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타면 어김없이 발견하는 경고 문구다. 사람이 문에 기대어 있는 그림에 붉은 사선이, 또 문이 열리면 사람이 거꾸로 떨어지는 섬뜩한 그림에도 굵고 붉은 사선이 그어져 있다. 절대로 문에 기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경고다.
그렇다. 위험한 곳에서는 특히나 이런 종류의 문구나 주의 표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경고 표지가 없더라도 위험한 곳에서는 조심, 또 조심하여야 할 것임은 틀림없다. 대형 사고가 빈번했던 우리나라의 경우, 천재지변보다 인재(人災)가 더 많다는 분석을 보면 개인의 사소한 부주의가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이를 우리는 안전불감증이라고 한다. -나는 위험불감증이라고 하고 싶다. 실로 위험에 대한 불감이라면, 안전불감이 아니라, 위험불감이 맞지 않을까?-
우리네 삶에 위험이 어디 예고나 하고 오던가. 살다보면 전혀 예기치 못한 일들은 얼마나 많을 것이며, 예고 없이 닥치는 일들은 어찌나 많을 것인가. `설마 내게 이런 일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은 또한 얼마나 있을 것이며, 그런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을 어느 누가 알 것인가. 물론 롤러코스터같은 삶이라서 작은 일상의 어려움은 누구나 겪을 각오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인간사 아닌가.
작년과 올해, 나와 내 가족의 삶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있었고, 또 현재진행형에 있는 일도 있다. 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고, 누군가의 도움이나 동정이나 우려를 끼칠 일을 겪을 줄은 정말 몰랐다. 사람이 사람 사이에서 살아야하니까 인간(人間)이라지만, 난 인간이되 누군가의 `기댈 언덕`인 인간이 될지언정 내가 누군가에게 기댈 일이, 그것도 결코 소소하지 않은 일로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 기대어야 할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오만하고 어리석은 나였다. 더 없이 위험천만한 생각 아닌가. “기대면 추락 위험”이 아니라, “기대지 않으면 추락위험”인 상황이었다. 추락 직전, 위험에 직면한 상황에서 내겐 썩은 동아줄이 아닌 굵디굵은 동아줄이 필요했다.
가장 튼튼한 동아줄은 물론 가족이었다. 마침 아들들은 서울로, 해외로 나가있어서 남편만 같이 있었다. 그는 든든한 언덕이요, 굵은 동아줄이요, 따뜻한 인간이었다. 선후배를 포함한 친구들도 큰 언덕이 되어 주었다. 가까이 또는 멀리 있는 친구도 나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두말없이 도움을 주었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더 큰 언덕은 또 있었다. 나보다 조금 더 삶을 사신 분들, 그래서 지혜로우신 분들, 온갖 고초와 시련을 견뎌 지금은 진정 아름다운 분들도 내 가까이에 이렇게 계실 줄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줄은 시나 노랫말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어둠 속에 들어와서야, 고통을 느끼고서야,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기고서야 참으로 깨달았다. 사람의 참 아름다움을…
일하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사람뿐 아니라, 기댈 일이 필요했다. 날 돌볼 겨를도 주지 않을 정도로 일을 좋아하는 나였다. 일을 만들어서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스로 일중독자라는 말을 즐길 정도로 일하면서 행복과 충만을 느낄 때가 많았다. 일이야말로 나에게 구원일 수 있었다.
포항축제위원회에서의 나의 역할은 진정 구원이요, 생명의 동아줄이 되었다. 바쁘게 사는 삶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엎어진 김에 쉬라`는 친구의 조언도 있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와 같은 휴식은 곧 죽음과 다름없는 고통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했다. 이럴수록 더욱 더 가혹하게 나를 일로 몰아넣는 것이 내겐 진정한 구원이라는 것을… 죽으면 없어질 몸, 살아 있는 한 움직여 일하며 사용해야 참살이라는 것을… 내겐, 일이 곧 삶이요, 쉼이요, 추락의 위험으로부터 버틸 힘을 줄 튼튼한 동아줄이라는 것을…
인간이면 인간에게 기댈 일이다. 인간의 일에 기댈 일이다. 기대야 할 일 생길 때면 제발 기댈 일이다. 혼자 내면으로 침잠하지 말고 기댈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날개없는 추락을 할 위험이 도사리고 앉아 혀를 날름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