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누군가를 담고 살아가는 것이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기에젊은 날엔 그대로 하여 마음 아픈 것도사랑의 아픔으로만 알았습니다이제 그대를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냅니다멀리 흘러가는 강물에 아득히 부는 바람에잘 가라 사랑아, 내 마음속의 그대를 놓아 보냅니다불혹, 마음에 빈자리 하나 만들어놓고서야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사랑이란 누군가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마음을 비워놓고 기다리는 일이어서그 빈자리로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어서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사랑이라는 것을이제야 나도 알게 되었나 봅니다흔히 사랑의 본성은 소유고 독점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시인이 말하는 사랑은 비우고 보내는 것이라 한다. 불혹의 나이에 들면서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두고 소유하고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그리워하며 견디는 것이라는 시인의 생각에 깊이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시인
2017-06-19
내 몸이 한 장의 필름으로 분리되어판독기에 걸려 있다검고 희멀건 채색에 담긴 앙상한 늑골들의 빗살 구조그 중심부로 휘어져 내린 척추골반은 육중한 내 육신을 힘겹게 지탱하며 예까지 왔다한 번도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이 나이까지 용케 버티어 왔다문득 낯선 사람이 불을 끈다캄캄한 어둠 속으로 내 몸은 감춰지고젊은 사나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최후의 심판을 준비한다나약해진 내 의식은 두려움에 졸아들고생명이란 것이, 육체란 것이 내 의지로부터이렇게 쉽사리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 걸까?그의 논고가 신(神)처럼 무서워진다혹시나 뻥 뚫린 허파, 퉁퉁 부은 간덩이가안막을 덮어 오는데창백한 벽면을 타인처럼 바라본다그곳엔 선고를 기다리는 내 뼈들이기도처럼 걸려 있다건강검진을 받고 그 결과를 기다리며, 판독기와 검진 의사의 판정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시인은 내심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스러운 심리를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음을 본다. 이런 경우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고, 그런 심리적 불안감은 인지상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시인은 꿋꿋이 살아온 한 생을 성찰하면서 그 두려움을 넘어 서는 담담함과 안정된 심정을 보여주고 있음을 본다. 어떤 경우도 담담하게 안고 가겠다는 성숙되고 균형감 있는 삶의 자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시인
2017-06-16
바다, 기쁨의 바다 설렘의 바다 그리움의 바다 슬픔의 바다바다, 집중하는 바다 바다를 잊은 바다 유정한 바다 걱정의 바다 격정을 잠재우는 바다바다, 사랑하는 가슴에 닿는 바다 천 갈래 만 갈래 심사에 닿는 바다바다. 내가 보는 바다 그도 보는 바다 바다를 통해 그를 보는 바다 그를 통해 바다를 보는 바다바다, 베란다의 주인이 커피를 마시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그리움 사람을 그리는 바다 커피를 마시거나 그리거나 그리운 사람을 그리는 베란다의 주인을 그리는 바다바다를 여러 경우로 호명하면서 점점 심화시켜 나가는 반복과 점층의 시작법이 새롭다. 기쁨과 설렘과 그리움과 슬픔이라는 마음의 빛깔을 나열하면서 시인의 인식은 우리의 감정을 다양하고 더 깊게 확장시켜나감을 본다. 그리움의 대상이 어느 틈에 하나가 되어 있는 상황의 설정은 각기 다른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우리의 감정을 소상하게 읽어낸 작품이다.시인
