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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서의 가장 나태한 선택

등록일 2012-04-19 21:34 게재일 2012-04-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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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경옥 포항성모병원장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로 본다. 교육과 사랑 그리고 고통이 아닌가한다. 모든 사람은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결국 고통은 신비이다. 고통은 모두가 피하고 싶지만 친구가 되어 늘 따라다닌다. 그러나 그 뒤에 오는 눈부신 아름다움에 경탄해 마지않는다. 우리주위에는 불치의 병으로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고 연예인들은 악플에 시달려, 어린 학생들은 왕따의 괴로움으로, 갑작스런 부도나 질병으로, 절망 속에서 등등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을 자주 본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유월절이면 부르는 노래가 있다. “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해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 이 노래가 작사 작곡된 곳은 바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이다. 그래서 이 노래가 2차 대전 때 생겼기에 옛날 유대인들은 모른다. 수용소에서 갇혀있는 유대인들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하느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믿으면서 이 노래를 부르며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동료 유대인들이 하나 둘씩 가스실에 끌려가서 죽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 노래에다가 구절하나를 추가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해 찾아온다는 사실을 그런데 메시아는 때때로 너무 늦게 오신다”

모든 유대인들이 이 노래를 불렀지만 유일하게 한사람 외과의사출신인 젊은 유대인은 부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때때로 메시아가 늦게 온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는 시편 139편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로 수용소에서 죽지 않을거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기모습을 매일같이 다듬기 시작했다. 다른 동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며 살아가는데 그는 한 밤중에 일어나 우연히 줍게 된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했다. 나치 대원들이 가스실에 보낼 후보를 찾기 위해 수용소 방을 뒤질 때 이 젊은이를 차마 지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젊은이의 외모가 단정했기 때문에, 수염하나 없는 젊은이의 푸른 살갗을 보면서 얼마나 살고 싶어 하는지, 생의 강한 의지를 보았기에 차마 그 사람을 지적해서 가스실로 보내지 못했다. 결국 전쟁이 끝나면서 아주 적은 생존자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나왔다. 그때 그가 비로소 이 노래에다 추가구절을 붙였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해 찾아온다는 사실을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서두른다 그래서 믿음을 포기한다.”

그의 일기에 이런 글이 적혀있다고 한다. “고통 속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가장 쉽고 가장 나태한 방법이다. 죽음은 그렇게 서두를 것이 못된다. 죽음 앞에서 살아보려는 부활의 의지 이것이 새로운 창조이다”라고 했다.

얼마 전에 작고하신 맹인고아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리더가 된 시각장애인 고 강영우 박사님의 삶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 위대한 인격으로 승화되고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헌신은 우리 모두에게 한줄기 빛이 되었다. 강박사도 왜 죽고 싶은 순간들이 없었겠는가? 그분의 옆에서 눈이 되어주신 부인과 두 아들의 삶에서 존경과 그리스도의 향기가 느껴진다.

겨울을 이겨낸 좋은 환경 속에서 피어난 건실한 수선화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리라 그러나 한쪽 귀퉁이 악조건 속에서 어렵게 피어난 왜소하고 볼품없는 수선화에게서 탄성을 부르며 생명의 존귀함을 느낀다. 또한 병든 포도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습한 환경에서 자라 피부병에 걸린 포도는 건포도처럼 쪼그라들어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지만 이 말라버린 포도에서 나오는 아주 작은 즙으로 만든 사토디켐은 천 가지 향기로운 맛을 지닌 와인으로 칭송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동서고금을 통해 사람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오히려 완숙해질 수 있다는 지혜는 자주 볼 수 있다.

지금 고통 중에 있는 분들이여, 조금만 더 버티어주십시오. 그리고 용기와 희망으로 나만의 향기를 만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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