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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기

등록일 2016-11-08 02:01 게재일 2016-11-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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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미<br /><br />서강대 교수·글쓰기연구센터
▲ 김남미 서강대 교수·글쓰기연구센터

“`끓는다`가 ㄹㅎ받침이 맞제?”

“`겨란`이라고 써야 맞는 거 아니냐?”

“`나았다`에는 `ㅎ`을 넣는 게 맞제?”

일흔이 넘은 엄마의 질문이다. 요사이 부쩍 이런 질문들이 늘었다. 심지어 요새는 초등학교 학부모를 위해 쓴 내 `띄어쓰기` 관련 책을 읽는 지 증정용 책의 갈피가 제법 많이 벌어졌다. 비로소 딸이 당신 수준에 맞는 책을 썼다고 대견해 하기도 한다.

엄마가 던지는 질문들은 나를 당황하게 한다. 70대 엄마의 이런 질문이라니…. 나는 맞춤법은 대중과 만나야 비로소 살아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수강생들에게도 늘 일상에서 질문을 던져야 맞춤법이 몸에 밴다는 말들을 자주 한다. 이런 내용을 강조한 맞춤법 관련 책만도 5권을 넘게 썼건만 나는 여전히 내 독자로서의 엄마가 낯설다. 어쩌면 나는 엄마가 맞춤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엄마는 항상 억세기만 한 사람이었다. 10자짜리 장롱도 너끈히 혼자 옮기고 40마리도 넘게 들어갈 닭장을 순식간에 짓던 엄마다. 망치질이나 형광등, 두꺼비집 퓨즈를 가는 일들은 원래 엄마들이 하는 일인줄 알았다. 부업으로 하던 손뜨개의 앞판을 두 개를 짜고 나야만 시험공부를 할 짬을 주던 엄마, 당신 몸무게의 서너 배나 되는 손뜨개 짐을 이고 30분을 너끈히 걸어 화물을 부치던 엄마였다. 언제든 날래게 몸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해내기만 하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맞춤법 질문이라니. 어울리지 않아도 한참 안 어울리는 일이 아닌가?

건축사무소를 하는 언니가 여성 리더십 강연을 한다고 강연자료를 만들라고 요청해 왔다. 하고 싶은 말을 한두 장 써 보내면 만들어 주겠노라고 응답했다. 언니의 초고를 보다가 문득 거기서 엄마를 발견했다. 뜨개바늘이든, 망치든, 톱이든 무엇이든 들고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 내는 엄마, 언제나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 가던 엄마, 언제나 놀지 않던 엄마, 그러면서 네 아이들을 그저 놀게만 하지 않았던 엄마가 사연, 사연 가득히 들어 있었다.

우리 자매는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 내는 데 익숙해 있다. 어떤 일을 맡든 두려워하지 않고 넙죽 받아서 해내는 데도 익숙해 있다. 덕분에 우리는 각자가 조그만 성취들을 이루어내었고, 가끔은 그 성취가 남에게도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기여의 기저에는 언제나 억척스럽던 엄마의 모습이 배어 있다는 것을 언니의 초고를 보면서 발견한 것이다. 그런 엄마가 요사이 새로운 일에 까지 손을 뻗었다. 맞춤법이다.

사실 엄마가 맞춤법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만은 아니다. 일흔이 넘은 엄마는 매일 일기를 쓴다. 슬쩍 넘겨다보니 하루에 쓰는 양만도 두세 장은 넘어 보인다. 벌써 다 쓴 일기장이 두꺼운 노트로 10권이 넘는다. 이제는 펜을 들고 뚝딱 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은 엄마 일기장의 내용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 언니의 강연자료에 들어 있는 강한 여성을 만든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일까? 가난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아내로서의 서러운 세월일까? 당신을 닮아 기가 세기만한 딸들에 대한 섭섭함일까? 엄마는 우리가 당신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을 눈치 챘을까?

그런데 엄마는 자꾸 이런 것만 묻는다. 어색하게도….

“도루무기는 그냥 도루무기라고 쓰제?”

“깍두기는 받침에 `ㄲ`을 쓰는 게 맞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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