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는지에 대해 외교적 해석을 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가 내겐 없다. 다만 전 대통령과 함께 나란히 귀환한 밝은 표정의 두 여기자가 느꼈을 안도의 마음이 내게도 절박하게 다가올 뿐이다.
같은 시각 한반도 남단의 평택에서는 파업에 참여해 농성 중이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대테러 작전을 방불케 하는 사측과 경찰의 진압 작전이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대테러 작전에 사용되어야 할 테이저건, 다목적 발사총, 발암물질이 함유되어 있다는 최루액, 곤봉과 방패를 이용한 집단 구타 등이 국가와 사법권이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국민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미 신원이 확보되어 인신이 구속된 노동자를 여러 명의 무장경찰이 곤봉과 방패로 무차별 난타하는 장면과 굉음을 내며 저공비행으로 최루액을 끊임없이 쏟아내던 헬리콥터의 모습은 1980년 광주를 연상케 한다.
갈등 당사자 간 주장의 시비(是非)를 떠나 갈등과 분쟁이 치열한 사안에 대해서 평화적으로 조정하고 중재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게 있다.
그러나 이 쌍용차 사안에 대해 해당 부처 장관은 방관하고, 공권력은 한쪽 이해 당사자와 함께 노동자측에 대한 진압작전을 펼쳤다.
결국 사측과 경찰의 막강 화력으로 노동자측이 벼랑 끝 아찔한 상황까지 몰린 후에야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되었으며, 노사 양측과 경찰 모두에게 부상과 손실을 입힌 채 일단은 불안한 평화를 얻었다.
평택의 쌍용자동차 문제는 단지 노사 양측의 물리적·경제적 상처를 논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노동계만의 사안으로도 느껴지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억압받던 시절 국민의 입을 막기 위해 사용하던 최루액과 다목적 발사총 등을 비롯한 각종 신무기가 공격의 목적으로 적이나 테러집단이 아닌 국민을 향했음을 내외에 적극적으로 표방한 사건이기에 인권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는 격동의 세월을 슬기롭게 헤쳐 나왔던 많은 경험들을 간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겪었으나 전쟁의 참화를 슬기롭게 극복해냈으며, 광주의 아픈 기억이 있었으나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정으로 제한적이나마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더불어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차별적 관행을 일소하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신설로 여성, 장애인, 아동, 노인, 노동 등 인권 부문에서도 많은 진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민주주의와 인권부문의 후퇴가 두드러지고 있어 심히 안타깝다 아니할 수 없다.
정부로부터 독립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확보해 주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 규모를 대폭 축소해 그 지위를 격하시켰을 뿐 아니라 국가인권위원장 임명 과정에서도 후보자 자질을 검증하기 위한 어떤 공적 절차도 진행하지 않았으며, 인권과 무관한 인사를 위원장으로 임명하여 인권계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결국 이와 같은 까닭으로 한국의 인권위원회 등급을 A등급에서 B등급으로 격하시킬 것을 골자로 하는 아시아인권기구(AHRC)의 요구안이 8월 국제인권기구(ICC)에 제출되었다.
평택에 전쟁 같은 진압이 펼쳐지고 있을 때 늦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구제안이 발표되었다. 축소된 권한만큼 그 파장이 크지는 않았으나,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여 제 목소리를 내는데 게으르지 않아야 할 듯하다.
이번 쌍용자동차 사건은 정부와 우리 사회에 많은 과제를 던지고 있다.
민심이 천심이다. 국가와 정부는 국민의 안녕을 위해 위임된 권한을 적절하게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 현대사회가 다양화된 사회이기에 다양한 목소리와 비판이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에 억압하기보다 깊이 경청하고 공감해 주는 따뜻한 정부가 경쟁력 있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음을 위정자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