2017-06-15
너는 안 돼,나는 그 거리를 받아들일 수 없어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몸부림친다동백꽃에서 패랭이꽃까지가로수에서 산마루까지집 현관문에서 작업장까지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는 내 몸속의아득한 거리교도소의 사이렌 소리처럼 떠오를때마다나는 기침을 그치지 못한다세상이 수월히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거절과 배제의 쓰라린 아픔을 견디는 것에서 시인은 더 나아가 극복하고 이겨내기 위해 기침을 한다. 기침을 하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가치와 의미를 가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주변이라고 여기고 있는 거리에 불을 붙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인식에 깊이 동의하고 싶다. 자기 자신이 세상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시인
2017-06-14
그렇다고 바다를 보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파도 또한 정면으로 보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나는야 고래잡이 선장갈매기 나르고술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이 곳에서어찌하면 독주(毒酒)를 작살을 먼 바다를 이길까 하다가그리하여 비틀거리는 내 걸음을게의 옆걸음으로 슬쩍 바꿔보는 것이다오 게가 간다집게발을 높이 올리고거품을 날리며눈을 내놨다 감추었다 하면서옆걸음으로바다를 비껴서이 시에 나오는 고래잡이 선장은 H 멜빌의 `백경`에 등장하는 에이햅 선장과는 다르다. 독주와 작살과 바다를 이기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용감한 선장이 아니다. 시인은 그런 상황에서 자기를 빼내어 갯벌을 산책하는 산책자로 변신하며 유쾌한 방랑자가 됨을 볼 수 있다. 게의 옆걸음으로 집게발을 올리고 바다를 비껴서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가만히 미소짓지 않을 수 없게 된다.시인
2017-06-13
어두운 하늘 위로 올라간다. 나는 지금 천국엘 간다. 어릴 때 동네 할머니들은꽃상여를 타고 갔는데 난엘리베이터를 타고 간다하늘이 가까운 아파트 17층( 중략)가끔 하늘에 달을 쏘아 올린다몸뚱이 한쪽이 베여 걸리는 달누군가의 영혼을 싣고 비행기가더 깊은 하늘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버튼을 그곳까지 눌러보지만엘리베이터는 미루나무보다조금 높은 곳,17층까지만 나를 올려다 놓는다시간의 컨베이어가 돌고 있다포장을 끝낸 과자 봉지처럼어느 지점에서 나는 그렇게툭 떨어질 것이다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죽음을 택하는 청소년의 상황과 그의 심리를 떠올리게 하는 시다. 어쩌다 이런 가파르고 아픈 선택을 했을까.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한 그의 생각 속에는 밤하늘 가득 쏟아지는 별빛도 있고 달도 있다. 모든 것이 왜곡되고 미완성의 상태일 것이다. 하늘과 바다를 상대로 우주와 맞서는 그의 시리고 아픈 정신세계를 따라가본다. 아프다.시인
2017-06-12
