게 굿판을 깨끗이 한 다음 가장 먼저 마을신을 불러 모셨다. 마을신보다 높은 신도 많겠지만, 마을굿을 하는 것이니 별신굿에서 가장 먼저 모시는 것은 마을신이 되어야 한다. 그다음부터는 하늘에서 인간세계로 내려왔다는 천상신인 세존부터 줄줄이 신을 불러 모신다. 그리고 신을 모실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소망을 기원할 수 있었다. 다른 지역도 그렇겠지만, 동해안굿에서는 때로 무당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굿에 참여하며 즐기기 위해 굿판의 가운데에 나서서 화랭이와 함께 연극을 하기도 하고, 무당 옷을 대신 입고 춤을 추기도 했다.

동해안 굿음악은 다양하고 복잡한 장단을 전승

동해안굿 하면 지화(紙花)가 떠오른다고 할 정도로 굿판을 장식하는 종이꽃의 화려함은 어느 무가권에서도 따라올 수 없다. 동해안 별신굿의 굿당에는 각종 지화들이 장식되는데 연봉이 2~5개, 12개의 꽃다발이 다섯 묶음 정도 배치된다. 오구굿으로 가면 열 종류도 넘는 꽃들이 형형색색 굿상의 배경으로 장식된다. 별신굿에서는 지화의 사이에 용떡을 3~5개 놓는다. 또한 지화의 좌측과 우측에는 팔각등과 용선이 장식되어 있다. 정면에는 죽은 자의 넋을 받는 종이 인형인 ‘넋전’이 세 종류 정도 자리잡게 된다. 넋전의 아래에는 그날 모실 신을 위한 제물이 차려진다.

동해안굿을 전승하는 세습무는 집안 대대로 무업과 음악을 잇는 생득된(ascribed) 예술가다. 이런 예술적 배경으로 인해 동해안굿 음악은 타악기 위주로 편성되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장단을 전승한다. 또한 같은 전승자가 연행하더라도 별신굿마다 굿의 연행 양상은 조금씩 차이가 나기 때문에 지역별로 연구되었다. 전통음악을 연구하는 전남대 이용식 교수는 2013년 5월 24일부터 25일까지 열린 포항시 구룡포 별신굿의 현장을 바탕으로 별신굿 음악을 연구하였다. 그에 의하면 별신굿의 음악은 무악 장단으로 다장(多章) 형식으로 된 것이 많다. 청보 장단은 5장이고, 제마수 장단, 부정 장단, 삼공잽이 장단 등은 3장이다. 이들 장단은 대개 느린 혼소박 장단으로 시작해서 빠르고 단순한 장단으로 진행된다. 장단이 빨라지면서 장구의 변주 가락도 다양해진다. 구룡포 별신굿 무악의 장단은 3+2+3 또는 3+2+3+2의 혼소박 장단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3+2+3의 혼소박이 단위를 이루어 5~6박이 하나의 악구를 이루는 장단은 청보 1장, 제마수 1장, 부정 1장, 드렁갱이 3장, 자삼 장단 등에서 나타난다. 이런 혼소박 장단은 복잡한 박자 구조로 되어 있고, 장구와 꽹과리가 매우 복잡한 변주 가락을 연주하는 점이 동해안 별신굿의 음악적 특징이다.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기원하는 ‘호탈굿’

동해안굿은 신화가 발달했을 뿐만 아니라 화랭이에 의해 연극적 재현이 이루어지는 굿놀이가 발달했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는 동해안 별신굿의 한 굿거리로 호탈굿이 있다. 종이로 만든 탈을 쓴 호랑이가 굿판에 등장하면 포수역을 맡은 무당이 이 호랑이를 잡는 굿놀이다. 과거 호환(虎患)은 무서운 재앙 중 하나였다. 호랑이에 물려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마을굿에 모셨던 것이 ‘범굿’이라 불리던 호탈굿이다. 영일군 구룡포읍 강사리에서도 호탈굿이 이루어졌다. 민속학자 최길성은 1971년 음력 10월 5일 하루 동안 포항 구룡포읍 별신굿에 등장하는 호탈굿을 조사하였다. 이날 이루어진 굿에서 호탈굿은 별신굿의 맨 마지막 굿거리인 거리굿의 바로 앞에서 연행되었다. 별신굿의 거의 막바지에 연행하기 때문에 이 굿거리를 할 때에는 모닥불을 피우거나 등불을 달게 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굿판에 생기는 어둠과 빛의 조화가 호탈굿의 배경이 된다. 이날 호탈굿에서 포수는 무당 김석출(책에는 김경남(金景南)이라 써 있다)이, 호랑이는 무당 제갈태오(諸葛泰伍)가 맡았던 것으로 기록되었다.

