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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따뜻한 소통소리

등록일 2013-01-29 00:08 게재일 2013-01-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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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경옥 포항성모병원장·수녀

아침 기도 후 묵상시간, 수녀원 주방에서 도마소리가 조용히 들려온다. 간간히 들려오는 그 소리는 엄마가 아침준비하면서 내는 소리다. 기억은 이미 어릴 적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시조 읊는 소리로, 부모님 기도소리로, 포항시청에서 들려오는 애국가 소리(60년대 초등학교 시절엔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제자리에서 경건한 모습을 취했다)로 거슬러 종횡무진 한다.

우리는 아침잠을 깨우는 자명종 소리에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온갖 소리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소리는 곧 살아있다는 강력한 표시다. 무시무시한 소리, 형편없는 소리, 거짓소리, 바른 소리, 힘이 나게 하는 소리, 힘 빠지는 소리, 생명의 소리 등 우리는 점점 더 큰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간다. 어제보다 더 강력한 소리에 감동을 받고, 내일은 좀 더 다른 소리에 관심을 기울이며, 삶의 진정한 기쁨을 효율성과 합리성 그리고 스피드에 두고 있지는 않을까?

미국의 작곡자이자 전위예술가인 존 케이지가 작곡한 `4분33초`, 이 곡은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곡이면서도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한다. 4분33초 동안 소리 없는 소리로 1952년 8월29일 뉴욕 우드스탁에서 초연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위대한 작품이다. 그는 1악장 33초 동안 청중이 숨죽일 때 나무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를 들었고, 2악장 2분40초 동안 지붕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으며, 3악장 1분20초 동안 당황한 청중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침묵의 소리도 음악으로 볼 수 있는 예리한 영성을 지녔다.

매일 소임하는 병원의 현장에서는 인생의 모든 소리가 녹아있다. 산고를 겪으며 생명이 태어나는 분만실 소리, 생사를 오가는 단말마의 고통과 온갖 첨단 기계와 라인으로 복잡한 집중치료실, 수술실소리, 임종실에서 들려오는 이별의 아픔소리, 장례식장에서 들려오는 조문소리 등 가장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고 소명으로 받아들이며, 더 작은 소리에 마음을 모아 들어야한다. 이 마음이 흩어졌을 때 생명의 귀중한 때를 놓치게 된다.

병원복도에서 그리고 정원 귀퉁이에서 말없이 앉아 있는 어르신의 소리를 듣는다. 어떤 이는 한 손엔 링거주사, 다른 손에는 담배를 피우는 분도 있다. 하루는 정원 벤치에 이불을 푹 덮고 누워계시는 아주머니 옆에 20대로 보이는 딸이 “엄마 이제는 들리는지…”하고 속삭인다. 바람소리와 햇빛소리를 듣고 싶어서 병실을 나왔다고 한다. 그 어머니는 병이 깊어보였다. 아마 작은 소리에서 더 작은 소리로 들어가다 보면 침묵의 따뜻한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소리는 남아있을 것이고, 죽은 후에도 존재할 것이다. 악기나 사람의 목소리로 낼 수 있는 소리를 넘어 자연의 모든 소리와 함께 침묵도 우리에게 주어진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를 영화로 만든 `워낭소리`에서 50년이상 소와 함께 살아온 80세의 할아버지는 소가 끄는 수레를 타거나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고 늘 넘어질 듯 졸고 있었다. 특히 할머니의 소에 대한 끊임없는 구박소리에도 묵묵부답하다가 소의 워낭소리에는 본능처럼 두 눈을 번쩍 뜨고 소를 살핀다. 오랜 시간을 두고 함께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뜨거운 소통인가.

계절의 시작인 1월 정월은 선물로 주어진 한해를 새로운 얼굴로, 마음가짐으로 엮어가는 시간이다. 매일의 삶이 녹록치 않아도 우리의 영혼을 따뜻하게 하는 소리에 마음을 열고 들어보자. 그러면 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나의 경우 어머니의 도마소리, 머리맡에서 하던 기도소리, 질환으로 15년간 앞을 보지 못했지만 늘 기쁘게 산 할아버지 시조 읊는 소리, 햇빛소리, 매일 듣는 자연소리 등 무수히 많다. 그리고 모난 성격에도 묵묵히 함께해준 수녀님들의 소리가 따뜻한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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