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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안다는 것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6-22 23:20 게재일 2011-06-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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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옥/포항성모병원장
6월은 가톨릭교회가 예수성심성월로 정하고 예수성심을 공경하고 닮아가도록 권고하는 달이다. 예수 성심은 하느님의 사랑의 마음을 말한다. 당신 외아들마저 기꺼이 내어 주신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은 예수 성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된다. 사랑의 불가마이신 그분의 마음을 알고 닮아간다는 것은 평생의 소망이요 희망이다. 또한 그 마음은 너무나 가까이 자연스럽게 계시기에 공기처럼 쉽게 지나칠 수 있다.

마음을 논하기엔 부족하고 형이상학적 말보다는 일상을 소박하게 살면서 하루를 끝마치면 언제나 부족함을 고백하는 한 자연인으로서 마음을 생각하고자 한다. 성모병원이라는 한 울타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마음과 병원을 믿고 찾아오는 고객들과 관계자들의 마음을 읽기에도 언제나 급급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나 각박해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 왜 그럴까? 이런 나는 왜 세상이 너무 메말라간다고 하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느님이 인간을 선하게 창조하신 것을 믿는다. 그리고 맹자의 마음론 `우산지목(牛山之木)`에서 우산은 처음에는 민둥산이 아니었다. 숲이 우거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곳이었지만 인간들이 나무를 베어가서 민둥산이 되었고, 다시 우산은 자신의 온갖 힘을 다해 풀을 나게 했지만 양들과 짐승들이 그것을 모두 먹었다고 한다. 결국 여기에서 우산은 우리 마음이다. 우리의 심성이 원래 착하다고 하지만 환경의 탓하기에 뭔가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의지가 있지 않는가.

얼마 전 산책하다 전봇대에 애완견을 잃어버린 주인이 귀여운 개사진과 특별한 습관, 찾아주면 사례까지 하겠다는 정보지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개나 소를 잃으면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마음을 잃으면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서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한다. 아니 생각조차 하기 싫다. 열심한 가톨릭 신자들은 한달에 한번 정도 고백 성사를 보는데 그때 단절된 마음을 찾고 사랑의 마음을 되새기고 회복한다.

내 마음을 알고 하늘아래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마음도 읽기가 어렵다. 고통 중에 있는 이웃들의 어려움을 알려고 할 여유없이 다들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생 텍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볼 수가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보이지”라고 했다.

그리고 하워드 가드너는 5세 아이의 마음을 강조한다. 사람의 마음은 주로 5세 때 형성되며 자신과 구별하고 동료간의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능력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면서 5세 아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이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배가 고픈지, 용변처리를 해 주어야 하는 시기인지 잘 파악한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을 때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어려움에 내몰려 있을 때 누군가의 마음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우리 마음은 곳간과 비슷하다. 꺼내 쓸수록 조금씩 비어가지만 수시로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 작심삼일이면 이틀마다 마음을 새로 먹으면 되지 않을까.

많은 경우 문제를 가지고 왔을 때 잘 들어주기만 하여도 대부분 해결된다. 들어준다는 것은 마음을 알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산지목`의 민둥산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또 심자.

우리는 모두가 멋진 시인의 마음을 가질 수는 없지만 귀하게 선하게 창조되었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지금 곁에 있는 단 한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보자.

마음도 소통처럼 연습으로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그러다보면 공기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계신 분의 마음이 내 안에 계신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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