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들짝 잠에서 깼다. 환한 방안 그러나 낯설다. 시계를 보니 4시 34분. 불을 켜둔 채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다시 잠을 청했다.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배가 몹시도 고팠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찾아보려 했으나 낯선 방. 아무 것도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제-30일- 축제가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탈진하다시피 들어와 지쳐 잠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침대 위엔 모래가 버석거렸다. 발도 채 씻지 않고, 옷도 입은 그대로 바로 침대에 몸을 뉜 후 잠에 곯아 떨어졌던 거였다.
배가 고프다. 정말 고프다. 왤까??
어제 점심 먹은 후 내내 물만 들이켜면서 아무 것도 삼킬 수 없었던 길고도 길었던 몇 시간이 생각났다.
갈증의 시간이었다. 맘 졸이며 심한 목마름으로 마셔댔던 물, 마셔도 마셔도 목마름은 가시지 않았다. 하늘과 바다만 바라보던 시간이었다. 하늘의 구름은 흩어졌다 모이고, 두터워졌다 얇아지기를 반복했다. 때론 파란 하늘이 보이는가 싶다가도 검은 먹구름이 더욱 가까워졌다. 한 줄금 소나기를 피하지는 못하겠구나… 29일 형산강에서와 같이 40분간의 폭풍이 재현되려나… 그러나 불꽃 쏠 때만이라도 비는 내리지 않기를... 간절한 소망은 갈증을 더욱 부추겼다.
바다쪽도 사정은 좋지 않았다. 오전 일찍부터 설치하기에 바쁜 바지선 부근으로 피서객들의 제트보트와 바나나보트가 가까이 가는 것을 주의시키는, 안전사고 경고 방송이 맘을 졸였다. 나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걱정은 커지기만해 의자 위에 올라가 까치발로 하염없이 바다 쪽을 바라보기라도 해야 했었다. 타는 목을 물로 적시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속으로 빌고 빌고 또 빌었다. 도와주세요…
오후 3시 이후부터는 상황실의 전화기 3대가 쉴새없이 울렸다.
“여기 대구인데요… 출발하려 하는데 비가 많이 와요. 그래도 불빛축제 하나요?”
“여기 화진 해수욕장인데요. 갑자기 비가 오거든요? 그래도 불꽃쇼 하나요?”
“여기 오천인데 비가 억수같이 오는데…”
우리는 한결같은 대답을 소망처럼 되돌려 드렸다.
“여기 북부해수욕장엔 아직 비가 오지 않아요. 설령 온다고 하더라도 축제는 취소되지 않습니다”
다행히 비는 비껴갔고, 축제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짙은 해무 때문에 정작 가장 찬란했어야 할 불꽃은 마치 몽환적인 연출이라도 한 듯 구름과 안개에 가려 더없이 안타까웠지만 (“불꽃쇼 연출에는 비보다도 더 큰 악조건이 구름과 해무였다”고 후에 들었다.) 비는 북부해수욕장을 피해주셨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안도와 아쉬움이 함께 내 몸을 덮쳤다. 오후 내내 서서 내 몸을 지탱해주었던 다리는 풀려버렸다. 상황실에서 나오자마자 들어온 방에서 침대에 뉜 몸이 바로 잠든 이유였다. 그리고 폭죽소리만 요란했던 불꽃쇼 악몽이 날 깨웠던 거였다.
다음날 축제의 마지막 날도 날씨 사정은 좋지 않아 야심차게 준비했던 풍등은 결국 무위로 끝났다. 4일간의 축제는 이제 역사 속으로, 누군가의 추억의 갈피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게는 크고 작은 기쁨과 설렘과 보람과 즐거움으로, 또한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슬픔으로도 남았다.
가장 먼저 찾아온 변화는 갈증은 사라지고 강한 허기가 동물적 본능같이 찾아왔다는 것. 고픈 배를 참으며 날새기를 기다렸다. 허기를 채우려 함께 밥 먹어줄 사람들을 찾았다. 채 잠깨지 않은 여럿들에게 전화를 해댔다. 겨우 접선한 친구들을 깨워 참으로 오래간만에 맛난 아침을 먹었다. 허겁지겁 먹었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난 다시 배가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