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들어간다는 것은마음 열어 주변과 섞인다는 뜻이다섞인다는 것은저마다의 색을 풀어 닮아간다는 것이니찬바람이 불 때마다밀었다당겼다 밀었다당겼다닫힌 마음이 열릴 때까지서로의 체온을 맞춰가는 것이다태양이 어둠을 받아들이는 것도봄꽃이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내는것도마음이 닮아가는 것이고마음이 닮았다는 것은 편하다는것이고편하다는 것은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간다는것이다네가 아프면 곧 내가 아프다는것이다자신을 들여다보며 남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자신을 단단히 가둬뒀던 시간들에 대한 성찰이 나타난 시다. 인생은 관계의 연속이 아닐까. 도처에 있는 너는 나이고 하나였던 나는 수많은 너라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주변과 화해하고 소통하며 아름다운 관계를 이뤄가고자하는 시인의 진솔한 육성을 듣는다.시인
2017-07-17
새해엔 또 어디로 기어 갈 것인가아직 돌도 안 지난 아이를 노모께 맡기고겨우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큰애가 문에 서서빨리 다녀오라고 민들레처럼 손을 흔들 때자주 오지 못하리란 말일랑 차마 못 하고손을 마주 흔들라 돌아서며아내여, 당신을 생각했다이 싸움은 죽어서도 끝날 수 없는 싸움임을 생각했다세상을 옮겨간 당신까지 다시 돌아와아이들을 지켜주어야 하는 싸움임을 생각했다슬픔보다는 비장함이어야 한다어린 두 아이와 노모를 남겨두고 서른 두 살의 꽃다운 아내를 사별한 시인의 애절한 심정이 가슴 저미게 하는 순애보다. 아내를 보내고 난 뒤 앞에 놓인 멀고도 험한 길을 그는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절망으로 주저앉지 않고 흐트러짐 없이 곧은 걸음으로 현실을 헤쳐나가겠다는 단단히 결심하고 맹세하는 눈물겨운 시인의 의지를 읽는다.시인
2017-07-14
제 살갗 비비며 우는 바다바다는 제 몸 닿는 곳이면 언제든 운다미친 듯이 운다가끔은 훌쩍거리지만늘상 그리움 못 견뎌제 살 물어뜯으며 운다샛바람같이 운다지나치는 바람엔객기일 뿐이라고칭얼거리면서 신음하듯 운다퍼렇게 멍든 바다의 상처는 얼마나 깊을까파도 한 움쿰 손에 담아 본다멍든 자국은 보이질 않는다바다는 하늘을 너무 닮아상처를 삭이면서 우나 보다유리알같이 투명한 바다그래서 바다는 이유 없이도 우는가 보다가만히 바다의 소리에 귀 기울여 처연히 울고 있는 바다의 울음소리를 건져올리는 시인의 간절함을 본다. 듣는 사람에 따라 달리 들려오는 물 치는 소리지만 시인은 퍼렇게 멍든 바다의 상처에 집중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한 세상 살아오느라 멍들고 상처 입은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울음소리인지도 모른다. 시인이 깊고 따스한 서정에 가 닿아있음을 느낀다.시인
2017-07-13
때죽 때죽 꽃들이 피기 시작했네짐승의 유월, 독오른 풀들이 발목을 휘감고나는 그녀의 강가를 걸었네삭아가는 타이어처럼 둥근 달물은 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지때죽꽃 냄새를 확 풍기는 그녀길 밖에 그녀를 눕혔네사랑해 씨팔, 때죽꽃이 피고 있었네글러 굴러도 발광하지 않는 달찢겨진 구름이 느릿느릿 지나갔네살 썩는 냄새 보릿대 타는 소리때죽꽃이 피고 있었네 닭이 울고묵은 갈대는 쇠스랑처럼 몸을 할퀴고도둑괭이 한 마리 나를 보고 있었네때죽꽃이 피고 있었네썩어가는 짐승의 피때죽 때죽 불타고 있었네시 전체는 때죽꽃이 피는 밤으로 설정된 목가적인 분위기의 시처럼 보이지만 시인의 인식은 그렇지 않다. 연가풍의 이 시 속에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언어와 정서가 섞여있음을 본다. 형편없이 망가지고 오염되어가는 현대 문명의 패악과 독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의 야만성에 대한 우려라는 시인 정신이 내재되어 있음을 본다.시인