아버지는 물결에 흠이라도 날까 어루만지듯곱게도 물을 떠서 낯을 씻는다물낯이 아버지의 낯을 그대로 닮는다얼굴 세 번 닦고 오른손으로 앞뒷목을두 번 쓸어내는아버지, 그 세수법을 나는 안다사소한 일상의 일들을 모티브로 삼아 쓴 이 시에서 우리는 시인의 따스하고 긍정적인 생의 자세를 발견할 수 있다. 할아버지 적부터 아버지, 자신에게 이어지는 사소한 몸짓인 세수법을 소개하면서 가계에 이어지는 지울 수 없는 유전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가만히 미소 지어 보는 아침이다. 시인
2017-06-09
저 오묘한 얼음꽃이천 도의 불길을 견디고 피어난진정 화염의 피조물인가날카로운 슬픔이 살짝만 부딪혀도쉽게 부서지는 것을 보면누군가 그 속에사랑의 절정을 새기려 했음도금방 알겠다불과 얼음이라는 상반된 물질들의 지난한 결합으로 탄생하는 것이 유리다. 자신의 속성과 전모를 다 포기해야 이를 수 있는 법열(法悅)의 경지라면 지나친 말일까. 그만큼 힘겹고 어려운 결정체라는 뜻이다. 집착에 사로잡혀 자신을 벗어버리고, 던져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에 유리라는 결정체 얘기로 회초리를 대는 시인 정신을 본다. 비움과 희생, 배려의 정신으로 소유와 집착에 갇혀있는 우리를 비우고 버릴 수 있어야 눈부신 유리같은 새로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시인
2017-06-08
뒷집 조성오 할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셨다감나무 두 그루 딸린 빈집만 남겨두고 돌아가셨다살아서 눈 어두운 동네 노인들 편지 읽어주고 먼저 떠난 이들 묏자리도 더러 봐주고 추석 가까워지면 동네 초입의 풀 환하게 베고 물꼬싸움 나면 양쪽 불러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심판 봐주던이 동네의 길이었다, 할아버지는슬프도록 아문 길이었다(----)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그 비탈길을 힘겹게 밟고 올라가던느린 발소리와 끙, 하던 안간힘까지 돌아가시고 나자그만길도 돌아가시고 말았다시 속에 나오는 조성오 할아버지는 동네의 `길`이었다. 동네 노인들에게 눈이 되고 손발이 되어 주며 그들을 여러 가지 일들로 이어주는 길이었다. 평생 남들을 위한 배려와 섬김의 정신으로 아름다운 삶의 자국을 남기고 죽은 뒤, 그가 오르내리던 비탈길에도 이제는 풀이 무성하고 길이 지워져 버린 현실을 아파하는 시인을 본다. 조성오 할아버지의 느리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동행을 본다.시인
2017-06-07
한 점그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끝까지 들어가 길어 올린 꽃송이붉은 저 입술바라만 보고 있다가홀로홀로조용히 떨어뜨린 꽃잎들고요히 떨어뜨린 꽃잎들다가가 옷깃이라도 스치며와르르 쏟아지는시인의 많은 시에서 발견되는 것은 가려진 것들, 나약한 것들, 소외되어 빛을 받지 못한 것들에 대한 세심한 접근과 말 걸기 혹은 섬세한 기록이다. 기록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본질과 아름다운 생명력을 집어내어 정갈한 언어의 옷을 입히고 있는 것이다. 짙붉게 우리 곁으로 왔다가 쓸쓸히 떨어져 떠나는 동백꽃, 그 곱고 아쉬운 여정을 본다.시인
2017-06-05
자욱이 피어 있었다강둑 위에도 들판에도산벼랑에도안개처럼 자욱이 피어 있었다형산 갔다 오던 길검문소 바리케이드 밑아스팔트를 가리고 솟아나던 힘꽃나는 놀라지 않았다우리들 가장 가까이 피어우리들 가장 머리 보이던 꽃마침내 가슴마다 불을 질러저 땅 끝까지 달려나갈 우리 모두스스로 피어나는 들꽃이므로들꽃처럼 살다간 시인 김정구의 세상을 바라보는 깊은 눈빛과 마음결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의 말솜씨는 그리 매끄럽지 못하고 외모도 투박한 모습이었지만 그의 가슴은 뜨겁고 그의 필치는 섬세하고 유려했다. 그의 순박한 인간미와 섬세한 감성, 무서운 정직성의 바탕 위에 쓰인 이 시는 어떤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고 꼿꼿이 되살아나는 강한 들꽃의 생명력과 의지를, 그렇게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의 강단진 모습들을 느끼게 해 준다.시인
