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물 중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세계 각국의 사회주의 체제도 변화하고 있다. 동구 사회주의 국가는 체제 변화 과정에서 붕괴되고 말았다. 동독도 1990년 서독으로 통합됐다. 소연방은 해체되고 러시아만 홀로 남았다. 푸틴의 러시아를 사회주의 국가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국도 모택동 이후 지도자를 여러명 교체하면서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에 접목됐다. 공산 베트남도 ‘도이 모이’를 통해 그들 경제의 앞날을 밝게 해주고 있다. 중미의 쿠바도 미국과 수교하고 대외 개방의 폭을 넓히고 있다. 북한도 이러한 세계사의 흐름에 역행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 체제의 변화 척도는 이데올로기, 정치체제, 경제 정책이라는 변수를 통해 측정한다. 이 척도를 북한의 개혁 개방과정에 적용해 보자.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도 다소의 변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先代)의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뒤로 미루고 사회주의 국가 재건을 위한 ‘경제 건설 노선’을 앞세우고 있다. 전자가 북한의 공식적 규범적 이데올로기라면 후자인 ‘경제건설’노선은 그들의 현실적 실천이데올로기인 셈이다. 2011년 12월 부친의 사망으로 집권한 김정은 위원장은 ‘핵·경제 병진 노선’을 과감히 탈피해 ‘경제 건설 노선’을 선언했다. 곳곳에서 그는 선경(先經), 선민(先民)을 앞세우고 경제 건설 현장의 노동자를 찾고 있다. 이러한 북한 통치 이데올로기의 변모는 정치제도나 정책의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기 군지도부를 수시로 교체했다. 그러나 당·국가 일원체제의 원칙은 존치되고 대대적인 정치 개혁은 수반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백두혈통론에 따른 수령승계론은 김정은 1인통치의 기반이다. 항일 빨치산 후손과 혈연적인 권력 측근이 그를 보위하고 있다. 북한의 권력 엘리트는 이념성보다는 전문성이 중시되고 젊은층이 과감히 권력 핵심에 기용되는 것이 작은 변화이다. 북한의 경제 엘리트 박봉주의 총리 재기용은 북한식 개혁·개방의 신호이다. 그러나 북한의 1인통치 체제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며 권력의 초기 분산 형태인 집단지도 체제의 가능성은 아직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이 북한식 정치개혁의 한계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 건설 노선은 북한식 개혁·개방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과거와 달리 북한의 낙후된 경제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 그는 농업 생산량 증산을 위해 협동농장의 운영 방식을 25∼30명의 분조 관리제에서 가족 영농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2012년 농업, 공업 등의 각 분야에서 성과에 따라 생산물을 분배한다는 6·28조치를 단행했다. 북한의 종합 시장은 400여 개로 확대되어 경제의 동력이 살아나고 있다. 시장 확대와 더불어 운수업과 휴대전화가 600만대 이상 보급됐다. 그들은 적은 투자로 현금을 만질 수 있는 원산과 백두산 관광개발 사업을 과감히 추진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사회주의 시장 경제의 초기단계에 들어섰는데 그것은 다시 회귀하기 어렵다는 시장의 기본 원칙이다.
이처럼 북한의 개혁 개방은 위로부터의 개혁 개방이며 경제 분야에서 선행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체제는 국가의 안전보장과 민생 경제의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체제 개방의 당위성과 체제 붕괴의 위험성이 그들의 딜레마이다. 그들이 오래전부터 전 세계 사회주의의 국가가 다 망해도 북한은 망하지 않는다고 우리식 사회주의를 선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한이 2차 북미 회담을 통해 비핵화 프로그램과 북미 평화 협정초안을 맞교환할 수 있을까. 그것이 성사될 때 북한식 개혁·개방은 본격화될 것이다. 우리의 대북 경제 협력이나 투자도 당분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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