2017-07-12
흐린 날흐린 우산을 쓰고흐린 케이크 가게를 찾는다온통 흐린 크림으로온통 흐린 꽃으로무지 흐린 향으로 맛을 낸우울 케이크를 혀로 핥아먹는다우가 부드럽게 녹아내린다울이 조심조심 스며든다우울이 우물우물해진다말랑해진 우울과 팔짱을 낀다우울의 겨드랑이를 만지며우울과 입맞춤을 하며우울과 이마를 맞대며 우울히 웃는다우와 울 사이에 서서달콤달콤 이야기를 나누고우와 울을 주머니에 넣고명랑명랑 다시 거리로 나선다시인은 우울이라는 심리현상을 거부하거나 그것 때문에 주저앉고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우울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길을 찾는다. 시인은 그 길을 우울과 함께 하고 그 우울을 삶의 한 조건이거나 여건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어울리면서 삶의 변주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비단 우울뿐만 아닐 것이다. 우리들 인생길에 닥치는 어떤 시련도 이러한 자세로 대하고 함께한다면 쉬 극복하게 될 것이다.시인
2017-07-11
가까스로 저녁에서야두 척의 배가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벗은 두 배가나란히 누워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무사하구나 다행이야응, 바다가 잠잠해서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져 물이 차오르는 밀물이 드는 조그마한 포구에서 시인은 인생을 느낀다. 포구에 정박한 두 배를 바라보며 시인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를 위로해주고 함께해주는 느낌을 받는다. 거센 물결이 이는 바다같은 우리네 힘겨운 인생길에서 서로의 상처를 위무해주는 아름다운 동행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7-07-10
걷다가 사라지고 싶은 길을 따라하늘 저편을 올려다보면너무 투명해서 눈부신 바람이깃털처럼 나부끼며 둥글어지는 것이보인다거기 앉아 있는 새는햇살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햇살이 새 속에서숨 쉬는 것 같기도 하다아지랑이처럼아슬아슬하게 비껴 사라지는저것들은?너무 깨끗해 미칠 것 같은하늘 끝에잠자리 날개 같은슬픔이 걸려 있다푸르른 하늘이 너무 투명해서 풍덩 빠지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가 있다. 시인은 투명한 하늘을 보고 세상을 끝내도 좋으리 만큼 감탄하며 아름다운 슬픔에 빠진다. 그 아름다움은 오래 존재하지 않음에 슬퍼지고, 그 슬픔을 느끼는 우리네 인생도 오래 존재하지 못함을 느끼고 또 슬퍼지는 것이다. 투명한 슬픔은 어쩌면 황홀한 허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시인
2017-07-07
낮아지는 수면연못 큰방 벤치에서 바삭거리는잠자리 날개를 집어 들었지자신에게 집중하는 자세로한참 동안 절하던 잠자리였지 그동안나는 나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지그걸 잊고 살았지 잠자리 날개가 움찔할 때마다내 몸으로 떨림이 증폭되어 펴졌지이제는 오지 않아도 될 애인을 기다렸지오래전에 요절한 추억을 기다렸지 먼지들이더러운 물에 끌려가는 여름 한낮 그늘이었지시의 처음에 나오는 수면은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매체다. 시인은 낮아지는 수면을 바라보면서 무심히 이어졌던 자신의 시간들을 바라보며 깊이 자신에게로 돌아가고 있음을 본다. 잠자리 날개의 움찔거림도 마찬가지,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계기를 제공하는 사물이다. 사느라고 바쁘고 무심했던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자신에게로 돌아가 보는 진지한 시간들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시인
2017-07-06
