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기초 지방 선거시 정당 공천제를 유지한다는 입장을 당론으로 확정할 전망이다. 지난해 지방 보권 선거에서 대선공약 이행이라는 명분으로 정당 공천을 하지 않았던 여당이 이번에는 정당 공천제를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정당 공천제 폐지가 위헌적 요소가 있고, 지방 선거의 후보자 검증이 어려울 뿐 아니라 지방 토호 세력이 지방 정치를 장악하고, 여성이나 장애인 등 소수자의 정치 참여가 봉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누리당의 정당 공천제 유지는 일견 명분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대선 공약의 파기로서 여론의 저항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야당뿐 아니라 시민 단체도 이러한 공약 파기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이미 지난 7월 정당 공천제에 폐지를 우여곡절 끝에 당론으로 확정한 민주당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또다시 박근혜 정부를 공약파기 정권, 무책임한 정권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안철수 신당이나 `국민 동행`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오랜만에 조용하던 여야의 새해 정국이 또 한 번 소용돌이 칠 전망이다.
이번 새누리당이 내세운 정당 공천제 유지라는 당론은 이유나 명분에서 선뜻 수용하기 힘든 측면이 많다. 가장 먼저 앞세운 정당 공천제 폐지의 위헌이라는 주장만 해도 그렇다. 미국 지방 선거에서도 우리의 정당공천 폐지에 해당하는 정당 표시 금지 제도가(non-partizan)가 정착된 도시가 77%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1995년 기초 지방 선거에서 무공천제로 선거를 실시한 바도 있지 않는가. 이러한 우리의 정당 표시 금지제도가 아닌 무공천제 법제화가 위헌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대통령 선거 공약인 기초 선거에서의 정당 공천제 폐지가 위헌이라는 주장은 법리적으로 그 타당성을 더욱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여당이 내세운 공천제 폐지가 지방 토호 세력의 지방 정치 장악으로 지방 정치의 탈선이라는 주장도 명분이 약하다. 정당 공천 폐지로 지역 토호 세력의 영향이 커질 것은 우려 되지만 그들이 지방 정치를 좌우 한다는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다. 우리나라의 지방 선거 문화와 풍토도 이를 제어할 정도로는 성숙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동안의 기초 지방 선거과정에서 정당 공천제로 인한 공천 잡음과 비리가 더욱 지방 정치를 혼탁케 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이번의 공천권 폐지에 반대하는 여당의 명분과 실질이 다른데 문제가 있다. 공천제 유지라는 내면에는 의원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지 않는가. 솔직히 말하여 현재와 같은 공천제 하에서는 지역구 의원들이 기초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공천권을 행사해온 것이 사실이다. 항상`갑`의 위치를 확보한 의원들이 이번에 만약 공천제가 폐지된다면 `을`의 위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기에 민주당의원 상당수가 정당 공천제 폐지를 당원 67.8%의 찬성으로 확정하는 과정에서 반발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정치 개혁은 여야의원들의 기득권의 포기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이러한 의원들의 기득권 유지 차원의 당론 결정부터 정치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집권 여당과 야당은 지금이라도 대통령의 선거 공약인 정당 공천제 폐지를 정치 개혁위에서 합의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뿐 아니라 심지어 안철수 후보 까지 정당 공천제 폐지를 국민 앞에 제시한 공통 공약은 그것을 지켜야할 이유와 명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당 공천 폐지에 찬성하는 여론(53.6%)이 반대 여론(24.6%)를 압도하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최소한 영호남의 특정 정당 독점이라는 선거 구도를 바꾸기 위해서라고 기초 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 공약은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