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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에서 춤추기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2-28 23:29 게재일 2011-12-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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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포항시축제위원장
최근 들어서 마음속 깊이 박혀 나가지 않는 말.

“인생은 폭풍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 춤추기를 배우는 것이다.”

폭풍 속에서 춤추기? 나뭇가지 부러지고, 등걸 채 나무를 쓰러뜨리는 폭풍, 지붕도 날려 버리고, 허술한 집이라면 하늘로 통째로 날려 버릴 수도 있는 폭풍, 걸으려면 몸도 채 가누지 못하고 세찬 비바람에 뒤집혀지는 우산을 날려버리는 빗속에서 춤을 춘다고?

아마도 7080세대라면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952년 나온 뮤지컬 영화. 줄거리는 잘 모르겠으되, 기억에도 선명한 영화 속 명장면 딱 하나. 맞다. 아하 그것! 무릎을 탁 치는 분들 많을 것 같다. 뮤지컬 영화의 고전인 영화에서도 이 빗속의 춤과 노래는 영화의 압권이요 백미다.

장대비가 오는 날, 주인공 돈(Don)이 연인 캐시(Kathy)를 집까지 바래다준다. 아름다운 캐시의 집 앞에서 감동적인 입맞춤. 돈에게 이 얼마나 큰 황홀인가. 춤추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길 기쁨 아니겠는가. 돈은 온 세상을 얻은 듯한 기쁨을 온몸으로 노래하며 춤춘다. 굵은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내는 의아한 눈초리도 상관없고, 오히려 그들의 시선이 더 즐겁다. 그는 빗속에서 우산을 접고, 접은 우산을 돌리기도 한다. 가로등을 연인인 듯 껴안으며, 볼 부비며 사랑을 노래한다. 다시 편 우산을 소품삼아 돌리며 탭댄스를 춘다. 젖은 발도 아랑곳없다. 아예 고인 물 속에 첨벙 들어가 사방으로 물을 튀겨 가면서 추는 사랑의 노래는 멈출 줄을 모른다. 3-4여 분을 춤추다가 다가온 경찰이 팔짱 끼며 그를 바라보자 그제야 머쓱해진 돈은 춤을 멈추고 가던 길을 간다. 우산 없어 비 맞는 노인에게 선물마냥 선뜻 우산을 건네고 또 다시 춤추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가는 희열의 몸짓. 그것이 바로 빗속의 춤추기다. 홈통에서 쏟아지는 비를 기꺼이 맞으면서도 부르는 돈의 노래 `사랑은 비를 타고`의 노랫말은 행복에 전율하고 환희에 들떠있다.

나는 빗속에서 노래해요./얼마나 즐거운 기분인지/난 다시 행복하죠. 난 구름을 보고 웃고

있어요./어둠이 하늘을 덮어도 태양은 내 맘속에 있어요./난 사랑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죠./폭풍 속의 구름이 몰려와도/모든 사람들이 비를 피해도/나는 웃고 있어요./난 행복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 걸어갈 거예요/그리고 비를 맞으며 노래해요.

그러나 지금 난 이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이 기쁨에 겨워 춤추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이면 빗속 아니라 바닷속도 어떠랴. 아니, 낭떠러지에 매달려서인들 춤추지 않으리.

50년 넘는 세월을 훌쩍 살아오면서도 난 몰랐다. 여름날 폭풍이란 때 되면 왔다 가는 것. 그 한여름의 모진 태풍이 더러는 견디기 힘든 오랜 상처를 내기도 하고, 때론 모질게도 할퀴어 쓰리고 아린 슬픔을 남겨 두기도 하지만, 때 되면 또 어느새 왔나 싶듯이 물러나는 것인 줄만 알았다. 해마다 오는 폭풍은 하릴없이 견뎌야한다. 그러나 또 물러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려내면 언젠간 반드시 저만치 물러난다. 그리곤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환한 빛을 원도 한도 없이 펼쳐 주곤하지 않던가. 그러기에 난 그저 폭풍이 끝나주기를 기다리며 살아왔다.

그런데 아니란다. 며칠이든, 몇 주든, 몇 달이든, 아님 평생이라도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란다. 그 속에서 춤을 추란다. 춤추기를 배우란다. 아직 난 안된다. 춤추기라니 기다림도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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