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내고 때를 잘 맞춰야 볼 수 있는 나무가 있다. 다름 아닌 때죽나무다. 헛걸음 한 번 한 뒤 다시 날을 잡아 포항시 흥해읍 도음산으로 향했다. 한참 오르고야 개울가 중턱에 자리 잡은 때죽나무꽃을 만날 수 있었다.
때죽나무는 특이하게 꽃이 아래를 향해 핀다. 종처럼 생긴 하얀 꽃이 일제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다섯 개의 꽃잎을 살포시 펼치면 그 가운데에 노란 수술 열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때죽나무꽃은 띄엄띄엄 감질나지 않게 한 무더기씩 모여 핀다. 마치 소곤소곤 재잘대는 오월의 해맑은 소녀들 같다. 열흘 남짓한 짧은 꽃이 피었다 지면 이어서 때죽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때죽나무 잎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이다. 갸름한 잎에 잎맥이 있고 잎자루가 적당한 길이로 달려 여느 나뭇잎과 비슷하다. 만약 나뭇잎을 공장처럼 똑같이 찍어낸다면 자연은 얼마나 단조롭고 심심할까. 다행히 조물주는 아주 조금씩 차이를 두어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잎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무마다 얼굴, 길이, 모양, 굵기, 방향 등이 모두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꽃이 땅을 바라보고 있어 때죽나무 아래서는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게 된다. 이곳에 오래 서 있는 나무는 땅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나무는 저기 흙 속에서 재잘대는 흙의 소리에 귀를 열어 둘까, 아니면 가지에 물줄기를 밀어 올리느라 애쓰는 것들에 대하여 기도를 내려보낼까. 가끔은 다리가 아파 힘이 들 때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퍼질러 앉아 쉬고 싶기도 하겠다. 나도 땅을 향하여 몸을 낮춰 잠시 쉬면서 생각에 잠긴다.
봄꽃이 있으면 가을꽃도 있다. 키 큰 나무가 있으면 작은 나무도 있다.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나무가 있고, 푸른 가지만으로 제 역할을 하는 나무도 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봄에도 꽃을 피우고 가을에도 꽃을 피우고 싶다. 남보다 내가 우뚝 솟길 원해서 기를 쓰며 오르고 또 오른다. 그러다 감당 못 하고 추락해 구겨지고 부서지는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때죽나무처럼 아래를 내려다본다면 나만큼의 키로도 만족하며 살아가면 추락도 없는 것을.
생장만 한다면 때죽나무는 아마도 몇십 미터까지 자랐을 것이다. 그런데 생장을 멈추기도 하며 겨우 7~8미터 높이에 머문다. 몸피는 한 뼘에서 두 뼘 정도의 굵기로 나무치고는 그다지 넓지 않은 편이다. 크게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쓰임이 많지 않지만, 나무 자체의 매력을 뒤늦게 인정받아 꽃이 아름다운 정원수와 도시의 가로수로도 인기가 있다.
때죽나무의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물고기를 떼로 죽인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다. 물고기를 잡을 때, 때죽나무 열매와 잎을 돌에 찧어 흐르는 물에 풀어 놓으면 물에 닿은 물고기가 잠시 몸이 뻣뻣해진다. 아가미의 움직임도 멈춘다. 그러면 떼로 물고기를 건져 올릴 수 있었다. 어독을 이용한 방법으로 조상들이 경험으로 터득한 지혜였다.
어머니의 어머니도 때죽나무를 이용해 빨래했다. 논과 밭에서 일한 아버지들의 옷은 켜켜이 묵은 때가 쌓여 있다. 어머니들은 개울가에 모여 빨랫방망이로 두들겨 패도 찌든 때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때 때죽나무의 잎을 따 툭툭 짓이겨 물에 풀어 놓으면 힘들게 빨랫방망이를 두드리지 않아도 때를 쉽게 뺄 수 있다. 농사일에 지친 어머니들의 노고를 덜어준 때죽나무는 그래서 우리의 정서와 친근하다.
도음산에는 때죽나무 군락지가 있다. 개울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왼쪽에 나무 테크가 놓인 길이 있다. 그 길 따라 산 중턱쯤에 오르면 때죽나무 군락이 있다. 산 위에서 나는 꽃향기를 따라가면 길 잃을 염려 또한 없다. 앵앵거리는 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내준다. 향기가 피워내는 오솔길 따라 걸으면, 숨이 막 차오를 때쯤 하얗게 핀 꽃 세상을 마주한다. 나뭇가지는 햇볕 따라 몸을 뒤트는지 양지바른 곳에 벌써 하얀 꽃들이 흐드러졌다. 아마도 오늘의 향기는 몇 날은 갈 것 같다.
산에서는 한 발자국 걷고 두 발자국 쉬기를 되풀이하는 게 좋다. 나무와 나란히 서서 쉬면서 고개를 들어본다. 나무들 사이로 설핏 비치는 햇살이 꽃에 닿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지들이 살랑거리며 맞장구치는 모습도 보인다. 그 위로 나비, 벌들이 드나드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때죽나무 꽃그늘 아래 오래도록 머물며 오월의 정취를 만끽했다.
꽃들의 잔치는 산 아래에도 있었다. 떼로 모여 있는 유치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무더기 무더기로 핀 때죽나무에 살포시 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