호탈굿의 과정은 크게 ‘호랑이 등장-포수 등장-호랑이 사냥-호랑이의 가죽 매매’로 구성된다. 먼저 준비된 굿판에서 잽이들이 무악을 연주하면 호탈을 쓴 호랑이 역을 맡은 화랭이가 등장해 굿판 가운데 있는 소나무의 주위를 돌면서 춤과 재주를 보인다. 포수가 총을 대신해 작대기를 어깨에 메고 등장하면, 이를 보고 호랑이가 숨는다. 과거에는 호탈굿을 포함한 별신굿이 끝나면 호랑이가 먹고 가라고 소를 잡아 소머리를 산에 묻었다고 한다. 동해안 굿놀이를 연구한 이균옥 교수는 호탈굿의 각 장면과 연행 후 소머리를 묻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호랑이의 등장 장면은 ‘위협의 발생’이며, 포수의 등장 장면은 ‘위협의 해소 가능성’이다. 그리고 포수가 호랑이를 사냥하는 행위는 ‘위협의 해소’이며, 사람이나 가축 대신 소머리를 산에 묻는 행위는 이후에 호환이 없기를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간절한 ‘기원’이다. 아래의 인용문은 최길성이 1971년에 조사한 구룡포읍 강사리 별신굿에서 호탈굿의 한 대목이다.

포수 : 온 김에 이 범을 잡아야 동네가 안과태평하겠는데, 이 범을 꼭 잡아야 되겠소.

잽이 : 그렇지.

포수 : (총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다가 범을 찾는다. 범은 이리저리 피한다. 포수가 범을 발견하고 총을 겨누면서) 네 이놈 범아, 땅땅땅(잽이가 장구를 딱딱딱 친다. 한 사람이 포수가 겨누는 총 밑에서 숯불을 던져 총알이 나가는 시늉을 한다. 호랑이는 총알을 맞고 이리저리 두세 번 뒹굴다가 죽는다. 포수가 호랑이 가죽을 벗긴다고 하여 호탈과 종이로 만든 가죽을 벗겨 들고 판다). 이 산중의 호랑이를 잡아 가죽을 벗겼으니 이 동네서 사야 안 되겠소.

잽이 : 그렇지.

(어촌계장이 나와서 돈 1천원을 내고 가죽을 받아가지고 모닥불에 던져 태워버린다.)

포수와 호랑이로 분한 화랭이들의 동작과 대사를 통해 별신굿 굿놀이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포수는 숨어 있는 호랑이를 찾아내어 총을 쏘아 잡은 후에는 가죽을 벗기는 시늉을 한다. 그리곤 반드시 그 가죽을 어촌계장이나 이장, 제관에게 돈을 받고 팔았다. 한지로 만든 호피를 산 이들은 이를 불에 태운다. 인용문에 나온 포수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호탈굿을 하는 목적은 그 마을의 안과태평이다. 호환이 빈번하던 시대에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별신굿에서 호탈굿을 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호환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가 남아 비교적 근래까지도 포항 구룡포에서는 호탈굿을 행하였다. 호탈굿은 별신굿의 개성적인 굿놀이이자 무속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별신굿에서는 호탈굿 외에도 다양한 연극적 굿놀이가 이루어지고, 굿판에 참여한 청중은 큰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글 / 염원희(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포항의 해양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