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집행위원회는 지난 6일(현지 시간) 한국산 철강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이달 중 잠정 발동하기로 했다. EU 집행위는 미국이 지난 3월 고율의 철강 관세를 부과하자 “수출이 막힌 한국산 철강 등이 유럽으로 덤핑 판매될 우려가 있다”며 올 3월 말부터 세이프가드 조사를 벌여왔다. 지난 5일 실시된 찬반표결에서 EU 28개국 중 25개국이 찬성표를 던져 미국의 보호무역에 맞서 EU도 자국의 이익을 지키겠다며 단합한 것이다.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 폭탄으로 이미 큰 타격을 받고 있는 포항철강공단 업체들에게 EU의 세이프가드 발동은 설상가상이다. 한국은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 대상에서 빠지는 대신 미국 정부가 요구한 수출 쿼터제(2015~2017년 연평균 수출량의 70%)를 수용한 상태다. 이 때문에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포항철강공단 내 강관업체인 넥스틸의 경우 500억원을 투입해 미국으로의 생산공장 이전을 서두르고 있다.
철강업계는 일단 수요업체들과 연계해 EU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성과를 낼 수가 없다. 국제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는 통상압력을 ‘경제 문제’로만 봐서는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철강 관계자들은 “대부분의 수출 물량이 유럽 국가들의 기타 소비재 시장 등 자국 산업과 맞물려 있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설득 작업에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통상압박에 대해 케네스 커티스 전 골드만삭스 부회장은 “한국이 관세폭탄을 비껴가려면 백악관 참모는 물론 연방정부와 주정부 관료, 기업 등 다방면으로 접촉해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시장다변화를 통해 다양한 수출여건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미국과 유럽 의존율을 낮추고 시장을 다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음은 명약관화해졌다. 하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업계가 전방위적으로 참여하는 ‘올코트 프레싱’ 전략으로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 견디다 못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합작 형태로 미국으로의 생산공장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박효정 넥스틸 대표의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심정”이라는 말이 비장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