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아버지 자리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5-25 23:20 게재일 2011-05-25 19면
스크랩버튼
손경옥포항성모병원장
나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어릴 때 기억으로 늘 건강이 좋지 않았기에 아버지를 만날 때에는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짧은 시간을 배당받아 용건만 간단히…. 다섯 번째의 딸인 소심하고 용기가 없던 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늘 남아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진료과장님이나 직원들이 야근을 하거나 바빠 가정에 소홀하게 될까 늘 신경이 쓰인다. 혹시나 직원가족들 중 누군가가 나처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평생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은 돌아가신 뒤였다. 그분의 일기장에서 가족에 대한 신념과 사랑,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에리히 프롬은 자녀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본능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이라면 아버지의 자녀사랑은 조건이 있다고 한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법률과 질서, 훈련, 여행과 모험 등의 세계로 들어서는 길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요즘 우리사회는 여성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아버지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같다. 자녀교육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어머니의 몫으로 돌려지고 아버지는 오직 돈만 벌어주는 역할에 내몰려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의 역사적 인물 중 다정다감한 아버지는 참으로 많았다. 그 중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유배기간 20년 중 아버지로서 자식들 곁에 있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커서 아들에게 수십 통의 편지를 보내어 여러 분야에서 서신교육을 시켰고 그 중 다산이 가장 강조한 것은 `독서`였다. 우리가 잘 아는 가수 하춘화는 48년간 국민가수로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덕분이라고 한다. 6세부터 가수로 활약하게 된 그분의 뒤에는 아버지가 직업까지도 포기하고 딸과 함께 있었다. 대중 음악전문학교를 설립한 하춘화는 아버지를 가슴으로 배운 교과서이고 절제되고 겸손된 삶의 본보기로 자신의 인생전부가 아버지의 선물임을 고백한다.

얼마 전 지체장애아들과 함께 미대륙을 여러 번 횡단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끈기에서 숙연한 마음이 든다. 육체의 아버지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3초라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이에게 자기 이름을 주는 것이고 아이를 위해 일하는 것이고 또한 아이를 교육시키며 아이에게 더 나은 삶을, 더 나은 욕망을 가지도록 힘을 주는 것이다. 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아버지처럼 내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는 말을 우리 주위에서 종종 듣는다. 왜 그렇까?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가는 이유는 아버지의 요인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은 `아버지`이며 이는 각자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아버지의 태도, 행동, 가치, 직업윤리, 관계유형 등을 의미한다. 성인들이 겪는 문제들의 근원을 추적해 보면 아버지의 영향이 많이 작용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다.

병원을 경영하다보면 직원에게서 힘도 많이 받지만 서로 상처도 주고받는 것처럼 자식은 부모의 꿈이지만 자식에게서 말 못할 상처도 받는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홀몸노인의 경우 자녀들의 험담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혹시나 금쪽같은 자녀들에 대한 티가 될까. 부모가 꿈을 포기하려면 사랑과 용기가 필요하다. 진정한 아버지의 역할은 자식소유의 욕망에서 자유로워야한다.

나의 경우 돌아가신 아버지의 일기장에서 그분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었고 천하장사도 아니요 높고 높은 태산도 아니었다. 때로는 너무 약하고 쉬 지쳐서 누군가가 어루만져야 겨우 일어설 수 있는 연약한 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정의 든든한 지팡이었다. 우리들이 아버지의 침묵을 깨닫는데는 많은 인생의 경험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우리가 세상에서 실패할지라도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이다. 그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버팀목이 되어 주는 사람, 산이 무너지고 태풍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으시는 바로 아버지이다. 아버지의 목표는 우리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설 수 있도록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는 분이시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 아버지에게도 지금 사랑이 필요한가 보다.

세상의 아버지들이여! 힘을 내십시오. 그 본연의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당신의 그늘에서 가정은 다시 힘을 얻습니다. 세상은 다시 새롭게 피어납니다. 아버지는 우리들의 기둥이요 추억을 심어주는 분입니다.

여성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