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300만원으로 어디서 집을 구하란 말입니꺼”

최승희기자
등록일 2013-03-14 00:32 게재일 2013-03-14 1면
스크랩버튼
포항산불 이재민 모여있는 학산경로당 가보니…
▲ 포항시 북구 학산동 학산경로당에서 지내는 산불피해 이재민들이 13일 오후 포항시 공무원과 지역구 시의원에게 현실성 없는 보상대책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고작 몇백 만원으로 포항 시내 어디에 집을 구합니꺼. 이재민 심정에서 생각한다면 이럴 수는 없지예. 안 그래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법 타령만 하고…. 억울한 우리는 우짜란 말입니꺼”

<관련기사 4·7면> 13일 오후 2시30분 포항시 북구 학산동 학산경로당.

지난 9일 산불로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은 학산동 주민 20여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경로당 밖에서부터 고성이 들렸다. 포항시 공무원들이 임대법 임차료 지원에 근거해 세입자에 한 해 가구 당 300만원의 임대료를 지원하겠다며 동의서 등 관련 서류를 받으러 온 참이었다.

임차료 동의서 받으러온 공무원과 실랑이

독거노인 등 20여명이 20평 공간서 `복닥`

피난때 옷차림 그대로…보상 막막 한숨만

나흘 밤을 꼬박 세다시피 해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주민들은 기회다 싶어 억울한 심정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수십 년 살던 집을 눈 뜨고 순식간에 잃었는데 고작 돈 몇백으로 다른 집을 알아보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 내 부모 내 가족이 같은 꼴을 당했다고 생각해보라며 막말도 내뱉았다.

공무원들의 만류에도 이재민들의 격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주민들이 이곳에서 생활 한지도 벌써 나흘째. 5만원~10만원짜리 월세에서 살던 독거노인·노부부·50대 싱글 여성 등 구성원들도 다양했다.

속옷에서 티셔츠, 양말, 외투까지 다들 나흘 전 대피할 당시 입고 있던 그대로라고 했다. 속옷 몇 벌을 구호품으로 받긴 했지만 낯선 물건이 싫어 입던 옷을 빨아 입고 있다고.

부엌 하나, 거실 겸 방 하나 있는 20여평의 좁은 건물에 20여명의 어른들이 며칠을 지내다 보니 씻는 것, 먹는 것, 잠자리, 움직이는 것 모두가 불편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불편한 것은 마음. 변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지, 받는다 해도 얼마나 될지 어느 하나 명확하게 결정된 것이 없어 희망의 끈 하나 없이 그저 넋 놓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공공근로 등 소일거리로 생계를 잇던 이재민들은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까, 그래도 오늘은 대책이 나오겠지라는 불안한 마음에 일손도 모두 놓았다.

자식도 없이 혼자 살았다는 한 할머니는 사람들의 고성 속에서도 대피 당시 악몽을 회상하는 듯 오랜 시간 방바닥 한 곳만 응시했다. 누가 말이라도 걸면 금세 눈물을 흘릴 듯 할머니의 얼굴에는 포기와 체념의 그림자가 가득했다.

조일선(57·여)씨는 “잠 한 숨 제대로 못자고 편히 쉴 곳이 없어 불편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마음이 제일 아프다”면서 “어제는 시장님이 왔다 가고 공무원들이 몇 번을 왔다 가지만 뾰족한 대책은 내주지 않으니 더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다. 다들 한숨만 쉬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피해를 입었다는 홍현만(49)씨는 “언론에는 곳곳에서 물품 기증이 줄을 잇는다지만 라면 몇 박스, 이불 몇 채 받은 게 고작이다. 인재라고는 하지만 가만 있다 당한 우리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한 지 모른다. 발 뻗고 편히 쉴 수 있는 내 집을 찾을 수 있도록 하루빨리 현실적인 대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고 말했다.

/최승희기자

shchoi@kbmaeil.com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