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을 뵌 지 벌써 햇수로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간 잘 계셨는지요? 이곳 내가 사는 남녘땅에는 벌써 모란꽃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2008년 6월, 6·15 8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우리 일행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선생을 처음 뵈었습니다. 왼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단 선생님 모습에 처음에는 약간 긴장도 됐습니다. 당시 행사에 동행했던 C 교수님, 평양 예술 소조 단원들에게도 안부를 전합니다. 우리가 당시 독일 여러 곳에서 펼친 행사 장면이 스쳐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느 독일 동포 농막의 송별 만찬에서 이별을 슬퍼하던 북한 여성단원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선생과 나는 독일 동포들 앞에서 조국 통일을 위한 동포들의 역할을 강조했지요. 그 발표장에서 선생은 느닷없이 당시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을 기억하나요. 당시 갓 출범한 이명박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까지 하더군요. 나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은 찬성하지 않지만 우리 대통령에 대한 당신의 거친 비난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당신의 발언을 제지했지요. 독일인들까지 참석한 연설장 분위기가 처음부터 상당히 험악해진 것을 당신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당신처럼 북한의 핵 주권을 주장하던 김정은 위원장이 북핵 포기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남녘땅에서는 북한의 비핵화의지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선생의 솔직한 생각은 어떠합니까.
당시 선생과 함께했던 프랑크푸르트 학술회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당시 회의장에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 동포들뿐 아니라 독일인들도 상당수 참석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원생이라고 신분을 밝힌 어느 학생이 선생에게 탈북자 문제를 날카롭게 질문했지요. 그 때 선생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북한에는 탈북자가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이 탈북자 문제를 보도한 독일 신문을 흔들면서 재차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선생은 얼굴이 상기되어 `공화국에는 탈북자는 없고 공화국 배반자는 있다`고 대답해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림이 있었습니다. 지금 남한 땅에는 탈북자가 3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들이 왜 그들 공화국을 배반하는지를 당신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J 선생, 아침 신문을 펴니 판문점의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의 정상회담이 4월 27일로 합의 됐다는 기쁜 기사가 보입니다. 5월에는 북미 정상 회담도 개최된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어제는 남한의 예술단 태권도 시범단 120여 명이 전세기로 평양을 방문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렸습니다. 그중에는 `J에게`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도 포함되어 글을 쓰면서 묘한 생각이 듭니다. 평양에 거주하시는 선생께서도 이들의 동평양 예술극장 공연에 초대됐으리라 생각합니다. 모처럼 마련한 이러한 한반도의 화해 기류가 오래도록 이어져야 우리도 만날 수 있겠지요. 남북이 정상적으로 교류하고 교역하여 `사실상의 통일`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북한의 통일 문제 전문가인 선생의 생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J 선생, 독일의 행사 기간 중 우리가 에센의 어느 노천 식당에서 맥주 한 잔 했던 것을 기억합니까. 김일성 배지를 단 당신께서 정장을 벗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소탈하게 맥주를 즐기던 모습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공식 회의장의 경직된 태도와는 달리 예의를 잘 갖추고 편안한 모습으로 담소하던 당신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선생께서는 그 때 남녘 제주도 땅을 밟아 보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지요. 나 역시 북한 삼지연 비행장에 내려 북한 땅 백두산을 여행하고 싶습니다.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봄 눈 녹듯이 녹으면 우리의 만남도 가능하겠지요. 방북 예술단의 주제가 `봄이 옵니다`로 되어 있군요. 멀리서 나마 선생의 건강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