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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斷想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1-16 23:28 게재일 2011-11-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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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옥포항성모병원장·수녀
가톨릭교회는 11월을 `위령성월`로 정하여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달로 지낸다. 위령성월은 998년 무렵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클뤼니 수도원`의 오딜로 원장이 11월2일을 `위령의 날`로 정하여 연옥 영혼을 위해 미사 봉헌을 한 것에서 시작되었고 그 후 실베스테르 2세 교황이 이를 승인하여 위령의 날로 지키도록 권장하였다. 이러한 신심이 점점 확산되자 11월 한 달을 특별히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아름다운 달이다.

매년 이 때쯤이면 성모병원 뒤편 수도원 묘지에 기도하러 오는 교우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사로 인하여 복잡한 상황에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찾아오고 있다. 한 해가 마감하는 시기이며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은 아주 비슷하다. 이 시기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는 냉철하고 준엄한 말이 우리의 일상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이는 절대침묵을 지켜야한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딱 한 가지 허용된 말이고 과거 로마 전쟁영웅들이 개선 행진을 할 때 반드시 외쳐야 했던 그 말이기도 하다.

생로병사가 항상 우리들의 일상인 병원에서는 외롭게 태어나고 외롭게 돌아가시는 분을 심심찮게 본다. 그나마 병원에서는 곁을 지키는 의료인이 있고 원목자, 자원봉사자들이 계신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2010년 NHK 다큐멘터리가 방송된 후 일본열도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고 우리에게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무연사가 일년에 3만 2천명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고독사로 사망하는데 가족은 물론 이웃조차도 죽은 줄 모르는 죽음이다.

요즘 일본에서는 `특수 청소업`이라는 비즈니스가 주목받고 있다. 죽은 사람의 유품이나 유골을 정리해 주는 직업이다. 무연사로 죽은 유골의 대부분은 택배로 가족에게 보내게 되지만 가족조차 거부한 유골은 무연묘지에 안장하고 이 묘지마저도 포화상태라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음이라는 문을 맞이한다. 준비하고 있든지, 갑자기 도둑처럼 닥치든지, 길든지, 짧든지 생명은 더없이 존엄하다. 태어나는 것이 자기의 뜻과는 다르다면 우리의 죽음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노력에 따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최근 각계 각층 인사들과 수많은 국민들의 애도 속에 떠나간 철가방 배달부로 한평생을 살다간 고(故) 김우수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고아출신에 소년원을 전전하다가 불혹을 넘긴 나이에는 교도소까지 간 그였지만 우연히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어린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달라졌다. 작은 고시원 쪽방에 살면서 매달 70만원 월급에서 10만원을 떼어 어린이 5명을 후원하였다.

평생을 고아로 홀로 외롭게 살았지만 자신처럼 외로운 아이들을 위해 종신보험에 가입하여 사망 시 받게 될 보험금 4천만 원의 수령인은 `한국복지재단`(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으로 지정했다. 그로부터 1년 뒤 9월23일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지금 당장 세상을 떠난다면 무엇이 가장 후회가 될까? 가장 후회할 것 같은 것을 바로 지금 해야겠다. 사람은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안다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알게 된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일하며 오늘을 사는 것이다.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설령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것은 우리의 죽음을 가장 빛나고 눈부시게 만드는 방법이고 우리의 삶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참으로 귀한 것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현재가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오직 살아있는 자만이 죽은 자와 산자를 위해 기억하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1월의 산야를 거닐며 어떻게 살 것인지 사색하고 기도하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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