수 십 년 모래와 싸워 삽십 센티 자란 풀덤불 하나귀입니다덤불을 안고 끝없이 가야하는 모래톱도바늘집 뒤지며 살아가는 전갈도 사막여우도귀, 귀입니다그래서 수만 년 전 얘기가 잘 들립니다수만 년 후 목소리도 잘 들립니다모래는 쪼개짐을 반복해 모래로 남고 그 모래들이 펼쳐져서 사막이 되는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무한의 시간을 청각의 파동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본다. 소멸과 생성의 과정은 자연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무수한 사물과 자연의 세계가 이러한 과정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7-07-05
술 안주로 먹으려고 사온 조개를수돗물에 담그자그것들 일제히 입을 다문다몸 밖은 죽음제 안의 어둠을 파먹으며이승의 삶을 잠시 버티는, 그불에 닿자 퍽 소리를 내며다 놓아 버리는온몸을 환히 열어 보이는악착같이 잡고 있던 것이생(生)이라는 암흑이었구나조개를 구우며 시인은 새로운 깨달음 곧 사물의 존재론적 의미를 인식하는 생각에 이르고 있다. 조개는 다가오는 죽음에 저항하기 위해 입을 다문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암흑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빛이 아니라 또 다른 암흑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들 삶과 죽음의 이면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시인
2017-07-04
이젠 그만 잊을 때가 되었다 싶은데아예 병이 되었다 별 되었다멀리서 미미하게 반짝거리는청람빛 저물녘 거리손바닥만한 창에 종이꽃 오려붙인 찻집그 창문으로 얼비치는 깊고 검은 눈빛내 눈과 마주치면서 얼른 고개 돌리던가무잡잡한 소녀 긴 목덜미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반짝거려서 큰일이다짧은 일정 속 만불사 관람뿐이었는데절 바깥만 보고 왔으니단단히 장체에 붙들린 셈이다두고 온 중요한 물건이나 있는 것처럼언젠가 다시 가야 할 곳처럼문득문득 지도 펼쳐놓기 일쑤다그러나 그곳은 이미 지구 저편이 아니라만 명 넘게 부처가 사는 별이다티벳 여행 중 장체의 어느 골목길에서 시인은 영원의 시간을 느끼고, 그의 영혼을 붙잡는 어떤 마력 같은 것을 시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만불사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지만 시인은 장체에서의 순간을 불멸화하여 영원의 시간으로 각인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추억과 신비의 장체 골목길에 시인의 눈도 마음도 영혼까지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시인
2017-07-03
시소에 앉아건너편에 앉은 잠자리와 힘을 겨룬다조금씩 다가갈수록 무거워지는잠자리의 몸통시소가 잠자리 쪽으로 기운다대롱대롱 매달린 두 발을 흔들며온몸을 뻗어 손가락을 내미는데번쩍,수많은 겹눈이 나에게 광선을 쏘아댔다강철 잠자리의비록 자연 속의 미물일지라도 나름의 무게가 있다. 존재의 무게는 소중하고 엄격하다. 어찌 잠자리의 무게를 무게라고 칭할 수 있으랴만, 분명히 그의 생명을 담아내는 그릇에는 무게가 있다. 시인은 존재의 가치 혹은 소중함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 세상 삼라만상이 자기만의 존재 가치 혹은 정중한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결코 소홀히 여기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을 품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7-06-30
