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온통 빛으로 충만하다. 그래서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듣나보다. 또 사랑과 감사와 경건함을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근로자의 날, 민주화기념일, 바다의 날, 부처님 오신 날을 정해 삶의 굽이굽이에 챙겨 넣었나 보다.
무심히 햇살을 만지작거린다. 부드럽고 달콤하다. 평화롭게 미소를 짓고 있는 내가 사랑스럽고 살아있음에 두 손을 모은다. 미루었던 일, 닫혀있던 마음, 얼었던 마음, 그리고 어두운 생각과 함께 눅눅한 몸을 일으켜 눈부신 오월의 빛 앞에 용기를 내어 당당하게 서 본다.
비로소 내 몸은 가벼워진다.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이기심에 가렸던 것들이 하나씩 보인다. 이렇게 자연은 아무 말 없이 가르침을 주고 있었지만 허겁지겁 앞 만 보고 달렸으니 보일 리 없다. 이런 마음자리를 얻기까지 좌충우돌 쉴 새 없이 부딪치고 깨지고 흘러가다 만난 선생님이 계시다. 생각해보면 무수히 많은 선생님들이 내 삶의 터를 다듬어 주셨다.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무슨 일 때문에 그 말씀을 하셨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늘 머릿속에 뱅뱅 돌고 있는 말 “평생을 배워야한다. 어린 너에게도 이 할아비가 배울게 있구나” 살면서 그 말씀이 진리라는 걸 깨달았다. 나를 둘러싼 온 우주가 스승인 것이다.
요즘 생명에 대한 깊은 성찰과 자연과 나의 관계에 대해 부쩍 생각이 깊어지고 있을 때 평화가 깃든 밥상의 저자 문성희 선생님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맛으로 몸과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밥상, 지구를 위한 밥상 차리기를 명상을 통해 나를 완성하기를 가르치신다. 나는 요리를 생각하면 번거로움이 앞섰다. 나이가 들면서 이마를 맞댈 식구가 줄어드니 자주 외식을 하면서도 이게 아닌데 싶어 찜찜했다. 음식 재료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소박한 맛을 즐기고 쉽게 만들면 노동력이 적게 들텐데, 양념을 이것저것 넣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강박 관념과 소박함이 대충 만들어내려는 게으름과 이기심이랄까봐, 내가 원하는 밥상은 내 마음 한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구제역 파동을 겪으면서 육류를 줄일 수 있기를 원하면서도, 첨가물을 최소화하고 오염되지 않은 먹거리를 그리워하면서도 습관처럼 반복 하는 밥상 준비가 즐겁지 않았다. 이런 갈등의 본질을 선생님의 요리 수업과 명상 바느질을 통해 해결했다. 요즘 나의 주방은 행복한 공간으로 변했다. 밥은 생명이다. 옛날에는 음식을 다루는 사람은 제사장이 아니면 손 댈 수가 없었다한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생명을 지켜주는 거룩한 의식이기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가장 평화로운 상태에서 좋은 기운으로 만들어야 그 음식은 먹는 사람에게 생명의 에너지를 준다.
주방에 들어선 주부는 여신이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노동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창조적인 작업임을 느끼게 했다.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여유로워 더 즐겁고 행복하고 나를 귀하게 대접하는 느낌이 드는 요리를 만들어야한다.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야할지, 어떤 마음으로 요리를 해야 할지, 내 몸을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를 저절로 느끼게 선생님은 나를 요리하셨다.
삶에 스승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수없이 묻고 또 묻고 답을 얻는다면 자연이 스승은 내 곁에 계시는 것이다.
오늘도 잠들기 전에 밀랍으로 만든 담근초에 불을 붙일 것이다. 마음에 불을 당길 것이다. 그리고 명상의 길을 떠날 것이다. 생명이 빛인 나를 골똘히 바라보고 대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