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보고서 ‘독도체험기’서 <br/>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일본 시마네현이 독도를 일본 땅임을 학술적으로 주장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자 1907년 조사한 연구보고서(독도 체험기)에 독도가 한국 땅임을 보고한 문서가 발견됐다. 일본학자가 독도가 한국 땅임을 기록한 가장 최근의 기록으로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사진·전 부산외대 교수)이 일본 국립도서관에서 찾아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905년 2월21일 무인도인 독도를 편입하라고 시마네현에 지시했다. 시마네현은 같은 해 2월22일 고시 40호로 독도를 편입했다. 하지만, 학술적인 뒷받침이 필요하게 되자 시마네현은 그해 5월 27일 러일전쟁 종전후 독도를 학술적으로 자기를 땅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면서 여러 연구단체를 독도 파견했다.
이 가운데 1907년 독도연구를 책임진 일본 향토사학자 오쿠하라 헤키운(奧原碧雲)이 독도를 견학 후 쓴 ‘죽도 또는 울릉도’라는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러일전쟁 이후까지 일본인은 독도에 들어가지 못했다.
“안용복 도일사건 이후 이시수(石州·현 시마네현 하마다시) 연해에 사람들이 다시 도해(독도해역 진입)를 시도했지만 막부가 금지해 텐보(天保,1830년) 이래 수십년간 일본인은 거의 독도를 잊고 살았다”고 적었다.
막부(幕府)는 안용복 도일 사건 이후 “독도는 조선 땅이다”며 일본인들의 도해를 금지시켰다.
이 보고서에는 “일본해군 수로부(1900년 초)의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 또는 해도(海圖)에도 울릉도를 일명 송도라고 오인 발표함으로써 리앙쿠르섬은 ‘자연구기(自然舊記)’의 죽도라고 오인되고 말았다”고 적었다.
또 “죽도(울릉도)는 겐로쿠(元祿) 중엽부터 조선판도로 인정했기 때문 리앙쿠르섬(독도)도 조선판도에 인정하게 이르렀다”며 “메이지(明治) 36년 인슈(현 오키섬)섬에 살던 나카이 요사부로가 독도를 신죽도(新竹島)라 칭하고 물개 잡이를 시도했다”고 기록했다.
김문길 소장은 “이 체험기에 따르면 러일전쟁까지는 독도(죽도)대해 일본인들은 물론 시마네현 사람들도 독도는 아예 조선영토라 잊고 살았다”며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를 혼돈해 죽도라고 하지만 당시 죽도는 울릉도, 송도가 독도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 해군수로부가 발간한 ‘조선수로지’‘해도’에도 울릉도(죽도) 독도(송도)는 조선국에 속했다고 기록했다.
지금도 일본 문서는 죽도, 송도는 조선영토로 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안용복 사건(1696년) 이후 일본 어선들이 불법으로 고기를 잡았다가 사형까지 당했고 지난 1830년부터 도해하지 못했고 조선 땅이 맞다고 일본사학자가 자백하고, 기록한 문서다”고 말했다.
그는 “독도를 시찰탐색하고 펴낸 정부기관의 책으로 100년 전 기록한 역사서로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라고 증명하는 아주 귀중한 증명서류”라고 설명했다.
울릉/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