열 아홉에 집 떠난 소라게 한 마리 어젯밤 부엉이처럼 울었다나이 쉰이 차도록 집 밖에서 떠돌다 문득 돌아오던 밤그 소라게 따라 아버지의 고동을 벗어나려 나는 일만 번 쯤 문턱 드나들었다그게 내 집인 줄 모르고내 품에서 소라게 몇 마리 꿈틀거리는 줄 모르고내 옆구리에 집게손이 자라면서 아버지는 가슴을 뚫어 유리창을 달았다내게 처음으로 가을을 보여 준 것이다그 가을이 마흔 번째 지나도록나는 아버지의 고동 속으로 단풍잎만한 가을조차 물어들이지 못했다오늘 아침 아버지의 고동에선 썩은 살 냄새가 풍긴다내가 무사하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아니라내 품속의 소라게가 무사하다는 뜻이다소라게에게 소라는 생명의 요람이요 삶의 근거이기도 하다. 시인이 말하는 소라게는 자신을 포함한 자식이고 소라는 그들을 태어나게 해주고 자라고 양육시켜 성인이 되어 또 다른 소라게의 소라가 되게 해주는 부모를 일컫는다. 운명적으로 이어지는 소라게 소라의 고리를 따스하고 절절한 서정으로 그리고 있다. 아버지 고동에서 썩은 살 냄새가 나고 돌아가시면 다시 자신이 소라가 되어 어린 소라게들을 품고 지키고 있는 것이리라.시인
2017-06-29
아리아나 호텔 뒷골목에는밤만 되면형형색색으로 아름다운 꽃이 핍니다이화장, 목련장, 동백장….사철 시들 일도 없고봄여름 구별 없이 여기서는일년 내내 염문처럼 만발한 꽃이 핍니다(중략)그 휘황한 헛꽃에 속아보고 싶은그런 허공의 꽃들은다들, 어둠 속에서향기보다 지독한 불빛을 풍기나 봅니다그래선지 밤만 되면 내 몸은 어디론가 불려가고 싶고이화장, 목련장, 동백장….그 흐드러진 불빛 따라나방처럼 퍼드득 날아들고 싶어집니다밤마다 형형색색의 불을 밝히는 여관촌의 풍경을 보고 인간의 본능적 에로티시즘의 욕망을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는 시다.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우후죽순처럼 돋아나는 여관들의 풍경은 이제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 화려한 불빛들 속에 내재된 현실적 도덕적 원칙을 벗어나 쾌락원칙에 대한 반어적인 비판과 질타의 시인정신이 묻어나는 작품이다.시인
2017-06-28
보이지 않는 것은역시 보이지 않는다밤은 깊다살아도 알아도서투른 곳이 밤의 마지막 등불끄고 침대로 간다잠을 자려고잠이 들면보일까보이지 않는 것은한 때 지역의 포스텍에서 강의를 하셨던, 우리 시대의 진정한 철학자이며 시인이었던 선생이 얼마 전 타계하셨다. 이 시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와 만나기란 얼마나 힘든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절실하고 끊임없는 욕망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이승을 떠날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궁구의 시간들을 보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 모두의 운명적인 의문이고 숙제가 아닐까.시인
2017-06-27
그녀를 실은 바람은 파도를 놓기 시작한다 파도가 해시시 곤두박질치는 동안 그녀가 오므려 발부터 씻는다 불길하게 따라왔을 발목이 붉다 맨손으로 제안에 것 샅샅이 문지르는 일, 뜨물이 된 물은 서해로 흘러 쌓였을 때 이승은 화창하고 경쾌해야 했다 그녀가 다 씻김으로 흔적은 절정 중이어서 하얗게 여문 소금을 모으는 한 남자가 있다 뜨겁고 매끄러운 살을 혀로 감탄하는 어느 염부의 뻘밭 같은 생애가 드디어 달처럼 올라 서해 염전이 있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여인을 짠 바닷바람이 스치고 있다. 시인의 시선은 소금을 모으는 염전 염부의 힘겨운 노동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바닷물이 햇빛과 뜨겁게 만나 끝내 여문 소금에 이르는 그 절정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있음을 본다. 그 절정의 순간 하얀 결정체에 이른 소금을 보며 뻘밭 같은 생애가 달처럼 떠오르는 희열을 함께 보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7-06-26
