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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와 쉼표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9-07 23:23 게재일 2011-09-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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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옥포항성모병원장·수녀
마침표와 쉼표의 차이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모양은 비슷하나 쉼표에는 꼬리가 살짝 있어 무한한 가능성이 느껴진다. 우리의 삶에서 마침표와 쉼표의 차이는 결국 시간의 소중함이다. 지난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1/10초의 소중함은 은메달을 딴 선수에게서 볼 수 있었다. 1달의 소중함은 1달이 부족하여 인큐베이터에서 보호받고 있는 미숙아에게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침표가 필요할 때, 쉼표가 필요할 때 절묘한 사용이 중요하다. 기다리다 지쳐 숨 넘어 가는 이가 있고, 쉬지 않아 브레이커 고장으로 사고가 나는 경우도 많다.

병원이라는 환경과 조직생활이라는 틀에 30년 이상 몸담고 있다보니 쉼표보다는 마침표가 중요했다. 언제까지 해야 하고 무슨 일이든 결론을 중요시하다보니 과정도 눈여겨보아야했다. 그리고 의사결정의 과정 중 하나는 내용이 아니라 시점을 판단하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전에 반드시 모든 대안의 결과를 상상해 보아야한다. 단순히 미결정 상황의 답답함이 싫어서 성급히 결정을 내리는 경우 늘 후회하게 되고 결과로 오는 많은 손실은 감당해야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는 결정을 내리지 말고 기다리면서 오래 생각할수록 더 성숙하고 합리적인 결정이 나오는 것은 마침표와 쉼표의 오묘한 조화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세계무대에서 1%부족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왜일까? 예를 들면 의료장비나 기구가 국산과 외국산의 경우 사용자를 배려한 디자인, 색상, 성능, 소모품 등등에서 섬세함의 차이를 발견한다. 나는 그것을 쉼표의 부족이라고 보고 싶다. 정신없이 달리다보면 오직 달려야하는 것에 마음을 쓰지만 중간 중간 쉼표를 찍으면 생각과 의견을 수렴하게 되고 목적에 충실하게 된다. 오늘의 현실을 둘러보면 마침표로 점철된 사회가 되어버렸다. 스피드를 요구하고 너와 나의 경쟁에서 밤잠을 자지 않고, 어린시절부터 마침표 찍는 것에 단련되어오고 있다. 얼마 전 밤늦게 마을을 돌고 있는 학원차를 보았는데 차문이 열리자 조그마한 어린이가 집으로 뛰어가는 모습에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무는 쉼표를 아주 잘 지키는 것 같다. 나무는 어느 해가 되면 갑자기 한 해 동안 열매 맞기를 과감히 포기한다. 병충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토양이 나빠진 것도 아닌데도 나무는 과감하게 열매 맺기를 포기한다. 어른들은 이것을 해거리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릴 때에는 나무가 반항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무는 살아남기 위하여 쉼표라는 휴식을 통하여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다. 어쩜 포기도 쉼표일수도 있겠다. 나무는 해거리동안 모든 에너지활동의 속도를 늦추면서 오로지

재충전이라는 데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닐까? 휴식기간이 끝난 다음 나무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실한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바이올린이나 기타 같은 악기를 보관할 때에도 현을 느슨하게 풀어놓는다. 줄을 맞춰 놓은 채 그대로 두면 다음에 사용할 때 조금은 편리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정확한 음을 유지하려면 좀 더 조여야한다. 그 다음 날에도 좀 더 조여야한다. 그래서 현을 풀어놓지 않으면 결국 얼마지 않아 끊어질 것은 분명한 일이다. 마치 쉼표처럼 휴식이 중요한 이유이다.

쉼표의 중요성이 중년을 넘어 생활습관이 형성되고서야 늦게 깨닫게 되었다. 나의 경우 산책정도를 겨우 하고 수도생활의 여가를 쪼개어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나누고 아주 가끔씩 빈둥빈둥 보내는 시간들이 낭비로 느껴지는 것은 명백한 일중독에 빠진 증거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데 소홀했음을 인정하는 부끄러운 고백이다. 하늘의 구름조각과 날아가는 새들의 몸짓, 노인들의 느린 걸음, 가장 가까운 이들의 눈물, 이웃들의 소리 없는 소리에 민감하려면 지금 바로 여기에서 쉼표라는 친구의 손을 살짝 잡고 멈추어보자! 하늘도 쳐다보고 나무들의 움직임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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