2017-06-02
나무들도 투자한다당장의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보다 먼 안녕과 종족의 번성을 고려하여충분한 나뭇잎을 틔우고꽃을 피운다일부는 바람이 와서 먼저 따버리고일부는 벌레가 와서 갉아 먹을 것을 고려한확률까지 적용한다이래저래 용하게 햇빛과 잘 융합하여최소한의 생계에 필요한 나뭇잎이 100개라면그는 몇 배를 더 달기 위해 잠을 줄이고동분서주 사방으로 가지를 친다날마다 햇빛이 잘 드는 쪽으로 몸을 틀며꽃을 갈무리하고열매를 건사한다착한 자본의 순환이다나무의 투자법과 사람의 투자법을 생각하게 하는 시인의 현실인식에 깊이가 느껴진다. 나무의 투자법은 자연 그대로다. 결코 무리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투자는 어떠한가. 때로는 불법을 자행하고, 심지어 남의 것을 빼앗아서 부와 소유를 확장하고 획득하지 않는가. 하늘이 주는대로 자연스럽게 최선을 다하는 나무의 투자법이라고 쓰고 있는 시인의 메시지가 가슴 깊이 파고드는 아침이다.시인
2017-06-01
땅거미 지는 섬진강 따라쌍계사 십 리 벚꽃 길가지마다 층층그 꽃그늘 아래 퍼질고 앉아펑 펑 울고 싶은 봄날옥색 저고리 다려 입고꽃놀이 한번 가고 싶다던당신, 어디 있나요경남 하동군 지리산 자락의 화개장터에서부터 시작되어 위쪽 쌍계사까지 펼쳐지는 십 리 벚꽃길이 있다. 시인은 이 벚꽃 터널을 걸으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다. 살아생전 옥색 저고리 곱게 다려 입고 봄꽃놀이 한 번 가시고 싶어 하시던 어머니, 어쩌랴. 이미 이 땅에서 뵐 수 없는 가슴 아픈 마음을 그리고 있다. 쓸쓸히 지는 꽃잎으로 떨어져 가신 어머니가 그립고, 가슴 아픈 아침이다.시인
2017-05-31
앞뒤로 이웃해 산다고갓 찧은 햅쌀문간에 두고 간 앞집 아지매김이 모락모락 나는 찹쌀떡제일 맛있는 고놈한 골목 산다고 들고 온정곡 아지매익은 된장, 따끈한 팥죽막 담근 김치 한 보시기평상에 고이 놓고 간지환이 할매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골목 은행나무는빛나는 것들만 바닥에 깔아여기가 세상의 중심인 양표시를 한다시골에서 시를 쓰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인의 순박하고 따스한 심성이 잘 나타난 시다. 세상의 중심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집중된 도시, 삭막하고 인간미가 없는 서울이나 대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없이 살아도 이 시에 나오는 아지매 할매들처럼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고자하는 따스한 마음, 그 순수하고 정겨운 마음들이 오순도순 모여사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 아닐까.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아침이다.시인
2017-05-30
차가운 바람이 주검처럼 너풀대는 곳서 있기만 해도반평생 용접공의 불똥빵꾸 난 몸 구멍마다 고름처럼피리 소리가 새어나오는 곳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으면목매달아 죽은 시신의 얼굴이 편안했던 곳죽은 자와 산 자가 연대하는목숨의 바닥이자 고공인 크레인에서인간의 궁극을 운다인간의 궁극은 무얼까. 죽음과 그 죽음을 바라보며 눈시울과 가슴 적시는 슬픔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고공 크레인에서 투쟁하다 죽은 노동자 김진숙을 제재로 쓴 이 시에는 소외되고 열악한 생의 조건들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연민이 녹아 있다. 이 땅의 민초들, 노동자, 농민, 이주노동자들의 힘겨운 삶과 질긴 생명력과 애환을 생각해보는 아침이다.시인
2017-05-29