강원산업 봉강공장 사내들기름때 절어 광택 없는낡아도 빛나는 안전화고흐의 낡은 구두는 수십 억 나가는데청춘을 자식을남겨둔 부모 가슴 다독이며시뻘건 쇳물 타넘는 그들의 워커가빛나던 그 시대봉강공장 노동자들의 안전화를 모티브로 그들의 빛나는 노동의 가치 혹은 묵묵히 한 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정신을 그려내는 시다. 고흐의 구두는 빛나는 예술적 가치를 품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볼품없는 안전화는 재해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고 그들 청춘의 진액이 녹아있고 자식과 부모의 생계와 함께하는 빛나는 거룩한 구두가 아닐 수 없다.시인
2017-06-23
그녀는 수평선을 허리에 두르고 마치 사실인 듯피처럼 붉은 물을 뚝뚝 흘리며온몸에 전구 같은 심장을 수없이 달고박동 소리로 말한다마치 기계처럼, 쇳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냉정한 여자인 듯처럼에게 끝까지 다가가려는 처럼처럼그러나 처럼이 되지 못하는 처럼처럼같은에 한 발 물러선 같은 것은그래도 같은이 되지 못하는 같은 같은인 듯은 인 듯에 붙어서 인 듯한 듯어쩌면 인 듯인 듯이 아니 듯처럼도 아닌 것처럼같은도 아닌 것 같은인 듯도 아닌 듯인 듯그녀는 수평선을 허리에 두르고붉은 물을 뚝뚝 흘린다온몸에 반짝이는 심장을 달고심장박동으로 말한다 냉정하게인간이 아무리 애쓴다 해도 의도하는 대로 될 수 없고 넘을 수 없는 어떤 한계를 지적하는 시인정신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같은, 인 듯, 처럼이라는 언어를 아무리 바꾸어가며 붙인다해도 똑같은 상황이나 상태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극복할 수 없는 운명적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시인
2017-06-22
이른 봄날 오후벚나무 꽃그늘 돗자리 위에서모로 누워 자는 아내의 눈주름을 본다햇볕도 그늘을 만들고꽃나무도 그늘을 거느리는 걸 보면아내에게도 그늘이 많았을 것이다꽃나무 가지에 앉았던 바람이 깃을 치자눈주름 위에 음표로 내려앉는꽃잎 몇 장저녁이 와서노을 한 폭 개어다 덮어주는데낡은 몸에서 오래된 풍금소리가 터져나온다이른 봄날 꽃나무 아래 잠든 아내의 눈주름을 보고 시인은 힘들고 어려운 생을 살아온 그녀의 시간들을 느끼고 있음을 본다. 별과 나무도 그늘을 만들지만 아내의 눈주름은 그녀가 건넌 가난과 시련을 견딘 훈장과도 같은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한 생을 살며 서서히 낡아가는 그녀에게서 오래된 풍금소리가 난다는 것은 그녀의 성숙되고 깊은 생의 향기 같은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7-06-21
산맥 같았던 것들이 밀리고 밀리면동쪽 변방의 호숫가 어느 오래된 나무지나가는 물새가 잠시 해를 가리는 동안새 혓바닥만한 버들잎이 한 몸 떨어진다한순간 숨을 멈추는 오전이었다천지간에 해일처럼 살다가막 지워진 파문에 꽂혀 끝없이죽음을 타전하는 작은 잎투명한 경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면호수에 그늘을 드리운 버드나무들의반짝이는 오늘은 얼마나 평화스러운가잠시 흔들린 수초들의 그림자가 다시 꼿꼿해지고수면은 명경지수(明鏡止水)로 봄날이 가는데흐린 물바닥에선 지붕이 날아가고전신주가 뿌리째 뽑히고더 깊은 물 속에선 거대한 별똥이휙 제가 지나온 길을 손가락질하며사라졌다강릉 경포호수의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풍경을 보여주면서 호수의 표면 뿐만 아니라 호수 속의 세계에 대한 깊은 사념을 그려내고 있다. 명경지수(明鏡止水)의 호수, 그 속에는 흐리고 갑갑하고 썩고 사라지는, 그래서 새로운 탄생이 이뤄지는 오묘한 세계를 시인은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전부가 아닌 것이다. 잔잔하고 맑은 호수면에서 깊은 호수 속을 탐색하는 시인의 눈을 따라가 본다.시인
2017-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