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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강가의 묘석(墓石)

오래 전에 지운 아버지의 얼굴이내 아이의 얼굴에 돋는다밤마다 강 건너에서 거칠게 흔들던몸짓이날 물리치려던 것이었는지, 부르려던 것이었는지어둔 꿈길을 막니처럼 아릿하게 거스르면겨울 천정에 얼어붙었던 철새들은그제야 낡고 깊은 날갯짓을 한다불온한 전생(全生)이 별자리를 밟고서녘으로 흐른 사이달이 지고 해가 뜨기 전의 지극(至極)이강물에 닿아 문득 시들어버린 내가잎 진 나무로 강가에 몸을 잠그면가지 끝에 옮아 피는 앙상한 길내 몸 빌려 검게 꽃 피는 아버지모두가 한 물결로 펄럭인다생은 몇 번씩 몸을 바꿔별이었다가 꽃이었다가 닻이었다가유곽이었다가 성당이었다가어제처럼 늙은 내 아이가 되는데새벽이 오는 변방의 강가에 기대어아버지와 아이의 멸망을 지켜볼 뿐나는 차마 묘석처럼 깜깜하지 못했다시인은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자신의 아이의 얼굴에 투영되어 있음을 본다. 천년을 건너온 이 지울 수 없는 운명의 유전을 깊이 깨닫고 있다. 인생은 몇 번씩 몸을 바꿔 별이었다가 꽃이었다가 닻이었다가 유곽이었다가 성당이 된다는 시인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렇듯 유전하는 것이 인생이다. 아버지와 나와 아이에게로 흘러오고 흘러가는 지울 수 없는 운명의 한 꼭지를 들여다본다.시인

2017-03-21

지상의 방 한칸

신림 7동, 난곡 아랫마을에 산 적이 있지. 대림동에서 내려 트럭을 타고 갔던가, 변전소 같은 버스를 타고 갔던가, 먼지 자욱한 길가에 루핑을 이고 엎드린 한칸 방, 누나와 조카 둘과 나의 보금자리였지. 여름밤이면 집 앞 실개천으로 웃마을 돈사의 돼지똥들이 향기롭게 떠가는 것을 보며 수제비를 먹었지. 찌는 듯한 더위에 못 이겨 야산에 오르면 시골처럼 캄캄하던 동네, 개천 건너 그 동물병원 같은 보건소는 잘 있는지 몰라. 눈이 커다란 간호원에게 매일 아침 붉은 엉덩이를 내리고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대씩 맞고 다녔지. 학교가 너무 멀어 오전 수업을 늘 빼먹어야 했던 집. 아니 결핵을 앓던 나를 따스히 보살펴 주던 집. 겨울이면 루핑이 심하게 울어 조카의 어린 몸을 난로처럼 안고 자던 방. 아니 봄을 기다리던 누님과 나의 지상의 좁은 방 한칸.가난하고 어려웠던 지난 시절, 이 땅 어디에선들 이러한 삶의 풍경들이 없었을까. 허물어져가는 방 한 칸, 볼품없는 생의 여건들 속에서 아이들은 해맑게 자라나고, 찌든 가난이 대물림되는 그 힘겨운 생활 속이었지만 거기엔 사람다운 따스함과 어떤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는 힘이 스며 있었다. 불편함과 결핍 속에서도 희망과 기다림이 얽혀 있었던 것이다.시인

2017-03-17

소쩍새는 어디서 우는가

귀가 밝아진다는 건 그래도 슬픈 일만은 아니었다지나간 다큐멘터리 자료를 찾아보고 있는데작년 첫울음 울다 간 소쩍새가 한 문장 속에서 다시 깃을 친다홀로 밤늦게 찾아와 길게 목을 풀던 첫손님누군들 그 울음을 받아 적을 수 있었을까늘 멀리만 보려던 닫힌 창가에 바짝 다가앉았다손때 묻은 수첩을 꺼내든 이의 등 뒤로 눈이 까만 밤새가 울었다올해 소쩍새 울음을 들으려거든며칠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아니 더 늦을지도 모른다고 바람이 아직 차다고그때나 한번 찾아와 보라고정작 나는 그 새가 언제 우는지 기다려지기보다어디서 우는지 울어야 하는지 그걸 생각하고 있었다저 울음이 배어나왔을 저녁 어둠은아직 창밖의 나무옹이 속에 웅크려 있었다저물녘 누군가 앉아 있던 자리도 그러하였을 것이다울창하고 맑은 밤의 창을 가진 이가 부러운 게 아니었다아직 내 마른 묵필은 그 어둠을 가질 수 없었다깊은 봄밤 시인이 시를 쓰는 창가로 정적을 깨치며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시인은 깊은 사색에 빠지게 된다. 어둠을 뚫고 짙은 어둠 속으로 뱉어넣는 처절한 그 울음소리에 시인은 자신의 삶의 태도와 시를 써 온 열정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간절하고 처절하게 울음을 뱉는 소쩍새처럼 자신의 창작에 대한 열정도 더 불태우고 더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7-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