일찍이 나 아이들 가슴에 집 지어 살고자 하였으되어떤 집을 지어왔는지 알 수 없다그로부터 10년, 20년이 지난 지금 어느 날낙엽이 그리운 창 너머 세상 어디에서폭닥한 목도리 같은 것에 쌍여 날아온 꽃엽서 한 장뒤따라 걸려온 전화에서, 어린 딸아이 울음에 섞여 함께 울먹이는아득하게 그리운, 그리운 목소리 같은 것세상을 바꾸겠노라고, 아이들을 이 땅에 바로 세우겠노라고뛰어다니던 젊은 날의 나를 닮은 너희들의참 아름다운 웃음과 힘찬 목소리 같은 것들이때때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곤 하지만알 수 없다 아직은, 너희를 온전히 떠나기 전에는내가 정말 너희 가슴에 어떤 집을 지어왔는지그 집, 세월보다 먼저 희미하게 스러져지금은 모습조차 알아볼 수 없는 낡은 집은 아닌지교육현장에서 참다운 인간의 길을 가르쳐온 시인은 나의 집 한 채를 짓기 위해 평생을 애써 왔다. 시인이 짓고자 하는 집은 공간 개념으로서의 집이 아니다. 그 집은 학생의 가슴 속에 심어주고 싶은, 그래서 평생을 헌신하며 지어가는, 올바르고 참되게 살아가는 길을 의미한다. 그런 집을 지어가겠다는 시인의 다짐이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옴을 느끼는 아침이다.시인
2017-05-26
이 방 속에나는 덜 익은 꿀처럼 담겨 있다문이 열리면 후후룩 흘러내릴 것처럼이 방 옆에또 다른 방들이 붙어 있다는 게 마음 놓인다켜켜이 쌓인 육각(六角)의 방들을고통이 들락거리며 매만지고 간다시인이 말하는 육각의 방은 무엇일까. 시의 모티브가 되는 육각의 방은 벌집이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 공간을 벌집에 비유하고 있다. 벌들이 종일 날아다니며 꽃물을 찍어와 쌓아두는 벌집의 꿀은 시인의 내면에 고이고 고인 고통이다. 우리의 한 생이 쌓고 가두어 둔 달콤한 꿀과 같은 소유들이 결국은 고통의 집적물이라는데 깊이 공감이 가는 아침이다.시인
2017-05-25
△제조로봇연구본부장 홍성호 △ICT로봇융합연구센터장 최재연 △머신인텔리전스연구센터장 황희선 △경영지원실 인사구매팀장 이상민
2017-05-24
산에 오면나무와 사람들이 다를 바 없고풀과 내가 다를 바 없네내 외로울 때풀들은 내 손등을 비비고사람들이 노여워할 때나무는 삶의 무게와 빛깔을 일러 주네내가 사람들에 섞이지 않고풀이나 나무가 되었으면풀과 나무와 사람을포근히도 안은 산그의 언어를나는 아무래도 다 읽지 못하네필자의 고등학교 은사이기도 한 시인의 겸허하고 청빈한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시다. 우주 만상의 하나로서 한 생을 살아 가는데는 나무나 풀이나 사람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늘이 준 천수를 누리며 서로가 섞여서 자연스레 살아가는 것이다. 산에 오르며 시인은 더 가지려고 아옹다옹하는 우리네 인생을 햇살 받고 비바람 눈보라를 견디며 살아가는 나무나 풀에 견주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꽃 피고 새 잎을 내놓은 나무나 풀의 언어. 그 자연의 언어에 가만히 귀 기울여보는 아침이다.시인
삶이란 결국 피할 수 없는 싸움인가막걸리에다 수북이 씹히는 콩꿈도 꾸지 못했던 한약재이건 내 즐거운 식단이 아니다나는 이제 풀을 기대할 수 없나분수에 맞지 않게 배불리 먹고소화시킨 건 근육 같은 전의(戰意)세상이 받아주면싸움도 죄가 되지 않는 곳으로뿔을 단단히 세우고 뚜벅뚜벅 걷는다상대를 무너뜨려야 내가 온전해지는 세상지고 나면 길고 긴 밤이 온다무너뜨리는 상대도 알고 보면내일 또는 먼 훗날의 내가 아닌가청도로 가는 길목마다 수북이 돋아난 적개심무엇을 위하여 싸워야 하나소싸움으로 유명한 청도로 가면서 소싸움을 빌려 인간의 삶을 말하고 있다. 싸움판에 나선 소야말로 오직 승리만을 위해 단련하고 상대를 쓰러뜨릴 적개심으로 뿔을 단단히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네 한 생도 싸움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데 적개심으로 가득찬 삶을 영위해 간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불행이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시인
2017-05-23